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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흐름에 감춰진 물리법칙 금융수학

경제위기 타개하는 첨단과학

요즘 외환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국내 금융산업이 외부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릴 정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의 상황을 좀더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돈은 여러 상품의 가치를 비교해줄 수 있고, 상품과 맞바꿀 수 있도록 해주며, 재산으로서 축적의 대상이 된다. 이런 돈과 관련된 경제를 금융이라고 하는데, 금융에 있어서 돈의 흐름을 파악해 측정하고 계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금융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절대적인 수단이 수학일 수밖에 없다. 금융과 수학은 역사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응용수학의 초기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주판이나 계산기는 금융거래와 장부기록을 원활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형태로 자본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금융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다. 주식이나 채권은 미래의 현금흐름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미래 경제 상황이나 이자율과 같은 고도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르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덧셈이나 뺄셈과 같은 단순한 연산만으로는 도저히 금융시장을 모형화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금융을 다루는 수학,‘ 금융수학’이 탄생했다.
 

오늘날에는 주식, 외환, 채권 등 다양한 형 태의 자본시장의 발달로 금융시장을 제대 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브라운 운동으로 해석하는 투기이론

주식시장에 관한 최초의 수학적 연구는 지금으로부터 1백여년 전인 1900년에 프랑스 수학자 루이스 바슐리에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그는 주가의 움직임을 물리학에서 잘 알려져 있던 브라운 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투기의 이론’(Theory of Speculati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브라운 운동은 공기 속의 연기 입자나 우유 속의 지방 입자가 불규칙하게 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이 밀도차나 농도차에 의해 스스로 운동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는데, 이는 분자들이 정지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바슐리에는 주가의 변동을 이와 같은 분자의 운동으로 파악한 것이다.

바슐리에의 연구는 이제껏 연금술에 가까운 분석으로만 보아온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후 주식가격은 물론 이자율, 외환 등 금융시장의 모형에 수학적 확률론이 응용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금융수학이 금융시장에서 실용적으로 적용된 시기는 1970년대 들어서다. 이 시기에 금융시장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금융상품인 파생금융상품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파생금융상품이란 농산물, 외환, 주식 등과 같은 자산이 되는 금융상품을 기초로 해 이들의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을 회피하거나 위험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거래자의 특수한 조건에 맞게 각종 금융상품을 결합시켜 고안한 금융상품을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미래의 금융거래를 현재에 체결하는 선물(Future)과 선도(Forward)거래, 또는 기초자산을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도록 하는 옵션(option) 등이 있다. 이러한 상품은 그 가치의 기초가 되는 금융상품의 가치로부터 유래되기 때문에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고 부른다.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되는 농산물, 주식, 또는 외환 등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기초자산의 가치변동에 따른 위험을 정확하게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이후 수학적인 분석기법이 정립된 다음에야 파생상품의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부터 주가지수를 시작으로 채권, 달러, CD금리 등의 선물거래, 그리고 주가지수옵션과 달러옵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도체의 열전도 방정식과 유사


선물, 선도, 옵션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의 거래는 기초 금융상품의 가치변동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 사진은 북적대는 선물거래소의 모습.


파생상품의 위험분석과 가격결정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업적은 1973년 블랙(Black, Fisher)과 숄즈(Scholes,Myron)의‘옵션가격결정이론’이다. 이들은 바슐리에와 같이 주식가격이 브라운 운동을 한다는 모형을 설정하고,‘위험 없이 수익을 이자율 이상 올릴 수 없다’는 가정 아래 옵션의 가격이 만족하는 방정식을 유도했다.

그런데 이 방정식이 놀랍게도 도체에서의 열전달을 기술하는 물리학의 열전도 방정식과 형태가 유사했다. 금융 속에서 다시 한번 물리학의 법칙이 발견된 것이다.

이 방정식의 해는 물리학자들이 이미 1백여년 전에 풀어놓았다. 그러나 블랙과 숄즈는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한동안 그 해를 구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이 방정식을 푼 결과가 현재 옵션가격분석의 세계적인 표준이 된‘블랙-숄즈 옵션가격 모형’이다. 금융분야에서 블랙과 숄즈의 이론은 물리학에서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혁명적이다. 이후의 금융산업 전체를 확 바꿔놓는 기술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 연구가 구체적으로 금융에 미친 영향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파생상품의 정상가격이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지를 수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제껏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던 판단기준을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줬다.

그래서 파생상품의 구입자들은 정상가격을 산출할 수 있게 돼 구입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 있었다. 1973년에 설립된 세계최초의 옵션거래소인 시카고 옵션거래소가 단기간 내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블랙과 숄즈의 옵션가격모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둘째로는 파생상품의 발행자에게 따르는 위험을 분석해 이에 대한 보호책을 제시했다. 실제로 파생상품 발행자는 기초 금융자산의 가격변동으로 엄청난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금융회사들이 파생상품의 판매를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과 숄즈의 수학적인 모형에 따라 파생상품을 발행하면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판명됐다. 이러한 기술상의 혁신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여러 종류의 파생상품을 발행하게 된다. 특히 이 기법은 물리학과 공학에서 쓰이던 고등수학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금융계인 월가는 다수의 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들을 고용해 새로운 금융기법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예를 들어 살러먼 브러더즈라는 금융회사는 미국 명문대인 브라운 대학의 물리학 교수를 채용했고, 골드만 삭스는 옵션가격결정모형의 고안자인 블랙을 유한책임 사원으로 영입해 연구를 지휘하게 했다.

