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반, 한국과학기술원 수영장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스무명 남짓한 인어들이 물살을 기른다. 돌고래 꼬리 같기도 하고, 가오리 같기도 한 핀을 두발에 끼고 수영장을 오가는 사람들…. 언뜻 보면 동화나 만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인어의 모습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이들은 바로 수영 동아리 '가오리'들이다. 동아리라고는 하지만 여느 동아리와는 다르게 이들의 모임은 엄격하고 혹독한 훈련으로 이어진다. 가오리가 추구하는 바가 친선이나 취미 차원을 넘어서 우수한 핀수영 선수를 배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한 결과 이들은 지난해 대전에서 있었던 75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거머쥐는 개가를 올릴 수 있었다.
가오리가 KAIST 동아리로 태어난 것은 지난 92년 10월, 수영을 좋아하는 10명이 꾸리기 시작한 이 모임은 그후 식구도 23명으로 늘었고, 어느새 KAIST에서 가장 모범적인 동아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사실 KAIST란 곳이 일반 대학과 달라서 연구와 실험, 세미나와 논문 등에 쏟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밤을 새우거나 잠이 모자라는 경우가 허다해 새벽마다 훈련을 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런 만만치 않은 여건에서도 출석률은 99.9%. 가오리 모두는 물 속에서 새벽을 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엄격한 훈련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하게 단련되니까 오히려 연구나 실험을 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가오리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예를 들어서 석사과정 1차 무시험 전형에서 전원이 합격했고, 박사과정 또한 한사람의 탈락자도 없이 모두가 입학을 할만큼 성적들이 우수합니다. 그런가하면 학사과정 전체수석, 여자 수석 , 또 물리 올림피아드 수상자도 있지요."
초창기부터 주장을 맡아온 김진수(재료공학과 박사과정)씨의 얘기다. 과기대 1학년때인 지난 89년,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91년과 92년 핀수영 국가대표를 지낸 김진수씨는 91년 아시아 핀수영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어 92년에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을만큼 핀수영계에선 알아주는 실력자다. 그가 KAIST에 새로운 전통을 세워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만든 동아리가 바로 가오리다. 이들의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면서 국내 핀수영계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에는 물론 각자의 의지와 노력도 있었지만, 직접 강도높은 훈련을 받았고, 실제 경기 경험도 풍부한 김진수씨가 사령탑 역할을 간단히 해온 영향이 크다.
현재는 한동욱(경영과학과 학사과정 4년)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핀수영 동아리 '가오리'. 그들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새벽이면 인어가 돼 KAIST 수영장을 누빌 것이다. '우리는 지도력을 갖춘 과학기술자로 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가는데는 가오리는 틀림없이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말을 하죠. 가오리를 통해 삶의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