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백km 이상의 속력으로 공중에 떠서 주행하는 초고속열차를 타고 여행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초전도 응용기술 덕분이다. 초전도 현상이란 무엇이며, 그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2020년 어느 날, 가정주부 K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 벽에 붙어있는 디지털전력계를 체크했다. 디지털전력계는 소형 초전도에너지저장장치와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연계시킨 초전도 자가발전저장장치를 이용해 가정에서 필요한 전기를 자체적으로 발전하고 저장해 사용하는 장치다. 초전도 자가발전저장시스템이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화력 발전소는 자취를 감췄고, 전력 예비율도 크게 향상됐다.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자제품의 회로에는 전기를 흘려도 열이 나지 않는 초전도선으로 배선돼 전기 과열로 인한 화재 사고가 거의 없어졌다. 또한 초고속·고효율의 초전도디지털소자가 실용화돼 초전도 슈퍼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울과 부산을 수십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초전도자기부상열차와 스크류의 힘이 아닌 전자기력으로 움직이는 전자추진선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 됐다.
TV를 켜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초전도케이블을 통해 대형 초전도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된 잉여 전력을 수출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전기도 수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저항이 사라지는 물체
초전도 기술이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차세대 테크놀로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각종 매스컴을 통해 초전도 응용기술의 놀라운 발전 가능성에 대해 많이 듣긴 했지만, 아직은 신비롭고 낯설게 느껴진다. 초전도 현상이란 무엇일까.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11년 네덜란드 출신 과학자인 온네스의 실험에서 비롯됐다. 온네스는 헬륨가스를 액화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액체헬륨(4.2K, -2백69℃)을 이용한 많은 실험을 했다. 어느날 그는 액체헬륨을 이용해 온도를 내리면서 고체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하다가 우연히 전기저항이 갑자기 0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속적으로 서서히 떨어지던 전기저항이 어느 특정한 임계온도를 경계로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초전도체란 이처럼 특정 임계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기 때문에 전기전도성이 ‘특별히 좋은 도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물체에 전류가 흐르면 물체에는 전류의 제곱과 물체의 저항을 곱한 값의 열이 발생하게 된다. 전류를 손실하지 않고 멀리 보내고자 할 경우 전기저항으로 생긴 열로 인해 에너지의 손실이 크다.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체의 경우 에너지의 손실 없이 많은 양의 전류를 멀리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전기저항의 발생 메커니즘
초전도체의 전기저항은 왜 0이 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기저항이 생기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금속을 들여다보면 금속 원자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격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자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격자 사이를 자유스럽게 운동하다가 전압이 걸리면 한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이려는 힘을 받는다. 이런 전자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격자의 열 진동 또는 재료 내부에 존재하는 불순물이나 결함에 충돌하면 열을 내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전기저항의 발생 메커니즘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결정 내에는 여러가지 결함이 있다. 이러한 불완전성이 전기저항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금속의 순도가 높을수록 전기저항이 줄어드는 것은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마치 한가운데 전신주와 같은 장애물이 많은 길을 소들이 한꺼번에 달려가다가 장애물에 자꾸 부딪히면서 진행 속도가 떨어지고 달리던 진행 방향도 순간적으로 바뀌는 모습과 같다.
한편 격자를 이루는 원자들은 질량이 전자보다 엄청나게 크고 서로 구속돼 있어 전자처럼 자유스럽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제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격자진동은 온도와 관계가 많다. 즉 금속을 뜨겁게 가열하면 격자진동이 더 심하게 일어나고, 금속을 차갑게 하면 줄어든다.
이를 전기저항과 관련해 생각해보자. 금속을 차갑게 하면 격자진동이 줄어들어 그 만큼 전자들이 덜 부딪히기 때문에 전기저항이 줄어든다. 그러나 절대온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격자진동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한 전기저항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임계온도 이하에서 초전도체 내의 전자들은 어떻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이동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힌 수수께끼였다.
