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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울돌목에 국내 최초 조류발전소 떴다

명량대첩 승리로 이끈 빠른 물살로 1MW 전기 생산

지난 10월 8일 오전 10시. 진도 울돌목 시험조류발전소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경기 안산에서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연구원 4명이 도착하더니, 뒤따라 경남 창원에서 한국전기연구원 소속 연구원 5명이 도착했다.



 

 

여기에 발전소 운영을 맡고 있는 동서발전 연구원 5명까지 모이니 조용하던 사무실이 갑자기 북적북적하다. 이들은 보름에 한 번씩 울돌목의 조류가 가장 빠른 때에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동연구팀이다.

오늘의 임무는 울돌목 조류발전소의 발전효율을 확인하는 일. 유속 조건에 따라 조류발전시설이 실제로 전기를 얼마나 생산해내는지 전체시스템을 평가하는 내용이라, 4년여에 걸친 지금까지의 노력이 고스란히 증명되는 아주 중요한 실험이다. 안전 모자를 쓰고 구명조끼를 입는 연구원들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초속 5.5m 강한 조류, 세계 5위 안에 들어


오전 11시. 연구원들이 일제히 시험조류발전소로 향한다. 시험조류발전소는 진도대교에서 남쪽으로 약 900m, 육지로부터는 150m 떨어진 바다에 있다. 멀리서 봤을 땐 바다에 집 모양 컨테이너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기둥이 6개인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발전소 상부하우스를 그 위에 지었다.

발전소 주변에는 철제 울타리를 쳐 놓았다. 예상보다 큰 규모에 놀란 기자에게 발전소 건설과 운영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해양연구원 박진순 선임연구원은 전체 높이가 48m이고 무게는 철골 구조만 1200t이 넘는다고 귀띔해 줬다.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을 빼도 아파트 5층 높이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발전소 내부로 들어갔다. ‘쏴’하는 물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바로 옆 사람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발아래에 조류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데도 연구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태연하게 실험을 시작한다.





어디선가 ‘드르륵’ 맷돌 가는 소리가 들려 쳐다봤더니, 발전소 천장부터 바닷속까지 이어지는 지름 40cm 정도의 거대한 축이 회전하고 있다. 발전소에는 이런 축이 2개가 있는데, 각각이 빠르게 돌았다가 느리게 돌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박 연구원은 “축 아래에 터빈(수차) 세 개가 세로로 연결돼 있어, 물속 터빈이 돌면 그 힘이 축을 통해 물 밖에 있는 증속기에 전달된다”며 “축의 회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이유는 조류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빈이 조류가 가진 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면 축이 이 에너지를 증속기에 전달하고, 증속기에서 축의 회전 속도를 높여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때 발생하는 전기는 조류 속도의 세제곱에 비례해 증가한다. 박 연구원은 “유속이 2배 빠르면 전기 에너지가 8배 더 생산되는 셈”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울돌목은 조류발전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울돌목의 조류 유속은 최대 초속 5.5m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빠르고 세계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시험조류발전소는 이런 거센 조류를 이용해 축 한 개당 500kW(킬로와트, 1kW=1000W)씩 총 1MW(메가와트, 1MW=106W)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330가구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양으로 세계에서 영국의 1.2MW급 조류발전소 다음으로 크다.



바람개비형보다 수직축 터빈 선택한 이유

여기에는 시험조류발전소에 사용된 터빈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터빈은 조류가 흐르는 방향과 회전축이 이루는 각도에 따라 수평축, 수직축 두 가지로 나뉘는데, 어떤 터빈을 쓰느냐, 터빈의 효율이 얼마냐에 따라 크기가 같더라도 발전용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울돌목 시험조류발전소에는 효율이 30%인 지름 3m, 높이 10.8m의 수직축 터빈이 쓰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람개비나 프로펠러는 모두 수평축 터빈이다. 수평축 터빈은 유체가 흐르는 힘을 밀어내려는 반작용, 즉 양력으로 회전한다. 따라서 이런 터빈이 회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체가 흐르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터빈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실제로 하천처럼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곳에 주로 사용한다. 수평축 터빈은 모든 발전 시설을 물속에 설치하기 때문에 시설의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수직축 터빈은 조류처럼 유체의 흐름이 자주 바뀌는 경우에 유리하다. 유체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든 터빈이 돌기 때문이다. 대형 터빈 여러 개를 세로로 연결하기 때문에 기둥이 너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설비가 물 밖에 있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크다.





같은 수직축 터빈이라도 날개의 개수나 모양은 제각각이다. 시험조류발전소에서는 날개가 3개인 터빈과, 날개가 6개인 터빈의 성능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현재 울돌목에 설치된 터빈은 조류 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효율이 30%에 불과하지만, 조류 특성을 분석해 날개의 개수나 각도를 개선하면 효율을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도대교에 부딪치거나 멀리 떠내려가거나

시험조류발전소가 지금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다. 박 연구원은 “울돌목은 조류발전소를 짓기에 최적의 장소인 동시에 최악의 장소”라는 말 한 마디로 그동안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울돌목의 해저는 수심이 20~25m 정도로 얕고 평탄한 지형이 넓게 발달해 있어서 발전소를 짓기에 유리하지만, 해협의 폭이 500m 정도로 좁아 유속이 매우 빠르다. 연구팀은 조류발전의 필수 조건인 이 빠른 유속 때문에 발전소 철골 구조를 설치하는 데만 두 차례나 실패를 겪었다.

