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는 토끼를 그려볼 수 있는가. 달에는 토끼 말고도 두꺼비가 사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달에 도착한 최초의 우주인 항아와 오강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답을 찾아보자.
추석 즈음에는 달이 언제나 큼직하고 산뜻하다. 인간이 아폴로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 표면을 거닌지 이미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달에 도착한 최초의 우주인은 아무래도 항아 선녀와 오강이라는 연단술사, 그리고 우리의 영웅 두꺼비와 토끼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달표면에 보이는 얼룩을 두고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헌데 달에 사는 태초의 우주인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적으리라. 신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우주인과 대화해 보자.
해의 실체는 세발 달린 까마귀
태평성대였다고 전해지는 중국 요(堯)임금 시절은 생각과 달리 무척 심한 자연의 도전을 받았다. 한번은 해가 한꺼번에 열개나 나타나 사람들이 무척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열개의 해는 하늘나라 동쪽을 다스리던 임금인 제준과 그의 아내 희화가 낳았다. 열개의 해는 동쪽바다 끝에 있는 탕곡(湯谷)이라는 곳에 살았다. 탕곡의 바닷물은 열개의 해가 목욕을 하기 때문에 늘 부글부글 끓었고 그 가운데는 부상(扶桑, 최근 역사를 왜곡한 일본교과서를 출판한 회사 이름이 바로 후쇼사(扶桑社)다)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높이와 둘레가 모두 수천길에 달하는 이 나무는 바로 해가 사는 집이었다. 열개의 해 가운데 아홉개는 윗가지에 살고 나머지 한개만 아래가지에 사는데, 이들은 늘 일정한 순서대로 번갈아가면서 하늘에 떠올라 세상을 밝히곤 했다. 이들이 떠오를 때는 언제나 어머니인 희화가 수레에 태워다주었기 때문에 하늘에는 언제나 하나의 해만 떠서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기를 수천만년, 이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됐다. 서로 상의한 결과 자유롭게 하늘에 나가기로 했다. 이리해 열개의 해가 한꺼번에 하늘에 나타나게 됐다. 제멋대로 뛰노는 열개의 해가 내뿜는 열기로 인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더위와 갈증을 못이긴 사람들은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도 해보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봤으나 헛일이었다.
요임금은 이 사태 때문에 잠을 못이뤘다. 그는 간절히 하늘의 임금인 제준에게 빌었다. 제준은 활의 명수인 예를 보냈다. 제준은 예에게 붉은 활 한자루와 날카로운 화살 열개를 주었다.
제준의 명령을 받은 예는 그의 아내 항아(嫦娥)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인간들이 받는 고통을 직접 눈으로 본 예는 열개의 해가 벌이는 장난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화살을 활시위에 얹어 ‘쉬익’ 한발을 쏘았다. 금빛 화살은 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해가 금빛 가루를 날리며 폭발하는가 싶더니 붉은 불덩이가 땅위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달려가보니 화살에 정통으로 맞은 것은 다름아닌 세발 달린 까마귀였다. 세발 달린 까마귀는 해의 상징이었다.
예는 곧이어 두번째 화살을 날렸다. 하늘에는 마치 폭죽 놀이를 하는 듯했고, 까마귀들이 거푸 땅위로 떨어져내렸다. 이때 요임금이 생각해보니 열개의 화살을 다 쓰면 해가 남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예의 화살통에서 몰래 화살 하나를 빼두었다. 이리해 하늘에 뜬 해는 하나만 남게 됐다.
예는 사람들이 영웅으로 모셨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달랐다. 해는 바로 제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아들을 아홉이나 잃은 제준은 노했다. 그는 예가 무력 시위를 보이기만 해도 일이 잘 풀리리라고 여겼으나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제준은 예를 신의 나라에서 추방해 사람이 되게 했다. 그의 아내인 항아도 더불어 하늘나라에서 추방됐다.
이것은 예와 항아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이제 사람과 똑같이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 후로 부부는 사이가 나빠졌다. 항아는 무고하게 남편을 잘못 만난 죄로 벌을 받게 됐다고 생각했고, 예는 예대로 하늘나라 임금의 처사에 불만이 가득했다. 예는 그 후로 천하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가 서쪽 끝에 사는 서왕모를 찾아가자 서왕모는 그를 불쌍히 여겨 불사약 두사람 몫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예는 불사약을 탁자 위에 놓고 길일을 잡으러 점술사를 찾아갔다.
그때 밖에서 돌아온 항아는 예의 쪽지를 보고 단번에 불사약임을 알았다. 문득 항아는 불사약을 모두 마시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두사람 몫을 모두 마셨다. 그러자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항아는 이제 달과 별 사이를 날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하늘나라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달에 가있기로 했다. 달은 은빛 세상이었다. 도끼로 찍어도 계속 상처가 아무는 계수나무 한그루와 불사약을 찧고 있는 토끼 한마리가 전부였다. 이런 쓸쓸한 풍경에 항아는 무척 실망했다.
그녀는 남편이 점점 그리워졌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의 척추가 오그라들더니 온몸이 점점 흉한 두꺼비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죄값으로 두꺼비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저절로 상처 아무는 계수나무
달에는 이제 계수나무와 토끼, 그리고 두꺼비가 살게 됐다. 세월이 한참 흘러 땅위에서 또다른 도망자가 달을 찾아왔다. 연단술사인 오강이었는데, 그는 연단술(鍊丹術)을 써서 죽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들었다는 죄로 하늘의 벌을 받아 달로 유배를 온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강에게는 계수나무를 베는 벌이 내려졌다. 그러나 도끼로 아무리 찍어도 아물고 마는 계수나무를 쓰러뜨릴 재주가 오강에게는 없었다. 그는 오늘까지도 계수나무를 계속 찍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달 속의 우주인들을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서 볼 수 있다. 두꺼비로 변한 항아 선녀와 약절구 찧는 토끼와 계수나무도 그려져 있다.
그 후 1천2백년이 지나 서양에서 온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청나라에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 선교사들이 만든 서양의 천문도 속에는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본 천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외교사절을 따라 청나라에 들어가 각종 선진문물을 수입해왔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의 천문도를 몇가지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안국빈 등이 만든‘ 황도남북양총성도’란 것이다. 지금은 원본이 속리산 법주사에 보관돼있고, 이것을 모사한 것이 서울 홍릉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에‘신법천문도’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다. 그 안에 그려진 달은 신화와 너무나 거리가 먼 사실적인 달이다.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