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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간 배아줄기세포 지원 의미

과학자와 시민단체 각자 입장에서 '환영' 표시

8월 9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밤 9시(한국시간 10일 오전 10시) 휴가지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전국에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 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에 대해 배아연구에 대한 규제를 주장해온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부시의 결정은 어떤 형태의 배아 파괴행위도 금지한 것”이라면서 환영했다. 반면 과학계는 “부시가 선거공약을 뒤집고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정부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서로 대립하던 두 진영이 어떻게 하나의 발표를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제정된 국립보건원의 연구 가이드라인에 따라 그동안 인간배아 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금지해 왔다. 그런데 낙태금지를 주장하는 보수성향의 부시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이 가이드라인을 더욱 강화해 어떤 형태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도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부시의 발표는 그래서 더욱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공식 가이드라인 빨리 제정돼야
 

줄기세포는 기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만능세포’로 암이나 선천성 질환의 치료 등 꿈의 의료시대를 앞당길 잠재력이 있다. 사진은 분열중인 줄기세포.


부시의 결정은 타협안의 성격이 짙다. 부시는 TV 발표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 등 획기적인 의학발전을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연구의 지원에 찬성했지만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 연구 대상이 되는 줄기세포는 이미 파괴된 인간 배아에서 추출해 장기배양 중인 기존의 60개 줄기세포주(柱)로 한정한다”고 말했다. 줄기세포주는 폐기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낸 다음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계속 증식만 하도록 만든 세포를 말한다.

그러므로 줄기세포를 얻을 목적으로 배아를 만드는 연구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시켜 만든 배아, 불임치료과정에서 나온 여분의 배아, 그리고 체세포 핵이식 방법으로 복제한 배아(인간배아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만든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은 불임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분의 수정란을 냉동보관한 이른바 냉동배아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정부의 결정이 오히려 국내보다 더 보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반면 과학자들은 모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금지하겠다던 부시가 제한적이나마 정부 지원을 결정한데 주목하고 있다.

21일 이상희 의원(한나라당)이 주최한 전문가 회의에서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는 “부시의 결정은 한꺼번에 완벽한 연구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고 일정한 제한을 둔 상태에서 연구를 허용한 다음 앞으로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 해결되면 다시 연구 지원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평가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냉동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박세필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장도 “선거공약을 철저히 준수하는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를 바꿀 만큼 배아 줄기세포의 의학적 효용성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올해 성체 줄기세포와 탯줄, 태반에서 얻은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비로만 2억5천만달러를 책정했다. 여기에다 최근 정부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비를 합하면 우리나라 전체 생명공학연구 정부 투자비를 훨씬 넘을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에는 민간 기업의 투자도 막대하다.

국내 연구자들이 정부의 지원 확대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시작 단계이므로 윤리지침 등 공식적인 연구 가이드라인이 하루 빨리 제정돼 정부의 연구지원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공학 전반의 윤리적 기준이 될 생명윤리기본법이 올해안에 제정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생명윤리법을 심의할 국회 과학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은 자문위 시안이 지나치게 규제 위주이며,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효석 의원(민주당)은 “자문위의 시안은 윤리적인 면이 너무 강해 생명과학의 발전과 생명윤리를 존중한다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과기부에서 충분히 검토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의원도 “중국이 치료목적의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하고 있는데 주목해야 한다”며 자문위의 시안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과기부 역시 “생명윤리법을 9월 정기국회라는 시한에 쫓겨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폭넓은 여론을 모으자면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에 대규모 지원
 

인간 배아줄기세포(연두색)가 신경세포(빨간색)로 분화하고 있는 모습.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지원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중문의대 정형민 교수팀의 ‘줄기세포 분화를 통한 세포대체요법의 확립과 인공장기의 개발’ 연구과제에 대해 연간 3억원씩 4년간 총 12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과제 결정에 대해 “그동안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부분적으로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지원해왔으나 치료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한 줄기세포 연구에 대규모 지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과기부도 6월 한양대 의대 이상훈 교수팀을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해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신경조직 재건연구’에 2년간 매년 3억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게다가 10년간 총 1천억원을 지원하는 프론티어사업단 후보 가운데 하나로 줄기세포연구사업단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이처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윤리지침이 없기 때문에 지원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은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부합된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고 지원에서 누락된 연구자들은 법이 제정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지원 대상에서 누락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형편이다.

지난 7월 방한한 미국 생명윤리자문위원회 토마스 머레이 박사는“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정부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연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윤리기본법은 머레이 박사의 주장처럼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부의 감시권 안에 둘 기본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시민단체와 과학자, 그리고 정부와 국회가 절실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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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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