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계산기보다 커진 기억용량에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전자수첩은 퍼스털컴퓨터와도 연결된다.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메모지를 들추어볼 필요는 없다. 다 쓴 수첩에서 새 수첩으로 전화번호를 옮겨적는 번거로움도 없다. 오늘은 런던 내일은 홍콩 식으로 하루가 바쁘게 전세계를 누비는 사람도 자신의 고향이 지금 몇 시인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은 유능한 비서가 아니다. 전자계산기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주머니속의 소형 전자수첩이 그 역할을 대신할 뿐이다.
3천명 주소 기록 가능
지난 87년부터 일본에서 사무자동화용품의 하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전자수첩은 말 그대로 기존의 전자계산기에 개인이 수첩 속에 기록하는 각종 데이터를 정리 보관하고 입출력하는 기능을 갖춘 것이다. 그간 전자수첩 개발의 선두를 담당해 온 기업은 샤프와 카시오사. 최초로 전자수첩을 발매했던 샤프사는 매출면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으나 후발기업인 카시오와 세이코가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현재 각 사 제품기능상에 큰 차이는 없다.
최신형 전자수첩은 대개 무개가 3백g을 채 넘지 않아 가볍고, 포켓형 크기에 7, 8가지의 주요기능을 갖추고 있다.
전자수첩이 가진 첫번째 기능은 캘린더(calendar)와 스케줄 확인. 1901년부터 2099년까지 모두 1백 99년 분량의 달력이 월별로 담겨있다. 이 캘린더 기능은 다시 주별 일별로 구체화되며 사용자가 기록을 입력하면 자체내에서 정리해 만날 사람, 전화걸 곳, 식사약속 등 매일의 스케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또 입력시에 알람지시를 내려놓으면 사용자가 잊고 있다해도 경보가 울려 약속을 상기시킨다. 이에 더해 스케줄기능은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만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억용량이 큰 전자수첩은 전화번호부로서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시판되는 전자수첩은 기록가능한 숫자상한으로 3천명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름과 전화번호 팩시밀리번호가 기재될 분 아니라 개인의 간단한 신상명세를 담는 데이터베이스도 만들 수 있다. 개인기록은 입력과 동시에 알파벳 순으로 정리되므로 자료를 찾을 때도 무작위 검색이 가능하다.
전자수첩의 또 하나의 역할은 메모판 기능. 경제지표나 중요사건 등 머리 속에 간추려두기 어려운 내용을 기억시켜 놓을 수 있다. 현재 샤프에서 만든 제품은 각 메모 항목별로 알파벳으로 5백 12자까지 기록해 둘 수 있어 작은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한다.
전자수첩은 자신이 모태로 했던 전자계산기의 기능도 보다 고급화된 형태로 갖추고 있다. 일례로 전자수첩의 디스플레이에는 긴 계산과정의 합만 단순히 표시되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계산과정이 화면에 나열된다.
전자수첩의 시간기능 역시 독특하다. 세계각국을 여행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쓸 수 있도록 지구상의 약 2백여개 도시의 시간이 기억된 월드타임이 있어 시계를 다시 맞추지않고도 자신의 현재 위치나 세계 대도시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액정과 IC칩 산물
'포켓 속의 소형 컴퓨터' 구실을 하는 전자수첩은 초고집적도의 칩(chip)과 액정 화면(Liquid Crystal Display, LCD) 기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고채와 액체의 중간성질을 갖는 액정에는 전류가 흐르면 그 부분만 뿌옇게 흐려지는 성질이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해 지난 1973년 일본 샤프사는 전자계산기, 전자시계, TV화면에 이용되는 액정화면(LCD)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이 LCD는 기존의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다이오드)에 비해 두배나 얇을 뿐 아니라 전력소모량도 극히 적어 LED에 사용할 경우 3~6시간 이상을 쓰지 못하는 전지로 1천시간이상을 쓸 수 있게 됐다. 또 LCD는 LED보다 글자를 표현해내는 점(dot)이 조밀해 화면이 선명하고 문자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초박(超薄)형 저(低)소비전력 LCD 덕분에 오늘날 종잇장 두께의 전자계산기가 출현하게 됐고 기존의 전자계산기보다 디스플레이가 크고 화면이 선명하면서도 가벼운 전자수첩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LCD가 넓은 화면과 다양한 문자표현을 가능하게 했다면 기억용량을 획기적으로 확대시킨 것은 집적도가 높은 IC칩이다. 시판되는 전자수첩들은 내장용량수준을 최고 64킬로바이트(KB)까지 끌어올렸으며 32킬로바이트가 보편화된 실정이다. 1킬로바이트(KB)로 표현가능한 문자는 알파벳 1천자. 따라서 현재의 전자수첩은 영문으로 3만~6만자를 쓰고 지울 수 있다.