2006년엔 발전소 철골구조를 해저 암반에 고정하기 위해 기둥을 박을 자리를 파내던 중 굴착장비가 빠른 물살에 휩쓸려 진도대교와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7년엔 육지에서 만든 발전소의 철골구조를 발전소 설치 지점까지 배로 운반하던 중 배가 조류에 균형을 잃는 바람에 진도대교에 부딪혔고 그 바람에 구조물은 침몰했다.

높이 40m, 무게 1000t이 넘는 구조물은 940m나 떠내려가 엉뚱한 곳에 박힌 채로 발견됐다. 두 번의 실패로 공사는 2년이나 늦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울돌목은 선박들이 자주 이동하는 항로라 공사 지점을 표시하기 위한 부표도 함부로 띄울 수 없었다.


 

 

 

 




게다가 부표를 설치해도 물살이 너무 세서 부표가 제대로 떠 있지 못했다. 또 발전소 철골구조를 공사 지점에 옮겨 놓기 위해서는 그것을 들어 올릴 1500t 크레인이 필요한데, 이 대형 크레인이 진도 전체의 3분의 2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선로를 건드릴 위험이 있다고 해서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다.

울돌목의 조류 방향은 6시간마다 바뀌는데, 바닷물이 진도대교 쪽으로 흐르지 않을 때만 공사가 가능했다. 발전소 위치도 처음 계획했던 지점보다 조류 특성은 조금 약하지만 진도대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런 우여곡절 때문에 2005년 4월에 시작한 공사가 지난 3월에나 마무리됐다.

연간 1000t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조류발전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박 연구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실정”이라며“석유나 석탄 대신에 쓸 수 있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류는 달과 태양이 있는 한 영원히 쓸 수 있는 무한 청정에너지이고, 조석현상은 사전 예보가 가능하므로 일정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1MW급 조류발전은 연간 1000t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풍력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조류발전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물은 공기에 비해 밀도가 840배 정도 커 조류발전을 하면 같은 크기의 터빈으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조류발전소 때문에 선박이 이동에 불편을 겪기도 해 여러 가지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조류발전소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엔 친환경 조류발전소가 오히려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연구원은 “조류발전은 조력발전처럼 댐을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그나마 적은 편”이라며 “터빈의 회전 속도가 50~60RPM(1분당 회전수)이기 때문에 헤엄칠 수 있는 대부분의 해양 생명체는 이를 피해갈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해양연구원 자체 조사 결과 터빈을 피하지 못하고 죽은 생물은 대부분 유영능력이 없는 플랑크톤 종류이고, 동물 플랑크톤의 약 6%가 터빈의 물리적 충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원은 “시험조류발전소는 규모가 작아 법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지만 앞으로 시설이 더 늘어나면 반드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시험조류발전소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주요 조류발전 후보지인 전남 울돌목, 장죽수도, 맹골수도 해역에 적합한 조류발전 시스템을 구축해, 2013년에는 지금 규모의 90배인 90MW급 상용조류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또한 발전소를 배에 설치해 수심이 깊은 곳, 조류가 빠른 곳으로 옮겨 다니며 조류발전을 할 수 있는 부유식 조류발전소도 구상 중이다. 현실화되면 발전소를 설치하는 데 드는 막대한 공사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연구원은 “사람들이 조류발전소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 생각하지 말고, 환경이 조류발전소에 미치는 영향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도 전했다. 그는 발전소 사방에 설치된 부유물 차단막을 가리키면서 “육지로부터 떠내려오는 스티로폼이나 냉장고 같은 생활 폐기물 때문에 여러 차례 시설이 망가져 설비 보호 차원에서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물 위에 뜨지 않는 그물은 터빈에 걸려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차단막도 완벽한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박 연구원은 “조류의 흐름이 차단막에 막혀 발전효율이 떨어지고, 난류가 생겨 생산되는 전기의 양이 불규칙한 2차적인 문제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취재가 끝날 때쯤 발전소에 근무하는 주병곤 선장의 배를 타고 발전소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거센 조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물살은 정말 살아 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마침 바람도 강해 파도가 심했다. 바닥에 암초가 있는지 바닷물이 흰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치는 부분도 있었다.

선장은 배가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엔진의 출력을 높여 시험조류발전소에 다가갔다. 거대한 축 2개가 나란히 회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내밀어 축이 곧게 뻗어 있는 청록색 바닷속을 들여다봤다. 빠르게 요동치는 물살을 배경으로 힘차게 도는 대형 터빈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곳에는 연구원들의 노력과 무한한 가능성도 함께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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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진도=이영혜 기자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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