1957년 세명의 미국 물리학자 바딘, 쿠퍼, 그리고 슈리퍼는 초전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초전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한 것으로, 이들 이름의 앞글자를 딴 BCS이론으로 정의됐다. 간섭하지 않고 운동하는 전자들이 서로 짝을 지어 격자 안을 움직이면서 도체 내 저항의 원인이 되는 모든 장애물들을 통과한다는 개념이다. 짝을 이룬 전자는 ‘쿠퍼쌍’이라 불린다.
짝지어 이동하는 전자
쿠퍼와 그의 동료들은 정상 상태에서는 서로 반발하는 전자들이 초전도체 내에서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것으로 저항 제로의 비밀을 풀려고 했다. 가까이 있는 전자들이 서로 짝을 지어 전기저항을 사라지게 만드는 현상은 전자들이 개별적으로 운동한다는 상식으로는 풀리지 않은 것이었다.
음전하를 띤 하나의 전자가 초전도체 격자 내의 양전하를 띤 이온들 사이를 통과할 때 격자에 국부적인 변형이 일어난다. 즉 양이온들이 전자가 움직인 궤도 쪽으로 쏠리는 분극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치 방석 위에 당구공을 놓으면 굴러가면서 방석에 골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국부적으로 양전하 밀도가 커지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2의 전자는 이곳으로 가속받게 된다. 첫번째 전자가 통과하기 전에, 그리고 격자가 원래 위치로 복원되기 전에 두번째 전자가 골 사이로 빨려 들어온다. 서로 반발해야 하는 두개의 전자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연결된다. 두개의 전자들이 격자진동의 도움을 받아 운동함으로써 전체로서 에너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이다(그림 1).
1933년 마이스너와 오첸펠트에 의해 초전도 현상의 또다른 발견이 이뤄졌다. 이들은 초전도체가 저항이 제로가 되는 성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내부 자기장을 밖으로 내보내는 자기 반발성이 있음을 알아냈다.
초전도체 위에 붕 떠있는 자석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두면 자석에서 나온 자기장이 초전도체에 미친다. 하지만 초전도체가 자기장을 배척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자석이 뜨게 되는 것이다.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한다(그림2).
극저온에서 상온의 세계로
초전도체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임계온도는 높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임계온도가 낮다는 것은 그 만큼 초전도체를 냉각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속계 초전도체를 극저온으로 냉각시키기 위해 지금까지는 주로 액체헬륨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액체헬륨은 리터당 수만원에 이를 정도로 그 값이 비싸고 영하 2백69℃로 너무 낮아서 ‘크라이오스탯’이라고 하는 특수한 구조의 단열용기가 없으면 담고 보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이 좀더 높은 임계온도(Tc)의 초전도체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금속계에서 니오브-티탄(Nb-Ti, Tc=9K), 니오븀주석(Nb3Sn, Tc=18K)과 같은 실용적으로 중요한 초전도체들이 발견됐다. 또한 금속계 저온초전도체에서 만들기가 까다로운 니오븀게르마늄(Nb3Ge)에서 23K 임계온도를 기록했다(최근에는 임계온도가 39K인 새로운 붕화마그네슘(MgB2) 금속초전도체가 발견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속계 초전도체는 냉매를 사용해 냉각하는 경우 고가이면서 취급이 까다로운 헬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저온냉동기를 초전도마그네트에 붙여 액체헬륨 없이도 간편하게 극저온까지 냉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형기기에 적용하기는 아직 어렵다.
1986년 베드노르즈와 뮐러 박사에 의해 기존 상식의 벽을 깨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이 이뤄졌다. 절연체로만 생각됐던 세라믹에서 임계온도가 높은 초전도체가 발견된 것이다. 1986년 이후 많은 종류의 세라믹 초전도체가 속속 발견되면서 임계온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액체헬륨보다 훨씬 싼 생수 정도의 가격에 관리하기 편하다는 두가지 장점을 갖춘 액체질소의 온도(77.3K, -1백96℃)보다 온도가 높은 곳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초전도체들이다. 이들 세라믹 초전도체들은 모두 구리와 산소로 이뤄진 평면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구리산화물계 초전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라믹 초전도체는 산화물과 탄산염 분말을 일정한 비율로 배합한 후 막자 사발로 아주 가늘게 갈아서 프레스기를 이용해 압축 성형한 후 전기로에서 가열하면 만들 수 있고, 액체질소로 냉각하면 초전도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임계온도가 금속계 초전도체보다 높은 세라믹 초전도체를 ‘고온초전도체’라 부르고 있지만, 고온초전도체는 일반인들이 보면 아직도 극저온의 세계다. 그러나 고온초전도체는 BCS이론에서 예측된 임계온도의 한계인 40K의 벽을 깼기 때문에 초전도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숙제를 준 셈이다.
