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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가지에 담긴 애달픈 사연

사랑과 증오의 변주곡 버드나무

완연한 봄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면 버드나무의 길게 늘어진 가지가 아른아른 우리 맘을 설레게 한다. 이렇게 땅으로만 길게 늘어져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버들가지에는 그만의 비밀이 있다는데….


‘노들 강변 봄 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볼까. 에헤∼이요.…’

우리나라 구전민요의 한가락이다. 이렇듯 봄이 익어가면 가느다랗게 늘어진 버들가지에 아지랑이가 간지럼을 먹여 물오른 파란 가지는 이리저리 산들바람에 실려 몸을 비튼다. 새싹이 틀 때 멀리서 바라보는 버들은 황금실로 차양을 만든 듯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자랑한다. 또한 버드나무가지에서 느껴지는 연약함은 가냘픈 여인을 연상케 한다. 가느다란 개미허리를 버들허리(유요), 예쁜 이마를 버들이마(유미), 우아하고 늘씬한 몸매를 버들맵시(유태)라 했다. 자연히 버들은 사랑을 노래한 옛 시가의 단골 메뉴였다.

중국 시인 도연명은 집 앞에 다섯그루의 버들을 심어 오류선생이라 했고, 우리나라 대표적 시문집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버들을 소재로 한 시가 무려 90여 수나 등장한다.


길게 늘어진 가지의 비밀

버들이 가냘픈 여인으로 형상화된 이유는 바로 가지의 연약함과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듯한 버들가지에 있다. 대부분의 나뭇가지는 봄에 새싹이 나와 그 해 가을이면 가지가 하늘로 향해 당당히 버틸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다. 그러나 버들가지는 줄줄이 밑으로 늘어져 항상 간들거린다. 왜일까.

버들가지의 성장은 무척 빨라 한해 동안 자라는 가지는 매우 길고 가늘며, 또 많은 잎이 달린다. 자연히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늘어질 수밖에 없으니 하늘로 향해 일어설 엄두도 못내고 자꾸 밑으로 길게 늘어진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봄에 싹이 터서 처음 만들어진 나무세포는 분열을 하면서 이웃 세포를 붙잡아맬 물질이 필요하다. 이 역할은 ‘펙틴’(pectin)이라는 물질이 하는데, 마치 젤리같이 말랑말랑하면서도 튼튼하게 접착할 수 있는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봄에 처음 싹이 나와 오래지 않은 나뭇가지는 부드럽고 쉽게 휘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펙틴은 차츰 ‘리그닌’(lignin)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대치된다. 리그닌은 세포와 세포 사이에 콘크리트를 부어넣은 것처럼 가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하지만 버들가지는 보통 나뭇가지에 비해 리그닌 양이 3-4% 정도 적다. 단단함을 만드는데 살짝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또 버들가지의 세포는 세포벽이 얇고 벌집 같은 공간이 많아 보통 나뭇가지에 비해 연약하다. 이래저래 버들가지는 쉽게 휘고 흔들리며 하늘로 향해 서보지도 못하고 아래로 늘어진다.
 

버들가지는 하늘로 향하는 것 이 아니라 땅으로 늘어져 간들 거린다. 가지를 단단하게 만드 는 리그닌의 양이 적기 때문이 다. 또한 버들가지의 세포벽은 벌집 같은 공간이 많아 보통 나 뭇가지보다 연약하다.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 든 까닭

버들 또는 버드나무라고 말하는 종류는 우리나라만도 30여 종이나 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표적 버들은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이다. 이 외에도 개울가에서 버들붕어의 살림집이 되는 앙증맞은 크기의 갯버들, 자람이 웅장하고 크다고 해서 왕버들이라 부르는 종류도 자주 만날 수 있는 버들이다.

옛 시가 속에서 버들은 여인과 사랑,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산 버들가지 골라 꺾어 님에게 드리오니/ 주무시는 창가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 내릴 때 새 잎이라도 나거든 날 본 듯 여기소서’

이 시는 조선 중기의 기생 홍랑이 헤어지게 된 애인에게 바친 시로, 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작년 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된 적이 있다. 홍랑의 애인은 함경도 북도평사라는 벼슬에 있던 최경랑인데, 이 둘은 함경도 경성에서 사랑을 나누다 최경량의 임기가 만료돼 한양으로 떠나면서 이별을 하게 된다. 그를 배웅하고 어둠이 깔리는 저문 날, 홍랑은 비를 맞으며 버들가지와 이 시조를 지어 건네주었다고 한다. 신분을 초월한 연인 사이의 안타까운 이별이 버들가지에 절절히 베어있다.

