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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금성 나타내는 행성기호 ♂ · ♀

헤파이스토스의 자동로봇에서 유래한 사이버

손재주가 좋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퀴베르네테스를 만들었다. 20세기에 인공두뇌학자들은 바로 이 이름을 빌어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학문의 이름으로 삼았다. 사이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나는 지난 번에 헤르메스를 ‘이것과 저것 사이에 존재하는 접속사 같은 신’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항성인 태양과 8개의 행성 사이에 접속사처럼 존재하는 첫 행성인 수성의 이름도 그래서 ‘헤르메스’(Hermes)라고 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영어 이름은 헤르메스가 아니라 머큐리(Mercury)이지요. 머큐리는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 메르쿠리우스(Mercurius)에서 온 것이니까 결국 헤르메스와 다를 것이 없지요.

머큐리(수성) 다음에 있는 별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금성입니다. 금성의 영어 이름은 ‘비너스’(Venus)입니다.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 베누스를 영어식으로 발음한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초저녁 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이 별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별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구는 신들의 할머니 가이아

금성 다음에 위치하는 행성이 바로 지구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빌어온 지구의 이름은 ‘가이아’(Gaia)입니다. 로마식으로 ‘가에아’(Gaea)라고 쓰기도 하지요. ‘가이아 이론’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만든 말인데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이론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가이아(지구)는 생존 환경을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이아는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저승의 신 하데스의 할머니에 해당하는 여신입니다. 아홉 행성의 이름을 지은 중세의 과학자들이 신들이 살던 땅 지구에 큰 할머니 이름을 붙인 것은 아무래도 썩 잘한 것 같지 않나요?

지구 다음 행성은 화성입니다. 영어로는 ‘마아스’(Mars)라고 하지요.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신 ‘아레스’(Ares)의 로마식 이름 ‘마르스’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아레스 또는 마르스는 신들이 살던 올림포스의 깡패였던 것으로 전해진답니다.

그리스 이름, 로마 이름, 영어 이름이 마구 등장하니까 헛갈릴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식 이름을 쓰면서 필요할 경우에만 로마식 이름을 괄호에 넣도록 하지요. 아프로디테(베누스), 아레스(마르스), 이런 식으로요.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프로디테는 거대한 조개에 실린 채 바다의 물거품에서 떠오른 여신입니다. 거품을 그리스 말로 ‘아프로스’라고 한다지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 ‘아프로디테’는 ‘거품에서 떠오른 여신’이라는 뜻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거품과 같다, 별 볼일 없는 것이다, 뭐 이런 뜻이 되겠죠.

자, 평온하던 하늘의 나라 올림포스에 눈에 번쩍 뜨이게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했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신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기어이 차지하고 마는 난봉꾼입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차지할 수는 없었지요. 인간 세상의 족보로 따지면 고모뻘이 됐으니까요. 제우스는 아프로디테를 자기 아들 헤파이스토스와 짝을 지어줍니다. 며느리 삼아 버린 것이지요.


다비드의‘대장간에 들른 헤 파이스토스’. 너무 아름다운 아 프로디테를 아내로 맞은 헤파 이스토스, 그러나 예감이 좋지 않다.


손재주 좋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는 세상에서 못만드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은 대장장이 신입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퀴베르네테스’를 처음으로 만든 것도 바로 헤파이스토스랍니다. 퀴베르네테스(Cybernetes)란 키잡이(steersman)가 내장돼 스스로 움직이는 장치라는 뜻입니다. 20세기에 인공두뇌학자들은 바로 이 이름을 빌어 새로운 학문의 이름으로 삼았지요. 바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입니다. ‘사이버’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지요.

헤파이스토스는 손재주만 좋을 뿐, 어리벙벙하고 띨띨했던 모양입니다. 이 헤파이스토스가 ‘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올림포스의 막강한 실력자 제우스에게 대든 적이 있습니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하늘 나라에서 걷어차 버리지요. 헤파이스토스는 렘노스 섬에 떨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집니다. 하지만 손재주 좋은 헤파이스토스는 의족을 만들어 큰 불편없이 지낸답니다.

