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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힘] 복제 스트레스 높여 암세포 먼저 죽인다

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

 

일반적인 세포 분열은 DNA가 복제되면서 두 개의 핵이 만들어지는 핵분열부터 일어난다. 이어서 세포막이 둘로 쪼개지며 세포 분열이 끝난다. 핵분열에서 DNA 복제에 걸리는 시간은 8시간. 8시간 안에 DNA를 정확히 두 배로 복제해야 한다. 오류도 최소화해야 한다. 오류는 곧 돌연변이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시간 안에 DNA 완벽히 복제

 

문제는 세포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뿐만 아니라 세포 자신이 대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활성산소도 세포에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세포의 스트레스는 DNA 손상이나 구조 변이를 유발한다. 가령 DNA는 염기들이 수소결합을 해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는데, 자외선이나 방사선에 계속 노출되면 DNA 가닥이 꼬이는 ‘티민 이합체’나 ‘헤어핀 구조’ 등 비정상적인 구조가 나타난다. 


DNA 복제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DNA 복제는 ‘오리진(Origin)’이라고 불리는 시작점에 복제 효소가 달라붙으면서 시작된다. 만약 너무 많은 오리진에서 복제가 한꺼번에 진행되면 각각의 오리진에 복제 효소와 단백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복제가 느려지거나 멈출 수 있다. 복제가 멈춘 오리진에 복제 효소와 단백질이 붙어있으면 다른 복제 효소의 이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화학물질도 DNA 복제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로운 DNA를 만들기 위해 복제 효소는 원본 DNA에 상보적인 염기를 하나씩 붙인다. 활성산소와 같은 화합물은 DNA를 합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인 핵산을 변형시켜 DNA의 복제를 중단시킨다.


스트레스로 인해 복제 과정이 중단되는 것은 DNA 손상 등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복제를 위해 이중가닥이 벌어진 DNA는 마치 한 가닥으로 이뤄진 RNA처럼 불안정하다.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벌어진 부위가 끊어지거나 손상될 수 있다. 


게다가 핵분열에서 핵막이 분열되기 전에 DNA 복제를 끝내지 못하면, 세포질 분열이 시작되면서 복제를 위해 엉켜있던 DNA가 끊어지고 결국 세포는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세포들은 복제 과정에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기작이 있다. 오류가 생기면 이를 고치는 복구 기작도 있다. 잘못 붙은 염기를 잘라내고 알맞은 염기로 메우는 ‘염기 절단복구’나 서로 짝이 맞지 않는 염기쌍만 골라 고치는 ‘미스매치 복구’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밝혀낸 과학자들은 201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복제 과정 핵심 단백질 기능 밝혀

 

DNA 복제 과정에는 수많은 단백질이 관여한다. 복제를 시작하려면 이중가닥으로 꼬여있는 DNA를 풀어야 하고, 각각의 가닥에 아데닌(A)에는 티민(T), 시토신(C)에는 구아닌(G)과 같이 상보적인 염기를 붙여야 한다. 단백질과 효소가 필요한 부위에 정확히 결합해야 복제도 정확히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단백질이 있다. 증식세포핵항원(PCNA‧ Proliferating Cell Nuclear Antigen)이다. PCNA는 가운데가 뚫린 고리 모양으로 DNA를 감쌀 수 있다. 복제가 일어나는 동안 PCNA는 DNA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복제에 필요한 효소와 단백질이 정확한 부위에 제대로 결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DNA 복제가 시작되는 오리진이나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기 위한 DNA 합성이 필요한 곳에 PCNA가 먼저 결합하고 이후 DNA 복제 효소가 결합한다. 그래서 PCNA가 얼마나 유연하게 DNA에 붙었다 떨어지는지가 DNA 복제 과정에 중요한 요소다. 
2019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은 PCNA의 고리를 열고닫아 부착력을 조절하는 단백질 복합체가 ‘ATAD5-RLC’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6월 3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467-019-10376-w  
명경재 유전체항상성연구단장은 “RLC 단백질은 PCNA의 고리를 열고 DNA에 결합하게 만들어 복제가 시작되게 하고, ATAD5 단백질은 복제가 끝난 뒤 PCNA를 DNA에서 떼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두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복제가 제대로 일어나는 것이다. 


6개월 뒤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은 ATAD5 단백질의 새로운 기능을 추가로 확인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2019년 12월 16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467-019-13667-4 DNA 복제가 중단되면 세포는 DNA 구조의 변화를 유도해 복제가 다시 시작되게 하는데, 여기에 ATAD5가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ATAD5 단백질이 이러한 구조 변화에 필요한 단백질을 데리고 오고, 구조 변화에 방해가 되는 PCNA를 DNA에서 떼어내는 역할을 한다”며 “ATAD5 단백질은 복제 과정을 끝내는 동시에 다시 시작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암세포는 복제 과정 고장난 ‘불량세포’

 

DNA 복제는 암 등 질환의 발병과도 관련이 깊은 중요한 과정이지만 복제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세부 기작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은 모든 단백질의 기능을 확인해 DNA와 같은 유전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비밀을 알아내는 게 목표다. 


그중에서도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은 ATAD5 단백질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암 등 질환에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 쥐 실험을 통해 ATAD5 단백질을 제거하면 새끼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고, ATAD5 발현 유전자를 절반으로 줄이면 폐, 간, 난소 등 다양한 부위에서 종양세포가 관찰되는 등 암이 생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람의 경우에도 암 환자의 유전체 샘플에서 ATAD5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이 연구위원은 “암 환자의 경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DNA 복제와 복구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 암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암세포가 계속 증식할 때는 세포 분열 속도와 정도를 조절하는 단백질이 고장 나거나 결핍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복제 과정에 문제가 생겨 ‘불량세포’가 만들어졌는데도 복제를 중단하지 않고 불량세포를 계속 찍어내는 것이다. 
세포의 생존과 분열을 조절하는 PTEN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대장암이 생기고, 손상된 DNA를 고치는 데 작용하는 BRCA1, 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대부분의 항암제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동시에 정상세포도 손상시키는 세포독성항암제다(이를 1세대 항암제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최근 암세포가 가진 특정 표적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암세포만 죽이고 정상세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표적항암제(2세대 항암제) 개발이 활발하다.  


이 연구위원은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대표적인 표적항암제”라며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약물을 개발하려면 DNA 복제와 복구 시스템에 대한 기초연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DNA 복제 과정을 이용하면 새로운 형태의 표적항암제도 개발할 수 있다. 명 단장은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복제 스트레스에 훨씬 민감하다”며 “암세포의 ATAD5 유전자를 억제해 인위적으로 복제 스트레스를 극대화하면 정상세포보다 먼저 죽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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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울산=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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