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이 남긴 수많은 문화재는 오랜 세월을 거쳐 후대에 전해지는 동안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손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백년이 흘러도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각종 문화재를 보면 신기하지 않을 수없다. 바로 문화재의 영생을 약속하는‘보존과학’이 있어 가능하다.
한적한 오후 경복궁에 들어서면 선조들이 남긴 수많은 문화재가 제각기 ‘화사한 얼굴’을 선보이며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시야에 꽂히는 궁궐, 길 따라 올라가면 자리잡은 국립중앙박물관, 그 안에 고이 간직된 유물 하나하나. 사진으로 많이 봤던 문화유산이건만, 실제로 보니 가슴 한구석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솟구친다. 이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깔끔한 유리 장식장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달의 보존처리 문화재’가 눈에 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보존처리돼 깨끗하게 전시된 유물이 마치 ‘날 봐달라’는 듯 쳐다본다.
발길을 돌려 박물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각종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제 막 보존처리 치료가 끝난 듯한 소박한 도·토기부터 찌든 때 벗겨내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장신구까지. 후손들은 이런 유물을 통해 각 시대 문화재의 특징과 공예기술, 그리고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시대상을 전해주는 문화재는 어떻게 발굴되며, 또 어떤 보존처리방법을 거쳤기에 깔끔하게 보관될 수 있는 것일까.
원시적인 수작업에서 시작
2001년 가을 어느날. 경북 경주시의 한 유적지에 A박물관 문화재 보존과학실 연구팀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도착한다. 이 지역에 신라시대의 값진 유물이 매장돼 있다는 고고학자의 소견을 듣고, 이를 출토하기 위해 모여든 것.
일단 고분이나 유적지를 발굴해 유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고고학 지식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인디아나존스’나 ‘툼 레이더’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 고고학자들은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유물의 위치를 쉽게 찾아낸다. 유물의 형태와 종류에 따라 미술사학이나 건축사학 분야의 지식도 필요하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김교수가 유물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지점을 지적한다. 이어 발굴전문가들의 ‘원시적인’ 수작업이 동반된다. 가령 손으로 흙을 조심스레 파내거나, 작은 삽으로 긁다가 유물이 닿으면 꺼내 붓으로 흙을 털어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유물. 신라시대의 ‘찬란한 꽃’인 금동관이다. 하지만 아직은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습한 기운이 감돌고 흙과 이물질이 잔뜩 묻어있는 유물을 보니 과연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 ‘진짜’ 문화재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하나의 유물이 출토돼 제작 당시의 모습으로 후손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야 한다. 특히 지하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유물을 깨워 ‘억지로’ 지상의 환경 조건을 맞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발가벗긴 채 낯선 곳에 서있으라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쩌면 지상보다는 땅 속의 ‘대접’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으려면 뭔가 특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X선 동원해 유물의 재질 파악
이제 막 지하에서 지상으로 삶의 터를 바꾸게 될 이 소중한 금동관을 들고 보존과학 연구실로 향해보자. 먼저 연구팀은 금동관의 구조와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현미경과 X선을 이용한다. 표면에 부착된 이물질을 현미경으로 정밀 조사한 후 기록해야 하며,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은 문양이나 미세 구조를 X선 촬영장치를 통해 확인하고 분석한다.
X선을 이용해 인체의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내는 것처럼, 금속의 재질을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서는 형광X선 분석법이 동원된다. X선 장치에서 발생한 강력한 X선(1차 X선)을 물질에 쪼이면 X선과 물질 간 상호작용이 생기게 되는데, 여기서 형광X선이라고 불리는 2차 X선이 발생한다. 이 형광X선은 유물 재질을 구성하는 각 원소에 따라 고유의 파장을 발산한다. 형광X선 분석법이란 2차적으로 발생하는 X선의 파장과 에너지 세기를 측정해 물질의 원소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재질과 상태를 파악하는 예비조사 작업이 끝났으니 금동관 본래의 모습을 노출시킬 차례다. 먼저 증류수나 알코올을 이용해 흙 등의 이물질을 제거한 후 자동온도조절장치가 부착된 전기건조기에서 1백5-1백10℃로 건조시킨다. 이 일도 ‘빨래 말리듯’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통 3일에서 1주일 정도 소요되는 작업이다.
이제야 금동관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거친 유물이라 그런지 상태가 무르다. 향후 보존을 위해 산소와 수분을 차단시킬 필요도 있다. 이 경우 진공함침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진공함침은 밀폐용기의 내부를 진공상태로 바꾸고 금속유물이 함유하고 있는 산소와 수분 등을 빼낸 다음, 합성수지를 금속 내부에 강제로 침투시키는 방법이다. 이 작업을 시행하면 금속 자체가 단단하게 굳고, 산소와 수분을 차단시킬 수 있는 합성수지 보호막이 형성된다.