버들은 자람이 까다롭지 않아 그냥 꽂아만 둬도 쉽게 뿌리 내려 새싹을 틔우고 푸름을 간직하니 변치 않은 사랑의 징표로서도 그만이다. 옛 사람이 연인과 헤어질 때 배웅을 하는 마지막 이별 장소는 흔히 나루터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눈물을 감추고, 나루터에 흔히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가슴과 가슴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버들을 건네주는 뜻은 당신이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산들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버들가지처럼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은근한 투정이 들어있는 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외며 구원을 구하면 곧 사랑과 자비로써 사람의 고뇌를 없애고 구원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탱화에는 관음도가 널리 그려진다. 14세기 초의 ‘양류관음도’를 보면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있고, 병에도 버드나무가 꽂혀 있다. 버들가지가 실바람에 나부끼듯, 미천한 중생의 작은 소원도 귀 기울여 듣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다. 또 버들가지가 꽂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물병 속에는 ‘감로수’가 들어있는데, 이를 중생에게 뿌려 번뇌와 욕망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정화했다고 한다. 실제로 버들의 뿌리는 ‘감로수’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다. 오래둬 잔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물에 녹아있는 질소와 인산을 흡수해 물을 맑게 하는 ‘정화조’의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들에 꽃이 섞이면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조금은 육감적이고 퇴폐적인 사랑으로 변한다. 춘향전을 보면, 봄바람에 글공부가 싫어진 이몽룡이 광한루로 나갔다가 마침 그네를 타고 있는 성춘향과 처음으로 만난다. 이몽룡은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고오너라”라고 방자를 재촉한다. 화류(花柳)는 한자로 꽃 화(花)에 버들 류(柳)를 쓴다. 옛 유원지에 흔히 심는 버들에 그네를 매고 복사꽃, 오얏꽃을 배경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였으니 숫총각 이몽룡으로서야 금세 정신이 ‘몽롱’해질 수밖에 없다.

평양의 기생방에 유행하던 화류가의 첫머리는 ‘화류간에 노든 벗님, 이 내 말씀 들어보소…’로 시작한다. 또 몸을 파는 여인을 두고 노류장화라고 한다. 길가에서나 흔히 만나는 버들이나 담 밑에서 핀 꽃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은 아예 화류계라 했다.
 

버들가지는 14초의 양류관음도에 나온다. 관세음보살의 왼 손에 들려진 버들가지는 보살의 자혜로운 마음을 상징한다



버드나무 궤짝에 내린 저주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버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여인의 사랑과 증오에 연루된 경우가 많았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의 어머니가 버들꽃 부인, 바로 유화부인이다. 물의 신 ‘하백’의 큰 딸인 유화는 동생들과 함께 강가 둔치에서 자주 놀았다. 이런 곳에는 갯버들이 잘 자란다. 나지막한 키에 여러 포기가 뭉쳐 자라는 갯버들이 이른봄에 내미는 앙증맞은 꽃이 바로 버들강아지다. 하백은 버들강아지처럼 귀여운 맏딸에게 유화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고 아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가 끼는 법, 유화는 어느날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바람둥이 해모수를 만나 짧지만 진한 사랑을 나눈다. 바람난 딸에게 크게 실망한 하백은 눈물을 머금고 유화를 추방한다. 하지만 유화는 천만다행으로 동부여의 금와왕에게 발견돼 왕궁으로 들어간다. 엉뚱하게도 그녀는 알 하나를 낳았고 여기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고려시대 왕비의 이야기를 다룬 ‘고려사열전 후비조’를 보면, 아직 임금이 되기 전의 왕건이 정주 지방을 지나다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쉬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호족인 유천궁의 딸 유씨가 길옆의 시냇가에 서서 살짝 윙크를 한다. 이것이 인연이 돼 나중에 그녀는 신혜왕후가 된다. 궁예를 쫓아내고 왕건을 추대하는 쿠데타가 모의될 때, 망설이는 왕건에게 손수 갑옷을 입혀주며 나가길 독려하는 것도 그녀다. 신혜왕후는 자기의 미모를 믿고 왕건을 만나는 과정부터 의도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성씨도 버들이고 버드나무 옆에서 태조와 인연을 맺었지만, 버들허리를 가진 연약한 여인이 아니라 나라의 임금을 갈아치운 대단한 여장부였다.

조선시대에도 버들에 얽힌 여인이야기가 전해진다. 성종 때 대비가 거처할 장소로 창경궁을 증축하면서 임금은 궁궐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빨리 자라는 버들을 심으라고 했다. 19세기 초의 ‘동궐도’에도 가지가 늘어지는 능수버들이 그려져 있으니, 성종 당시에도 능수버들을 심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임금의 배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임금과 사별하고 권력의 핵심에 밀려난 여인들에게는 먼 산을 쳐다보며 가신 님을 그리워하는 것 마저 제약하는 가혹한 조치였을 것이다.

살아있는 버들은 사랑의 징표로 대접받았으나 죽어서는 저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역시 성종 때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는 버드나무로 만든 상자 속에 저주글귀와 독약인 비상을 넣어 권숙의 집에다 던지는‘비상 투척사건’에 연루된다. 이는 성종의 사랑을 잃는 빌미가 됐고, 결국 폐비가 돼 죽임을 당했는데, 이는 뒷날 연산군의 갑자사화 비극으로 이어졌다. 가녀린 버들가지로 엮은 작은 버들궤짝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비극적인 여인과 함께 했던 것이다.


19세기 초의‘동궐도’. 가지 가 늘어지는 능수버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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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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