이처럼 고등수학을 이용해 새로운 금융기법을 개발하는 사람들을 월가에서는‘로켓과학자’라고 부른다. 미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물리학자 상당수가 월가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양한 금융기법과 수백종이 넘는 파생금융상품을 고안해냈다.

예를 들어 금광을 소유하고 있는 어느 회사가 6개월마다 런던의 은행간 이자율인 리보(LIBOR)에 따라 변동하는 이자율로 회사자금 조달을 위해 발생하는 채권인 회사채를 팔았다고 하자. 만약 리보가 10% 이상으로 오르면 이 회사는 이자 지급액이 증가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맞게 된다.

그래서 이 회사는 국제적인 금융회사로부터 만약 리보가 10% 이상 오르면 그 이상의 이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식의 보험성 파
생금융상품을 사려고 한다. 이러한 금융상품은 옵션과 유사한 상품으로 국제시장에서‘캡’(cap)이라고 불리면서 널리 거래된다.

그러나 금광회사는 캡의 가격이 비싸 구입을 망설일 수 있다. 그러면 금융회사의 로켓과학자는 만약 금값이 1온스(=28.35g)당 4백달러 이상 오르면 수익성이 매우 좋아져 금광회사는 보험이 필요 없다는 것에 착안해 다른 금융상품을 고안해낸다.

국제금융시장의 네트워크 스왑거래

가령 리보가 10% 이상으로 오르면 그 이상의 이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부담하는데 예외적으로 금값이 4백달러 이상이면 금융회사가 이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특수한 금융상품이 고안될 수 있다. 이 금융상품은 보험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줄어들기 때문에 캡보다 가격이 싸다. 따라서 금광회사는 보다 싼 가격에 자기가 원하는 위험조절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만족하게 된다.

이 금융상품은 리보와 금값을 기초변수로 하는 특수한 파생금융상품인데 로켓과학자는 이러한 금융상품을 디자인할 때 고등수학의 다양한 기법들, 예를 들어 편미분방정식, 수치해석,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등을 사용한다.

현재 이처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로켓과학자들이 새로이 개발해 거래되고 있는 금융상품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금광회사와 금융회사의 예와 같이 서로 다른 이자율이나 통화로 돼 있는 부채나 자산을 교환하는 방식인‘스왑’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1980년대 이후 거래가 활성화됐는데, 거래 규모가 액면가로 1980년대 초 수십억달러에 해당하던 것이 1989년 무렵에는 1조달러에 육박했고 현재는 약 1백조달러 규모에 달한다. 스왑거래는 현재 국제 금융시장을 엮어놓고 있는 네트워크인 셈이다.

한편 금융수학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거래기법을 개발하는데도 쓰인다. 로켓과학자들이 개발한 거래기법의 다른 예로는‘지수차액거래’가 있다. 이것은 주식의 선물시장과 현물시장의 가격차를 이용해 이익을 남기는 금융기법이다.

일반적으로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의 가격 사이에는 특수한 수학적 공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들이 발생해 두 가격 사이에 공식이 성립하지 않으면 위험부담 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가령 공식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선물가격이 과도하게 높으면 선물시장에서 비싼 선물을 팔고 현물시장에서 주식을 산다. 그리고 나중에 선물가격이 정상으로 돌아갔을 때 선물시장에서 선물을 사고 현물시장에서 주식을 팔면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이러한 지수차액거래는 1980년대에 미국 금융회사들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주가폭락에도 큰 돈 번 이유

지수차액거래에 관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에서 주가지수선물시장이 오사카에 처음 설립됐을 때의 일이다. 여기에서도 골드만 삭스나 살러먼 브러더즈와 같은 미국의 금융기업들은 지수차액거래를 통해 수억달러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일본 주식시장이 폭락해 일본의 주식투자가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 기업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모르는 일본 대장성 관리들은 크게 의아해 하면서 이들 미국 증권회사의 농간 때문에 일본 주식시장이 붕괴한 것이라며 크게 분개했다고 한다. 이는 금융수학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무지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IMF 관리체제를 초래한 외환과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위험에 대한 뼈저린 경험을 갖게 됐다. 달러나 석유가격의 등락이 가져올 수 있는 금융시장위험, 그리고 회사의 재정악화가 유발시키는 신용위험은 금융시스템과 국가경제에 엄청난 위기를 초래할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측정하고 분석하는데는 금융수학적인 이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수준은 초등학생 실력밖에 안된다. SK증권을 비롯한 국내 금융회사들이 미국의 모오건사와 파생상품 계약을 잘못 체결해 엄청난 손해를 입고 법정까지 간 것은 이를 입증해준다. 금융산업이 선진국에서는 고도의 수학과 컴퓨터 기술을 가지고 첨단과학을 이용한 고부가가치 산업인데, 아직 우리는 과거의 구습에 매여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금융수학은 확률론, 편미분방정식과 수치해석,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을 결합한 첨단 학문이면서 동시에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적 과제인 금융경쟁력 제고의 기초가 된다. 이 글을 읽은 독자가 금융수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 이 분야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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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구형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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