점차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금동관.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듯 신기하다. 그런데 탈락된 파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약품을 사용해 접합 작업을 실시한다. 지금까지의 보존처리과정이 아무리 잘됐다고 하더라도 접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화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없어진 장식이 있다면 남아있는 부분이나 과거 자료를 기반으로 복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보존처리에 대한 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차후 재처리와 고고미술사적인 해석에 정보를 남기기 위해서다. 큰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야 그 가치가 빛나는 법. 이런 전체 보존처리과정은 짧더라도 몇달, 길게는 10여년의 기간을 필요로 하는 엄청난 작업이다.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금동관을 보니 흐뭇한 기분이 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과학의 힘이 생생하게 밀려드는 순간이다.
목재 수분 빼내고 특수재료 투입
금속이 아닌 목재나 종이로 만들어진 문화재는 어떤 보존처리과정을 거치게 될까. 지하수가 흐르는 토양 속이나 늪지에서 출토된 목재 유물은 주요 구성성분이 분해되거나 유실된다. 또한 조직 내부는 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런 목재문화재는 보통 목재에 비해 상당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부서지기 쉬운 상태이며,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수분의 증발이 발생할 경우 수축현상이 일어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형된다. 결국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목제빗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목재유물은 수분이 증발할 경우 발생하는 변형을 막기 위해, 수분을 수용성 합성수지인 PEG(폴리에틸렌 글리콜) 등 다른 물질과 치환하는 방법으로 보존처리된다. 예를 들어 수분 때문에 많이 물러진 목제빗을 PEG 용액이 가득 찬 수조에 담가놓는다. 이때 담가놓는 시간은 유물의 상태와 크기에 따라 각각 다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목재문화재 속에 함유된 과포화 상태의 수분이 안정한 물질인 폴리에틸렌 글리콜로 치환돼 약화된 유물의 재질은 단단한 상태로 바뀐다.
또한 지(종이)류나 목재문화재는 재질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섬유질 때문에 미생물이나 곰팡이, 또는 곤충의 공격을 당하기 쉽다. 더운 여름, 모기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듯, 지류와 목재문화재를 건실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살충제를 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방법을 훈증법이라고 한다. 즉 유독 가스를 발생시켜 문화재에 인위적인 손길을 가하지 않으면서 살충·살균할 수 있으며, 침투가 깊고 빨라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훈증법 중 하나인 피복훈증법의 경우 두께 0.2-0.3mm 정도의 염화비닐로 완전히 덮어씌운 후 25℃에서 24시간 훈증한다.
훈증처리가 끝나면 에탄올을 면봉 또는 솜에 묻혀 부드럽게 닦아냄으로써 곰팡이를 제거한다. 살충과 살균 작업이 끝난 목재문화재는 특수 필름으로 포장한 후 내부를 질소가스로 충진해 밀폐보관하며, 보관장소에는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제습제를 함께 구비해야 한다.
생명연장의 꿈 실현하는 보존과학
문화재 보존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적인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문화재의 물질구조와 재질을 밝혀내고, 그 노화와 붕괴의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이를 통해 문화재의 손상을 최소화함으로써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있는 그대로, 또는 거의 흡사한 상태로 후손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켜가듯, 문화재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데도 과학이 일조한다는 말이다. 보존 대상이 되는 유물들은 재질별로 금속, 도·토기, 지류, 목재, 석조건축물 등 다양하다. 따라서 보존과학은 고고학, 미술사학, 건축사학 등 역사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각 물질의 특성과 재질을 밝혀내기 위해 금속학, 목재학,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접목돼야 한다.
모든 물질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이런 변화의 속도를 차단시키거나 더디게 한다. 문화재 보존과학의 힘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존과 복원, 무엇이 다른가
문화재 보존과학은 크게 보존(preservation)과 복원(restoration)으로 나눌 수 있다. 보존은 현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의 상태가 최상이라는 판단이 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적지에서 손상된 유물이 출토됐다고 가정하자. 손상된 조각의 일부를 찾을 수도 없고 현대 기술로 그 재질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면, 출토된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복원은 유물의 일부를 찾아 붙이거나 새로운 현대 기술을 적용해, 처음 만들었던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하려는 작업이다. 사진이나 건축도감을 기반으로 작업하거나, 필요하다면 상상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복원은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과 관련자료의 수집을 통해 이뤄진다. 최근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한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보존과 복원은 작업 형태에 따라 나눴을 뿐, 최종적인 지향점은‘문화재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시켜 후손들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