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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이슈] 넓디넓은 정수장에서 깔따구 찾기, eDNA면 가능!

꼭 꼭 숨어라~ 깔따구 꼬리 보일라~
하루 수만 t(톤)의 수돗물을 생산하는 정수장에 깔따구 유충 한 마리가 숨어들었다. 
길이가 1cm밖에 되지 않는 이것을 무슨 수로 찾아낼까. 전문가들은 환경유전자라 불리는 ‘eDNA(Environmental DNA)’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물, 토양, 공기 등 
환경을 통해 그곳의 생물 정보를 추적하는 eDNA 연구의 최전선을 살펴봤다.
 

“수돗물 필터에서 깔따구 유충을 발견했다.”


2020년 7월 인천 서구를 시작으로 인천 북부 일대와 부산 등에서 벌어진 일명 ‘수돗물 깔따구 유충 사태’는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는 전국에서 총 2318건이 접수됐다. 


환경부는 전국 정수장을 대상으로 깔따구 유충의 유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역학조사에는 물 관련 전문가 및 수서곤충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당시 제주 강정정수장 역학조사반장을 역임했던 곽인실 전남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한국환경유전자학회장)를 만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곽 교수는 유충의 형태와 DNA를 분석해 깔따구 유충의 종을 알아내고, 깔따구 유충이 정수장의 활성탄지에서 유출된 것을 최초로 밝혀낸 장본인이다.  doi: 10.11614/KSL.2020.53.3.286


유충의 사체에 남겨진 흔적을 분석한 결과, 깔따구 유충의 손톱과 발톱, 이빨과 꼬리 부분에선 활성탄이 발견됐다. 정수장의 침전지와 활성탄 여과지에 깔따구가 알을 낳으면서 유충이 자랐고, 이것이 수도관을 통해 가정까지 흘러가 샤워기 필터에 낀 채 발견된 것이다. 곽 교수는 처음 활성탄을 발견했던 당시 “살아있는 생물은 아무리 작은 생물이라도 처했던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에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깔따구와의 전쟁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지난 2년 동안 인천뿐만 아니라 창원, 수원, 제주 등지의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환경부는 올해 10월부터 ‘먹는 물 수질감시항목 운영 고시’를 개정하고 깔따구 유충을 감시 항목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한 달에 한 번, 전국 정수장의 여과 완료된 수돗물 100L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깔따구 유충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1cm 남짓인 유충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현미경 관찰로만 알아내긴 어렵다. 곽 교수는 “여기에 eDNA 모니터링이 추가된다면 깔따구 유충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흔적’만으로 존재 여부 알아내 
높은 민감도가 강점 

 

eDNA는 물, 토양, 공기 등 환경 시료에 포함된 생물 종들의 DNA복합체를 뜻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점액, 배설물, 피부 세포 등을 DNA 형태로 주변 환경에 흘린다. 따라서 환경에 남아있는 DNA를 추출해 분석하면 해당 환경에 어떤 생물이 존재하는지 찾을 수 있다. eDNA 분석은 비무장지대(DMZ)처럼 접근하기 힘든 지역의 생물이나, 찾기 힘든 희귀종의 존재를 간편하게 탐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석은 물이나 퇴적물 등 환경에서 시료를 채취하며 시작한다. 희귀종 물고기를 찾고 싶다면 해당 물고기가 살 것으로 예상되는 강물을 시료로 채취해 확인하는 식이다. 이후 강물을 거름종이 필터로 여과시켜 타겟 DNA 농도를 높인다. 그다음 일정한 양으로 증폭시키기 위해 eDNA를 정량화한다. 이렇게 마련된 eDNA는 강물에 사는 여러 생물의 DNA 흔적이 섞인 ‘혼합’ 상태다. 이 중에 찾고 싶은 희귀종 물고기의 DNA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선, 해당 종의 특별한 프라이머(DNA 합성이 시작되도록 돕는 짧은 유전자 서열)를 붙여 PCR로 증폭시킨다. 희귀종 물고기의 DNA가 있다면, PCR을 통해 양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으로 분석한다. NGS는 혼합 상태의 eDNA에 어떤 종들의 DNA가 섞여있는지 한 번에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희귀종 물고기가 존재하는지는 물론, 강물에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eDNA 연구와 일반 DNA 연구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현미경을 통한 모니터링과 DNA 연구는 모두 깔따구 유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깔따구 유충이 워낙 작으니 놓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eDNA 분석은 시료에 깔따구 유충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흔적만으로 유충의 유입 여부를 알 수 있다. 곽 교수는 “수돗물 1650L에 깔따구가 한 마리 이상 살고 있기만 해도 그 존재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높은 민감도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0년 8월, 국립생태원은 eDNA 분석을 통해 DMZ에서 멸종위기 어류 10종의 서식을 확인하기도 했다.

