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된 수능에 복제 문제가 출제됐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교과서 범위 내에서 출제했으니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사 문제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두고 벌어진 수능 논란의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자.
올해 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에는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복제에 관련된 문제가 출제됐다. 바로 과학탐구 인문계 8번 문제(자연계는 45번)다. 최근 생명공학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체세포 복제를 다룬 문제로, 쥐 A의 체세포 핵을 쥐 B의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한 뒤 쥐 C의 자궁에 착상시켜 탄생된 복제쥐에 대한 설명 중 옳은 것을 묻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한 답은 ‘② 쥐 A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이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의 정답이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경희여고 박찬규 교사 등 2명은 교육평가원에 보낸 질의서에서 ‘보기 ④ 쥐 A와 B의 형질을 동시에 가진다’도 답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복제된 쥐는 쥐 A의 핵에 들어있는 핵 유전자를 유전자의 대부분으로 갖겠지만, 쥐 B의 난자 세포질 속에 들어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도 일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 생산을 맡는 소기관으로, 이 기관의 유전정보는 세포의 핵이 아니라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 자체에 내장돼 있다.
고교과정 내에서는 문제 없어
평가원은 이 논란에 대해 보기 ②와 ④에서 ‘유전자’와 ‘형질’이라는 다른 용어가 사용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고교 교과과정에서 형질은 핵 유전자의 형질 발현을 의미하는 ‘표현형’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핵 유전자는 자손에게 유전돼 자손의 외형적 특징(표현형)을 나타내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유전되더라도 자손의 외형적 특징을 규정하는 등의 특정 기능은 아주 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보건원 중앙유전체연구소 이홍규 소장(서울의대 교수)은 “유전자와 형질이란 용어를 함께 사용해 문제를 까다롭게 비틀었지만 답은 평가원이 제시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과학탐구 문제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핵을 제공한 쥐의 유전자가 복제동물의 유전자와 같다는 문제를 자주 풀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는 이 문제가 복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에는 미흡한 문제였다고 평가한다. 국내 최초로 동물복제에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한우의 체세포 핵과 젖소의 난자로 복제된 소는 한우로 태어나지만 나중에 새끼를 갖게 되면 젖의 양이 한우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복제된 동물의 표현형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0.1% 정도이며 표현형을 제외한 유전형질의 1-3%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라고 한다.
황 교수는 이번 논란에 대해 “형질이 표현형을 의미한다면 평가원의 답이 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수험생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보기 ④는 넣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와 함께 교사들이 최신 시사 과학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시사적 문제를 출제할 때는 좀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복제전문 과학자가 풀면 어떤 답 쓸까
복제나 수정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은 언론매체나 교양 과학도서를 통해 수험생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교과과정 내에서만 판단해 문제를 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인간복제를 추진중이라고 알려져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탈리아의 생식의학자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는 복제와 관련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국립과학아카데미 복제 관련 회의에서 안티노리는 박사는 “복제아기는 여성의 난자 세포질 속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도 물려받기 때문에 완벽한 복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안티노리 박사가 이번 수능 문제를 풀었다면 어떤 답을 썼을까.
일선 고교에서 논술지도를 하고 있는 한 교사는 “논술에 대비해 최신 뉴스와 교양 과학도서를 참조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논술에서 같은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며 이번에 출제된 문제의 허점을 꼬집기도 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기능을 하나씩 밝혀가고 있다.
질병이나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과 함께 복제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기능을 가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복제 과정에서 핵이 제거된 난자에 포함된 미토콘드리아는 평소와는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일반적인 수정 과정에서는 수정란의 분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복제에서는 성체에서 추출한 체세포 핵을 정자와 같이 분화초기 상태로 돌려놓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주로 만든다. 난자의 핵을 제거할 때는 핵과 함께 세포질에 포함된 일부 미토콘드리아도 함께 빠져나간다. 따라서 복제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빠져나가는 미토콘드리아의 양을 최소화해야 한다.
수능문제의 출제 범위는 당연히 교과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복제와 같은 사회적 관심사를 문제로 다룬다면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험생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접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가 따라오지 못하는 최신 지식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