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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풀어본 희로애락 - 웃음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는 이유

유태인의 얼이 담긴 탈무드는“생물 가운데 웃는 것은 인간뿐이며, 그 중에서도 영리한 사람이 웃는다”고 전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웃음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변변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제, 웃음을 둘러싼 베일을 과학적으로 벗겨보자.

웃음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자 신의 축복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웃음이 명약’이라는 격언이 자주 애용되듯, 웃음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하나의 행복 조건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던져보고 싶지 않은가. 웃음은 무엇일까. 웃는 행동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웃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2백30여개의 근육 움직이는 힘

짜증나고 골치 아플 때, 되는 일 없다고 투덜거릴 때 누군가 던진 신선한 유머 한마디! 이내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가 발생한다. 한바탕 큰소리로 웃고 나면 마음 속을 장악하던 짜증과 불만이 씻은 듯 사라진다는 것.

웃음은 일종의 ‘자연적 운동’이다. 우리는 ‘웃음’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운동함으로써 근육의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웃을 때는 15개의 안면근육이 동시에 수축한다. 특히 광대뼈 중심근육이 전기적 흥분 상태를 일으킨다. 몸 속에서는 6백50여개의 근육 가운데 2백30여개가 웃음에 관여한다. 심하게 웃으면 호흡기의 동작이 불규칙해져 숨을 헐떡이게 되며, 눈물샘이 촉진되기도 한다. 또한 얼굴색이 불그스레해지기도 한다. 숨이 가빠지거나 눈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웃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 메릴랜드대 신경과학자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최근 펴낸 그의 저서 ‘웃음-과학적 연구’에서 웃음의 형태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을 소개했다.

그는 인간이 웃을 때 발생하는 음파 구조를 관찰했으며, 그 결과 웃음이 단음의 기본 형태로 구성됨을 알았다. 웃음은 ‘하-하-하’나 ‘호-호-호’ 타입 등 여러개의 단음으로 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서는 더욱 재미있는 사실이 관찰된다. 침팬지도 인간과 유사한 웃음 형태를 보이는데, 그 소리가 웃음이라기보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가깝다.

프로바인 교수는 “침팬지는 숨을 내쉴 때나 들이쉴 때 하나의 단일음 밖에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웃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인간은 한번의 날숨에서 ‘하-하-하’ 형태의 여러 단음을 낼 수 있지만 침팬지는 ‘하’ 한번밖에 소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원대 박시룡 교수는 “동물의 웃음에 대해서는 침팬지의 사례 연구가 유일한 실정”이라면서 “동물이 웃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결과물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학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동대학 김수일 교수 역시 “만일 침팬지가 입을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가에 주름을 만든다면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고통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는 니체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쾌활하고 즐겁게 웃을 때 우리의 몸 안에서 는 그야말로‘즐거운’변화들이 리드미컬 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월감 느낄 때 웃음 나온다

웃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웃음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출현했다. 다니엘 맥네일은 그의 저서 ‘얼굴’에서 웃음에 대한 이론을 7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으면서 일반화된 이론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월성 이론’은 플라톤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제기한 것으로, 인간의 웃음은 결점이 나타나거나 ‘뭔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볼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토머스 홉스도 그의 저서 ‘리바이어선’(Leviathan)에서 “웃음의 감정은 타인의 약점 또는 결점을 자신의 약점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꼈을 때 나타나는 갑작스런 승리감에 불과하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광대의 어리숙하고 익살맞은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나는 너보다 훨씬 우월해”라는 잠재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다음으로 ‘불일치 이론’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19세기의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의식이 굉장한 일에서 사소한 일로 전이할 때 감정과 감각은 신체운동을 발생한다”고 표현한다. 흔히 개그맨들이 쓰는 ‘수법’이며,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에게 많은 ‘지적 능력’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우리가 금지된 생각을 함으로써 웃음이라는 에너지가 발산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기분전환 이론’이다. 음담패설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이 이론은 영화제작자들에게 오랫동안 애용되던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긴장감이 고조에 달했을 때 감독은 웃음을 유발시킬만한 내용을 적재적소에 첨가한다.

긴장과 서스펜스, 스릴을 최대로 높이는 동시에 코믹한 내용을 ‘양념’처럼 활용하면서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관객들은 갇혀진 감정을 웃음으로 드러냄으로써 기분전환의 효과를 맛볼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웃는다?