여기에 IC카드를 탑재하면 전자수첩의 용량과 기능은 더욱 확대된다. IC카드는 알려진대로 얇은 플라스틱판에 용량이 큰 IC 칩을 심은 카드.
전자수첩에 탑재되는 IC카드는 그 기능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전자수첩의 기억용량을 늘이기위해 사용되는 단순 메모리카드(64KB)로부터 해외여행자들의 언어소통을 돕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쓰이는 8개국의 단어들을 모은 번역카드, 철자검색 겸용 영영사전 또 재무나 의학용어 등 특수 목적용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현재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이 카드 사업주체로 나서서 계속 새로운 기능 유형을 상품화하고 있다. 현재의 IC카드는 호환성이 없어 A사의 카드를 B사 전자수첩에 쓸 수 없는 문제가 있으므로 카드개발에 나선 회사들은 IC카드의 표준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편 전자수첩의 기능확대는 하드웨어쪽에서도 모색되고 있다. 그 핵심은 주변기기를 이용해 퍼스널 컴퓨터나 다른 전자수첩과의 자료교환을 꾀하는 것. 전자수첩에 기억된 자료는 내장된 칩의 집적도가 높다 하더라도 그 용량에 한계가 있고, 건전지 교체시 불의의 사고로 자료를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고 보다 큰 화면에서 입력된 자료를 보기 위해 인터페이스 보드(interpace board)라는 주변기기를 이용해 전자수첩을 퍼스널 컴퓨터와 연결시킨다.
수첩에서 컴퓨터로 읽어들인 자료는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 저장할 수 있고, PC를 통해 메인 컴퓨터에 집중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전자수첩은 각 개인의 기록용 자료로뿐만 아니라 회사의 집중적인 자료관리에도 이용된다.
예를 들어보자. 세일즈를 전문으로 하는 영업부서의 경우 각 사원이 담당하는 거래처와 거래량은 각자의 전자수첩에 기록된다. 이 자료는 부서장의 퍼스널컴퓨터에 모두 입력돼 전체 거래선과 거래량으로 나타나고 각 사원들의 업무영역이 바뀌더라도 이미 정리된 자료를 근거로 고객관리를 지속할 수 있다. 또 전자수첩간의 자료 교환도 가능하다. 현재 일본에서는 샤프와 카시오사가 모두 일본 IBM PC와 호환되는 기종을 만들었으며 자사 전자수첩끼리는 자료교환이 가능하다. 게다가 휴대용 복사기나 전자수첩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휴대용 프린터도 나와있어 필요에 따라 간단한 자료의 복사나 출력을 할 수 있다.
영문자판 어려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본제 전자수첩의 가격은 23만원선, 인터페이스 보드와 복사기가 각각 10만원과 20만원선이라 가격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러나 엔지니어 무역업 관련 종사자 세일즈맨 등이 주종을 이루는 국내 수요자층은 아직 그리 두텁지 않다. 이에 대해 용산전자랜드 사무자동화(O/A)부의 이종철씨는 "전자수첩의 자판이 영문으로만 배열돼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어구사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료입력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이웃 일본에서 폭발적인 수요증대가 있었음에도 현재 국내 전자업체중 선뜻 전자수첩개발에 뛰어들려는 기업은 없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실의 유성록씨는 우리의 사무자동화기기 개발방향이 전자수첩을 개발하는 것과는 다른 양식을 택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컴퓨터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쓰려면 우선 덩치를 줄여, 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데스크톱 컴퓨터가 랩톱(lap top)컴퓨터로 소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자수첩은 소형화가 역(逆)의 방향에서 추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크기는 작지만 계산외에 별 기능이 없었던 전자계산기를 질적으로 컴퓨터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기업은 전자수첩보다는 노트북이나 팜톱(palm top)쪽으로의 개발방향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32비트의 노트북 컴퓨터를 개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