만일 고온초전도체를 포함한 모든 초전도체들의 초전도 메커니즘을 하나의 이론으로 규명할 수 있다면 과학계의 획기적인 성과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상온에서도 초전도 특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합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그렇듯 연구자의 경험과 다소의 우연에 의해 상온초전도체가 발견될 수도 있다. 상온초전도체가 실용화되면 우리가 안고 있는 지구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혁명적인 기술이 될 수 있고, 초전도 미래사회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최근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상온초전도체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가끔 들린다. 그러나 아직은 특성의 재현성에 문제가 많고 여러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상온에서 초전도특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신뢰성 있는 상온초전도체 발견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기술예측에 따르면 상온초전도체 발견 시기는 2018년이 될 것이다.
에너지와 정보통신, 생명공학까지
‘전기저항 제로’와 ‘자기 반발성’이라는 초전도체의 성질이 함께 응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자기부상열차다. 기존 열차는 철로 된 바퀴와 레일 사이에 작용하는 마찰력을 이용해 차량을 추진한다. 속도를 높일수록 마찰 등 저항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 저항이 한계점에 다다르면 바퀴가 공전하게 된다. 기존 열차로 낼 수 있는 안정적인 최고 속도는 시속 3백50km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기부상열차는 마찰력이 아닌, 전자기적 힘에 의해 추진한다. 자기부상열차의 바닥에는 초전도 코일이, 철로에는 전자석이 설치돼 있다. 초전도 코일에 철로의 자석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자장이 생겨 기차가 뜨게 되는 것이다(그림3). 또한 코일은 저항이 없으므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전류가 계속 지속되며, 마찰력이 없으므로 오르막길이나 눈비가 내린 후의 상황에서도 쉽고 안전하게 빠른 속력을 내면서 주행할 수 있다.
최근 병원에 많이 보급되고 있는 MRI 장치 내부에는 니오브-티탄 초전도선으로 만든 대형 초전도마그네트가 들어있다. 초전도선으로 초전도마그네트를 만들면 지금까지의 전자석이나 영구자석보다 훨씬 안정하고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인체 세포 내의 수소 원자에 자기공명현상을 일으켜 원자의 밀도와 물리화학적 특성을 영상화시키는 MRI 장치는 고화질의 영상을 얻기 위해 매우 균등하고 안정한 자기장이 필요하다. 초전도 MRI마그네트는 여러 형태의 코일로 분할돼 균등한 자기장을 만드는데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면 촬영 도중 화질이 떨어지므로 안정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전도마그네트에 흐르는 전류가 일정해야 한다. 코일과 전원을 통해 흐르는 전류 파형은 아무리 고안정도의 직류 전원과 초전도마그네트를 연결해도 확대해 보면 그 값이 일정하지 않다. 이것은 전원에서 완벽한 직류 전류를 만들어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초전도선의 전기저항 제로의 특성을 이용하면 전류 값이 거의 일정한 영구전류를 만들 수 있다.
영구전류를 이용하면 전기에너지를 초전도마그네트에 자기 형태로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초전도에너지저장장치(SMES)가 실현된다. 심야에 남은 전력을 전력변환기를 통해 직류 상태로 바꾸고 SMES에 저장했다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주간에 방출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전도기기는 외부 전원에서 전류를 공급하지 않아도 자기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보급될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에너지를 대폭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안정하게 발생시킨 강자기장은 많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고성능을 갖는 신소재의 개발은 물론 미래의 무공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핵융합 발전을 위한 초전도마그네트 개발이 더 쉬워질 것이며, 정보통신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초고자기장 MRI장치가 개발되면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단백질 분자 구조를 해명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공학 기술까지 한층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