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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의 역사를 이룬 인물들의 삶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들의 발자취와 업적은 물론이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내면의 힘이 궁금할 것이다.

과학자들의 생을 엿보고 싶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 과학자들의 얘기를 전하는 책을 보면 몇가지 다른 양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후대 사람이 뛰어난 인물들의 일대기와 역사적 의미를 정리한 위인전 형식의 책이 있다. 또 과학자 자신이 직접 연구생활과 인생을 정리하면서 쓴 자서전이나 회고록 형식의 책이 있다. 그리고 동시대인들이 과학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후 해당 과학자의 저서와 일기 등 자료를 기초로 쓴 글 등이 있다.

이 달에는 과학자들의 전기 중에서 이와 같은 3가지 다른 맛을 가진 책을 소개한다.


‘위인’과 ‘인간’ 사이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는 과학자만으로 이뤄진 전기집이다. 정치가, 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전기집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과학자만 콕 집어서 엮은 책은 왜 없을까 아쉬워하던 사람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책이다. 15세기 자연과학자 코페르니쿠스에서, 프로이트와 폴링 등 20세기 인물까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25명의 과학자가 등장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현재 나온 것은 ‘E〓${mc}^{2}$ 과 아인슈타인’‘라듐의 발견과 마리 퀴리’‘만유인력과 뉴턴’‘진화론과 다윈’‘위대한 발명과 에디슨’ 등 5권.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봤던 다소 진부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관심이 가는 것은,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이룬 과학의 발전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이자 광전효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과학자 아인슈타인. 세상의 완전한 이치를 탐구하고자 했고 과학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성과를 거뒀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유태인을 박해하는 조국 독일을 떠나 끝없는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사람. 불타는 열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인 라듐을 발견했던 마리 퀴리. 여성이 한사람의 독립된 인격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시대에 세상의 편견과 힘겹게 맞서며 과학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마리 퀴리에 대한 이런 얘기를 들어봤다고 해서 그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의 고민과 갈등이 단지 ‘위인’들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면 사실 구태여 책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리즈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과학을 사랑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졌던 고민과 갈등,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인내의 과정에 무게를 둔 점이 돋보인다.

책을 읽다가 그 과학자의 행동이 이해하기 어렵고 실망스럽다고 느껴질 때야말로 비로소 그들을 알게 되는 첫걸음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떤 난관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과학에 대한 열정을 만났을 때 바로 책을 읽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의 아주 특별한 사랑

자신의 삶을 곰곰이 되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쓰는 과학자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평생을 두고 매달렸던 연구의 희비와 생에 대한 숙연함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은 여느 책과 그 분위기가 다르다. 나직이 속삭이듯 말하는데도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인 구달’‘희망의 이유’‘인간의 그늘에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 중 하나인 제인 구달 박사가 쓴 자신의 얘기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곰베에서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고 연구한 과학자이며, 전세계 야생동물 보호와 환경운동의 어머니다. 그녀는 1960년대 이후 곰베에서 자신이 보아온 침팬지에 대해 많은 책을 저술해서, 동물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앞에 소개한 3권의 책은 모두 그녀 자신과 침팬지에 대한 얘기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제인 구달’은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구달이 동물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아프리카로 떠나, 대자연의 숲에서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는 과정을 담은 자서전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구달은 그 과정에서 자연과 교감하면서 얻은 자신의 변화와 깨달음을 ‘희망의 이유’에서 좀더 자세히 보여준다. 그녀는 침팬지들과의 생활을 통해 동물 역시 인간과 다름없이 품성을 갖고 있으며,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오만과 편견을 버림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삶을 변화시켜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그늘에서’는 구달이 동물행동학자로서 침팬지의 생태에 대해 쓴 보고서에 가깝다. 그러나 침팬지의 행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점에서 여느 연구서와는 많이 다르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사랑에 매력을 느낀 사람이라면, 곁들여 ‘유인원과의 산책’도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는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했던 구달, 르완다에서 고릴라를 연구했던 다이안 포시, 보르네오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했던 비루테 골디카스가 함께 등장한다. 동물들과 특별한 신뢰와 사랑을 나눈 이들 3명의 과학자를 통해 동물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팬들이 쓴 과학자 전기

자선전이나 회고록에 담긴 과학자의 삶이 잔잔한 호수라면, 다른 사람들이 쓴 과학자의 전기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상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글쓴이로 하여금 과학자들의 평범치 않은 사고와 행적에 주목하게 하고, 끊임없이 극적인 긴장에 열광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당 과학자의 열렬한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서전의 저자들은 그들 특유의 색깔로 과학자들을 재창조한다. 유명한 과학자들과의 인터뷰와 대화를 기초로 쓰여진 책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는 ‘생명의 느낌’‘뷰티풀 마인드’‘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보면 알 수 있다.

‘생명의 느낌’은 생명공학의 선구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다. 매클린톡은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본 메커니즘은 생명체 안에 있다는 것을 주장해, 20세기 유전자 지도의 초석을 마련한 과학자다. 책을 보면 그녀의 전기를 쓴 이블린 폭스 켈러야말로, 감정을 갖고 생명을 느끼고 생명과 소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최고 화제작 가운데 하나인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그린 것이다. 존 내쉬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 가운데 하나인 내쉬 균형 이론을 창안한 천재 수학자다. 이 영화는 뉴욕타임즈 기자 실비아 네이사가 쓴 같은 이름의 책을 원작으로 한다. 7백쪽이 넘는 엄청난 두께의 번역서를 집어드는 순간 고민이 되겠지만,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내쉬의 극적인 인생과 그보다 더 굴곡 많았던 내면 세계의 변화를 접할 수 있다.

‘뷰티풀 마인드’가 불행한 수학자의 인간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치열함을 끌어내는 책이라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는 기상천외한 행적으로 유명했던 물리학자 파인만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과학자다. 친구 랄프 레이튼이 그와 함께 드럼을 치며 나눈 얘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장난기와 모험으로 가득 찼던 파인만의 생을 통해 과학을 재미있는 놀이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표현방식과 구성의 천차만별에도 불구하고 이들 책에서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은 과학자들의 고통과 좌절까지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삶을 정직하게 증언하고자 했던 글쓴이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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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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