자, 천하의 미녀신이 천하의 추남신, 그것도 어리벙벙한 신의 아내가 됐으니 어떤 일이 일어났겠어요? 다른 남신들이 아프로디테의 방을 기웃거렸을 법하지요? 물론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제일 먼저 아프로디테를 후려내는 신이 바로 전쟁신 아레스입니다. 아니지요. 아프로디테가 씩씩한 전쟁신 아레스를 꾀였다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하여튼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 둘의 밀회는 헤파이스토스가 눈치챌 때까지 계속됩니다.

헤파이스토스는 어느날 대장간에서 뚱땅거리면서 뭘 열심히 만들다가 아내 아프로디테에게 장기 출장이 필요하다면서 집을 비웁니다. 아프로디테가 어떻게 했겠어요? 그리움의 여신 히메로스를 보내 아레스를 불러들이지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마음 놓고 사랑을 불태우지요. 하지만 이들은 헤파이스토스가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 둘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건 모르지요. 새벽녘이 되자 난데 없이 문이 벌컥 열립니다. 헤파이스토스가 둘의 간통 현장을 급습한 것입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황급히 일어났지요. 그러나 침대 위에서는 사지가 자유로운데 침대에서는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어요.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헤파이스토스의 그물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전날 대장간에서 뚱땅거리면서 만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보이지 않는 그물에 두마리 새처럼 갇혀 버리고 만 것이죠. 그것도 알몸으로.


틴토레토의‘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간통 현장을 급습한 헤파이스토스’. 본문 이야기 와는 조금 다르다. 기겁을 한 아레스는 탁자 밑에 숨어 있다. 이런 망신이 없었을 테니까.


과 는 천문학 기호

헤파이스토스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어요. 그의 등 뒤에는 제우스를 비롯해 헤르메스, 아폴론, 포세이돈은 물론, 여신들까지 쭝긋쭝긋 서 있었습니다. 여신들은 아레스의 알몸을 보고 무안해서 얼굴을 돌렸지만, 남신들은 아프로디테의 알몸을 보고 끝이 갈라진 목소리로 저마다 한마디씩 말합니다. 태양신 아폴론과 제우스의 전령신 헤르메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오고갑니다.

아폴론: 헤르메스, 자네는 헤파이스토스가 부러운가, 아레스가 부러운가?
헤르메스: 둘 다 부럽소.
아폴론: 질투하는 헤파이스토스가 부러운가, 무안당하는 아레스가 부러운가, 이 말일세.
헤르메스: 아레스가 부럽소.
아폴론: 자네도 그물에 한번 갇히고 싶다 그 말이군?
헤르메스: 그물이 세갑절쯤 질겼으면 좋겠소.


수스트리스의‘아프로디테와 에 로스’. 아프로디테가 비둘기 두 마리에게 짝짓기를 강요하고 있 다. 날짐승은 발정기가 되지 않 으면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밖 을 보면 전쟁신 아레스가 안을 기 웃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간통 사건입니다. 이 둘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중재로 결국 보이지 않는 그물에서 풀려나기는 합니다만 세상에 그런 망신이 없었지요. 그물이 세갑절쯤 질겼으면 좋겠다던 헤르메스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 역시 나중에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얻게 됩니다. 아프로디테의 별명이 ‘아프로디테 포르네’였답니다.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이지요. ‘포르노’(음란물) 또는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행성 이야기로 되돌아갈까요? 아프로디테(베누스)의 별(금성)과 아레스(마르스)의 별(화성)은 가이아의 별(지구)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있습니다.

천문학에서는 행성을 기호로 표시한다고 하네요. 이때 아프로디테의 별 금성을 나타내는 기호가 바로 ‘♀’랍니다. 올림포스의 여신들 중에서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가장 자주 쓸 법한 거울을 형상화한 것이죠. 그리고 아레스의 별 화성을 나타내는 기호는 바로 ‘♂’입니다. 올림포스의 남신들 중에서 전쟁신 아레스가 가장 아낄만한 무기인 창과 방패를 형상화했습니다.

다른 행성을 나타내는 기호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이 아닌 분야에서는 쓰이지 않습니다. 이 ♀과 ♂는 생물학 중에서도 동물학에서 쓰이다 지금은 암컷과 수컷을 가리키는 기호로 일반화돼 사용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정말 힘이 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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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윤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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