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학습 능률향상' 과 '스트레스해소' 를 위해 엠씨스퀘어(MC²)를 비롯한 각종 기구가 신문이나 TV에서 요란하게 선전되고 있다. 이 기구는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비쌈에도 불구하고 (재료 원가는 판매가의 몇십분의 1정도다) 수험생들은 물론 학부모의 입시에 대한 막연한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그래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기대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 학습능률 향상기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원리에 근거를 둔 것일까. 누구나 사용하면 선전과 같이 굉장한 효과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부작용의 위험성은 없는가.
이 기구의 핵심적인 원리는 인간의 뇌파 중 학습에 가장 효과적인 알파(α)파 (명상파)를 빛과 소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인간의 뇌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뇌 안정 유도한다
의학 분야에서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는 가장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다. 뇌파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국제 뇌파학회에서는 인간의 의식 상태에 따라 뇌파의 종류를 베타(β)파,알파(α)파, 테타(θ)파,델타(δ)파의 4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인간의 뇌파는 전기뇌파측정기(EEG)로 측정해서 알 수 있는데, 측정단위는 마이크로볼트와 초당주파수(CPS)다. 주파수가 낮을수록 내부의식인 잠재의식이 더 낮아져 무의식으로 향하게 된다. 주파수가 같을 때 진폭이 크다면 그 주파수에서 의식상태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표1).
알파파에 도달한 인간의 의식상태에서는 혼란스런 마음이 긍정적이며 편안하고 안정돼 스트레스가 감소한다. 그 결과 마음의 수용력과 집중력이 증대되고, 자연히 자신감과 기억력이 현저하게 향상된다. 특히 중간 알파의 파장은 학습 능률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적절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베타파와 상위 알파파, 그리고 중간 알파파가 적당히 섞일때 학습능률이 가장 잘 향상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학습능률 향상기구는 사람이 특정한 파장의 빛과 소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두뇌에서 알파파가 나온다는 연구를 토대로 외국에서 개발된 제품들이다.
이 기구들에는 알파파나 테타파와 같은 주파수를 기본으로 여러 가지 원색의 빛 펄스와 적절한 소리가 프로그래밍돼 있어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부 고급기구는 뇌에서 알파파가 나올 때 호흡이 길어지고 깊어지는 현상을 역이용한다. 깊은 호흡을 인지한 센서가 특정 소리를 이용해 기구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알파파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국내의 P박사가 개발해 판매하는 기구의 원리는 저주파 전자펄스발생코일을 머리에 두른 뒤 코일에서 발생하는 알파 파장의 반복펄스에 두뇌가 동조되도록 함으로써 알파파를 유도하는 것이다.
충분한 검증 없이 과대한 선전
그러나 이처럼 인위적으로 뇌파를 조작하는 기구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엠씨스퀘어'가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화제가 되던 1991년 초 미국 비행기에 비치된 통신판매 팸플릿에서 그 기구에 대한 광고내용을 보게 됐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과 함께 주의사항으로 "간질환자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는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아무런 주의나 경고가 없이 선전 판매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질 증세가 잠재적으로 내재한 경우 환자 자신도 모르고 있다가 외부의 어떤 자극에 의해 갑자기 증세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3년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한국 등에서 전자게임에 몰두하던 어린이들이 갑자기 발작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 전세계적으로 물의를 크게 일으켰다. 당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이, 급속하게 변하면서 깜박거리는 원색 화면을 장시간 응시하며 게임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뇌의 신체제어기능에 어떤 혼란이 야기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사례는 빛과 소리를 이용해 뇌파를 조절하는 기구도 잠재적으로 위험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실제로 국내에서 엠씨스퀘어를 사용하던 고등학생이 발작증세를 일으킨 사건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또한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유사사례도 어느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전호흡을 통한 기(氣)훈련이나 명상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이 기구를 사용했다가 오히려 기가 역상(逆上)해 숨이 답답해졌다고 지적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단전호흡은 의식을 배꼽 아래 단전 부위에 집중해 기를 모아 뇌파를 효과적으로 낮춰 명상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기구는 빛과 소리에 의해 초기에 의식이 눈과 귀에 집중되므로 기가 역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뇌파를 자연적 방법이 아닌 인위적 유도과정으로 변화시킨 탓에 생기는 위험의 단면이다. 따라서 허약자는 이 기구를 사용할때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 P교수가 제조한 기구도 필자가 사용해보니 심한 두통증세가 가끔 나타났다. 직접 P교수에게 이같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자 그럴 리가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을 뿐이었다.
한편 주위에 이기구를 구입한 학생들의 사용 실태를 조사해보니 구입 초기에는 상당한 기대감으로 열심히 사용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차이가 미미하거나 거의 느끼지 못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대부분 시들해져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의 예로 볼 때 뇌파의 인위적인 조절을 통해 학습능률을 향상시키려는 기구는 이론적으로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임상적 검증과정 없이 너무 과대선전돼 팔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특히 한국과 같이 특수한 입시환경과 과열된 진학열에 편승해 이 기구들이 수십만원대의 고가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음을 볼 때 구매자들은 좀더 신중을 기해야한다. 전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뇌파조절기구가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대량으로 판매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곤 없다고 한다.
가상현실 기술과 접목돼야
만일 이 기구를 학습보조용으로 올바르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사용한다면(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예상되지만)제한된 범위에서 학습능률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용자에 한해서다.
다시 말해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기구의 사용 여부보다 학생이 공부에 임하는 태도와 학습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돼 있다면 학습 보조기구로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런 소용이 없다. 참고서가 아무리 좋아도, 그리고 선생님이 아무리 잘 가르쳐도 학생 모두가 원하는 대로 공부를 잘할 수 없다는 평범한 이치 속에 이 기구들의 효과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본다.
뇌파조절기구를 이용해 학습효과를 향상시키는 기술은 인간의 뇌에 대한 매우 제한적인 정보를 근거로 만들어진 대단히 초보적인 '미완성' 기술이다. 보다 나은 효과는 사용자가 직접 학습을 하는 상황이 설정된 '가상현실' 의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회화를 한다면 기구 사용자는 뇌파가 조절된 상태에서 직접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좀더 발전된 뇌파조절기술은 조만간 완성될 전망인 가상현실 기술과 접목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
뇌파의 발생원리
사람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으면 대뇌피질을 관통하는 전류가 흐르는데, 이것이 두피에서 뇌파로 나타난다. 대뇌피질은 회백질과 백질로 구분된다. 두개골 아래에는 회백색을 띤 뉴런이 수mm의 층을 이루는데 이를 회백질이라 한다. 그 밑에 유수신경섬유(축삭을 둘러싼 수초를 갖는 뉴런)가 밀집된 백질이 있다.
보통 뉴런의 내부는 외부에 대해 60-90mV의 (-)전위를 갖는다(분극). 이때 다른 뉴런으로부터 전기적인 신호를 받으면(+) 이온 전류가 세포내에 유입돼 뉴런은 흥분한다(탈분극).
외부 자극에 의해 흥분한 뉴런은 자신과 연결된 다른 뉴런을 잇달아 흥분시킨다. 그 결과 전류는 대뇌피질과 두개골을 거쳐 두피에 이른다.
이를 기계로 측정해 주파수별로 구분한 것이 알파, 베타, 테타, 델타파 등이다. 정신이 안정될수록 뇌 주파수는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