실종자 수색부터 범죄자 추적까지
eDNA 활용성 무궁무진

 

eDNA 연구는 적용 범위를 계속 확장해 가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2022년 9월 ‘법의학, 생물다양성 연구에 대한 eDNA의 잠재력’ 보고서를 통해 “바다에서 실종된 군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eDNA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바다에서 실종된 군인은 4만 1000명에 이른다.


eDNA를 활용한 실종자 수색은 수색자가 수중 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해 난파선을 찾고, 과학자들이 근처의 물과 퇴적물을 수집해서 인체 DNA를 찾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수중 탐색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물속에서 인간의 DNA는 길게는 한 달 넘게 검출 가능한 상태로 유지된다. 마리 안토니 다스 호주 디킨대 연구원팀이 물 시료에서 인간 DNA 검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댐에서 퍼온 물에서는 최대 11일, 증류수에서는 최대 35일 동안 DNA가 검출 가능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oi: 10.1111/1556-4029.15124 연구팀은 “수생 환경에서 실종자를 찾거나, 법의학 조사에 활용하기 위해 환경에서 인간 eDNA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연구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eDNA 분석은 토양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용의자 차량에 묻어 있는 먼지에서 박테리아나 곰팡이 식물에서 떨어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찾아내고, 이를 분석해 용의자의 차가 어느 길을 지나왔는지 추적하는 식이다. doi: 10.1016/j.forsciint.2023.111599


최근에는 공기 중의 eDNA도 분석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공기는 물이나 토양에 비해 부피가 커서 분석하려고 하는 DNA의 밀도가 낮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2021년 3월 31일, 국제학술지 ‘피어제이’에 공기에서 동물 DNA를 수집할 수 있다는 개념이 처음 발표된 이후, doi: 10.7717/peerj.11030 2022년 10월 25일에는 공기 중에서 다량의 인간 세포와 DNA가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포렌식 사이언스 인터내셔널’에 발표됐다. doi: 10.1016/j.fsigss.2022.10.063 실내 먼지의 상당 부분이 각질을 포함한 인간 세포와 DNA로 이뤄지는데, 실내 공기를 빨아들인 후 필터로 여과한 먼지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바다거북보다 인간 DNA가 많았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물, 공기, 토양에서 인간의 DNA를 식별하는 기술은 동전의 양면처럼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낳는다. 지난 5월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이콜로지 앤 에볼루션’에는 다양한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의 DNA가 발견됐고, 특정 질병 정보 등을 복구할 수 있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doi: 10.1038/s41559-023-02056-2


주장을 제기한 데이비드 더피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휘트니 해양 생명과학 연구소에서 바다거북을 치료하는 연구자다. 그의 연구팀은 바다거북의 질병을 모니터링하는 목적으로 eDNA를 연구해 왔는데, 실험 과정에서 때에 따라 바다거북의 유전물질보다 인간의 유전물질이 더 많이 검출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인간 유전자 혼획(HGB)’이라고 이름 붙였다.


HGB로 찾은 인간 DNA는 조상 혈통이나 자폐증, 당뇨병, 심장 질환 등의 질병 여부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더피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인간 eDNA 연구는 초기 단계라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 없으나, 소수 민족 추적 등 비윤리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우려가 분명히 있다”며 “eDNA 기술의 오용을 경고하고 방지하는 것이 논문을 발표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실제로 해당 논문이 발표된 후 에린 머피 미국 뉴욕대 법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DNA는 카메라와 달리 개인을 넘어 친척, 자녀, 조상을 추적한다”며 “미래에 DNA가 사람에게 어떻게 사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대해 김무웅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생명공학 연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과학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시의적절한 규제를 마련하기 위해 과학자, 정책가, 대중들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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