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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도자기 묵은때 화학으로 벗긴다



함철희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사를 따라 들어간 방은 특이했습니다. 가운데 작업대에는 흙으로 빚은 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토기가 아니라, 산산이 부서졌던 토기 조각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완성한 토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조각이 비교적 온전히 짜맞춰져 있는 것도 있었고, 듬성듬성 맞춰져 빈 곳이 많은 것도 있었습니다.

“2011년 출토된 정조대왕 초장지 재실에서 나온 토기예요. 2차 발굴이 있던 2012년에 저희 연구소로 와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실 가운데만 보면 분명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가의 방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싼 찬장을 보면 영락없는 화학실험실입니다. 옥살산, 구연산, EDTA 등 시약 이름이 붙은 병이 정갈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자기나 토기를 보존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약들이에요. 특히 오염물에 의해 얼룩이 졌을 때 제거하는 용도로 씁니다.”

발굴된 도자기는 발굴 현장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오염에 노출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칼이나 칼집, 화살촉, 청동기 등 금속으로 된 물건과 같이 매장된 경우, 금속이 부식되면서 생긴 녹이 도자기에 스며들어 표면을 변색시킵니다. 기름이나 먹물 등을 담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염도 있고, 바닷속에서 발견된 도자기의 경우엔 조개류나 염분 때문에 오염이 돼 있기도 합니다.

오염의 종류를 통해 당시의 생활사를 추정하는 것처럼 도자기의 오염이 역사적 가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경우엔 오염을 없애야 하는데 그 때 여러 화학 약품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옥살산과 구연산, EDTA 등은 금속에 의한 오염을 효율적으로 없애주는 약품입니다. 이들을 킬레이트제라고 하는데, 금속 원자가 배위자(리간드)에 결합해 안정한 상태가 되는 킬레이트 반응을 이용해 도자기 속의 금속 오염물을 빼냅니다.

얼굴에 바르는 ‘팩’ 같이 습포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박물관에서 도자기를 본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표면에 마치 금이 간 것처럼 촘촘히 갈라진 무늬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를 빙렬이라고 하는데, 주로 청자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도자기의 성분에 따라 열팽창계수가 다르다 보니 건조 또는 소성 과정에서 표면의 유약층에 작은 금이 가게 됩니다. 빙렬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히 오염물이 끼게 되면 아주 보기 싫게 됩니다.



습포제는 빙렬이나, 오염물이 도자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을 때 유용합니다. 오염물과 반응하는 화학작용제를 습포 물질과 함께 섞어 끈적끈적한 겔 형태로 만든 뒤 도자기 표면에 바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습포가 바깥부터 마르는데, 그러면 모세관 현상에 의해 도자기 속에 스며들었던 작용제와 오염물이 습포 겔 안으로 빨려 올라옵니다. 이후 표면의 습포만 제거하면 오염물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와 오염물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습포제가 필요합니다. 함 연구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복원기술연구실 전문가들과 함께 도자기에 사용할 다양한 습포제 재료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오염물을 제거하는 것도 큰일이기는 하지만, 부서진 도자기 또는 토기 파편을 다시 맞춰서 원래 형태로 복원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한창 짜맞추고 있던 정조대왕 초장지 출토 토기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히 복원하고 있었습니다.

복원하는 요령이 있는지 슬쩍 물었더니, 마치 탐정처럼 몇 가지 단서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먼저 도자기나 토기도 사람이 만들었다 보니 손자국이나 굴곡 등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옆에 이어질 조각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께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두께 별로 구분해 두면 비슷한 조각을 찾기 쉽습니다. 바닥 부분은 거칠기 때문에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각을 찾으면, 접착제를 이용해 연결합니다.

함 연구사는 “신중하게, 그리고 나중에 재보존처리할 때를 염두에 두고 복원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도자기를 복원할 때도 무늬에 유사성이 있는 경우에만 짜맞추지, 절대 추정을 통해 복원하지 않습니다. 왜곡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복원에 사용하는 재료와 접착제 역시 언제든 제거가 가능한 것으로 씁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보존처리할 때 출토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함 연구사는 “문화재 보존처리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복원을 하지만, 더 나은 연구 결과가 나오면 언제든 그 방법에 따라 재복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입니다. 언제든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면 기존 결과를 기꺼이 수정하겠다는 과학자의 자세와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동기획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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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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