웃음에 대한 또다른 이론은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가 제시한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몰래 녹음한 1천2백건의 웃음 샘플을 분석한 결과, 유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웃음이 10-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흔히 대부분의 웃음이 유머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웃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도 알아”라고 말할 때 웃음이 가장 많았다.

프로바인 교수는 “웃음이 농담에 대한 반응일 경우는 드물다”면서 “웃음은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오래 전 칸트가 설파했던 웃음의 역할과 궤를 함께 한다. 즉 안에 갇혔던 에너지를 웃음을 통해 방출하면서 대화의 창을 열고,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웃음은 사회의 개개인을 결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리 역할을 하는 웃음의 피드백이 그룹으로부터 이탈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더 많이 웃을수록 그룹간의 결속력이 강화될 수 있다.

한편 듣는 쪽보다 말하는 쪽이 더 많이 웃으며, 여성이 남성을 향해 더 많이 웃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특히 여성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남성과 있을 때 웃음의 강도가 더 커진다. 이는 육체적으로나 성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낯선 남성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주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진화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남성은 남성과 함께 있을 때, 특히 잘 알고 지내던 친구와 있을 때 더 크게 웃는다. 이는 남성들이 동료간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됐다.

인도에서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높은 계급의 사람들보다 소리내 웃으며,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고 한다.

뇌의 웃음 담당 부위 밝혀져

미국 로체스터대 의대 신경방사선과 시베터 박사 연구팀은 2000년 11월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방사선협회 모임에서 뇌의 어떤 부분이 웃음에 관여하는지 밝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3명을 대상으로 만담이나 만화를 보게 한 뒤 기능형 핵자기공명영상법(fMRI)을 이용해 촬영한 영상을 분석한 결과 오른쪽 눈 위의 돌출부위에 있는 뇌의 전두엽 하단이 활발하게 반응함을 알아냈다. 웃음 중추로 알려진 전두엽은 사회적 행동과 감정적 판단, 의사소통 등에 관여하는 영역으로 포유동물 중에서도 고등동물에 잘 발달된 부분이다.

시배터 박사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전두엽 하단이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연구는 우울증 환자나 신경장애로 웃음을 상실한 환자 등 다양한 정신장애환자를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뇌수술을 할 때 감정과 사회 행동을 담당하는 민감한 부위를 알 수 있어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웃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이미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돼 왔다. 지난 1998년 미국 LA 소재의 캘리포니아 대학병원의 이차크 프리드 박사는 간질병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왼쪽 전두엽을 전기로 자극해 웃음 지역을 찾아냈다. 그는 뇌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부분을 찾기 위해 16세 소녀 환자의 옆머리에 전극을 부착하고 자극을 보냈다. 그 결과 전류가 약할 때는 미소만 지었지만 전류가 높을 경우 평범한 상황에서도 갑작스런 웃음보를 터뜨렸다.

웃음이 신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연구도 있다. 지난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의대 리 버크와 스탠리 탠 교수팀은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정상상태의 혈액과 1시간 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한 후의 혈액을 비교했다.

그 결과 세균에 저항할 수 있는 백혈구와 항체 생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단백질 글로블린이 많아지고, 면역을 억제하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의 양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웃는 동안 인체의 ‘진통제’라 불리는 엔돌핀이 왕성하게 분비돼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현상도 발견했다. 체내 악성물질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몸에 존재하는 자연살해(NK)세포의 활동 영역이 넓어짐은 물론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나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강해진다는 얘기다.


자주 웃는 사람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나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그렇지 않은 사 람보다 훨씬 강하다.


격렬한 운동과 비슷한 효과

미국 스탠포드대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20분 동안 웃는 것은 3분 동안 격렬하게 노젓는 것과 운동량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힘차게 웃고 나면 운동 후 느껴지는 상쾌함처럼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적대감이나 증오 등 나쁜 감정들이 금새 누그러지고 또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억지로라도 웃는다면 좋은 기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폴 에크먼 반사는 “인위적으로 특정한 감정을 만들어내면 몸도 거기에 따른 생리적 변화를 보인다”고 말한다.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억지로라도 웃는 시늉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슬픈 역할을 오랫동안 하는 배우는 실제로도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듯 쾌활하고 즐겁게 웃을 때 우리의 몸 안에서는 그야말로 ‘즐거운’ 변화들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외쳐보고 싶은 한 구절이 머리 속을 맴돌지 않은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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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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