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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공포의 기억을 부활시킨다

인체 항상성 무너뜨리는 천적

 

스트레스는 공포의 기억을 부활시킨다


아침 일찍부터 자명종 소리가 요란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일터로 나간다. 오늘 하루종일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현대인은 변화무쌍한 삶의 환경으로 인해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로 인해 불안감, 우울증과 같은 여러가지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 잉태된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태아는 자궁 속 환경, 즉 산모의 영양분이나 호르몬 같은 생리적 스트레스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경쟁사회에서 이겨나가기 위해 물리적, 심리적 부담을 느끼며 살아간다. 은퇴한 노령자도 예외는 아니다. 노후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며, 우리 몸은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체내 조절 네트워크의 교향곡
 

뇌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경로^편도체(01)로부터 자극 받은 시상하부(02)가 뇌하수체(03)로 신호를 보내면 뇌하수체가 신장 위쪽에 위치한 부신(04)에게 명령을 내려 호르몬이 분비된다. 부신에서 호르몬이 나와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한다(붉은색 화살표). 또 편도체에서 전전두엽 쪽으로 신호를 보내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파란색 화살표).


스트레스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무더위, 추위, 소음,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환경의 변화는 물리적 스트레스다. 과로나 감염은 생리적 스트레스에 속하며, 인간관계, 직장생활의 불만, 다가올 시험, 배우자의 죽음, 해고의 좌절감, 신문에 보도된 무서운 사건, 노후에 대한 불안 등은 사회적 또는 심리적 스트레스다. 사람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 그 다음이 이혼이나 별거라고 한다. 그러니 서로의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스트레스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몸은 외부환경이 변하더라도 체내환경을 일정히 유지하려는 성질, 즉 항상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는 혈당, 체온, pH, 호르몬 농도 등이 일정한 정도로 유지된다. 이런 항상성을 깨뜨리는 모든 요소가 바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의 3가지 조절 네트워크를 이용해 항상성을 유지한다. 웬만한 스트레스에 대해서 이 네트워크는 항상성을 곧 정상 수준으로 되돌려놓는다. 즉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강력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우리 몸 안에서는 여러가지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게 깨진 항상성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일련의 생리학적 적응과정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반응은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의 한 영역인 변연계에서 일어난다. 그 중 스트레스 반응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기관은 공포와 불쾌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편도체다. 감각 정보나 추상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최상위 중추인 대뇌피질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편도체는 여러 활동을 개시한다. 그 하나가 시상하부를 자극하는 것이다. 시상하부는 인체의 내분비기능을 총괄하는 일종의 총사령부다. 편도체로부터 자극을 받은 시상하부는 뇌하수체로 신경호르몬 신호를 보낸다. 이를 포착한 뇌하수체는 내분비선인 부신피질에 명령을 내려 글루코코티코이드라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따라서 글루코코티코이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번지점프를 하거나 스트레스 쌓이는 일을 할 때 또는 무서운 장면을 상상할 때도 혈액 내의 글루코코티코이드 농도가 높아진다. 이 호르몬은 체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기관에서 특정 유전자들을 발현시키고 코, 귀, 눈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는 등 몸의 기능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글루코코티코이드가 많아지면 인체의 면역기능이 억제된다. 즉 질병에 민감해진다는 말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유독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다. 또 종양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인 자연살해세포의 수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그 기능까지도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동맥경화, 심근경색을 일으킨다고도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에 의해 이런 질병이 발생했을 때는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편 편도체의 신경세포에서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낸다. 이는 뇌와 연결돼 있는 척수를 통해 전달돼 자율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 자율신경계는 심장이나 위장의 움직임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운동을 조절한다. 이 신경계가 활성화되면 부신수질이라는 내분비선에서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그러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모세혈관이 수축되며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슴이 뛰고 혈압이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체가 생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긴급 대처하는 셈이다.

또한 편도체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대뇌의 전전두엽 쪽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전전두엽은 연상작용 뿐만 아니라 입력된 정보를 판단하고 평가에 근거해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자칫 잘못된 사고나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스트레스라도 사람이 처한 입장이나 환경, 연령에 따라 신체의 반응은 다르다. 개인마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유유자적하다. 어떤 스트레스는 심기일전할 수 있는 활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같은 스트레스라도 과중하게 지속되거나 다른 스트레스와 겹치면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받으면 우울한 이유

또한 동일한 스트레스 상황일지라도 감정을 발산할 만한 대상 또는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 반응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쥐에게 전기충격을 줘 스트레스를 받도록 고안된 실험에서, 나무막대기 더미가 있는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쥐가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쥐는 나무막대기 더미를 계속 쏟아버리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위궤양이나 위염에 걸리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때로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을 때 편도체는 시상하부를 더 많이 자극한다. 그 결과 시상하부는 뇌하수체에 더 강한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또한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이 줄어들어 우울증, 무기력감, 절망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인체는 과도한 경계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결국 이런 상태가 습관처럼 돼 스트레스 요소가 없는 경우에도 항상 불안해진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낭패감에 시달릴 수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습관화되는 것은 과거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과 관련이 있다. 사실이나 사건을 기억하는 중추는 해마다. 해마의 신경세포 말단에서는 무수히 많은 시냅스가 뻗어나와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다. 이를 통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서로 정보소통이 이뤄질 때 기억이 형성된다.

해마는 편도체와 수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흥미롭게도 스트레스를 받은 쥐의 편도체에서는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들과 더 많은 시냅스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예를 들어 무서움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편도체 내 신경세포들 간에 정보소통이 매우 활발해진다. 따라서 불안함이나 공포감 같은 반응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밤에 여러번 강도를 만난 사람이 백주대낮에도 집밖을 나서면 무서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편도체와 해마 사이의 정보소통이 과도해지면 신경세포가 죽거나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이 억제돼 인지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스트레스 자체를 없앨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서 오는 불만은 중요한 스트레스 요인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자세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중요한 대처방안일지도 모른다. 또 웃음으로 뇌의 행복중추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심리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에 앞선다. 결국 마음이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성 정신질환 치료제 개발

스트레스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정신신경내분비면역학이다. 4개의 합성어로 이뤄진 만큼이나 복잡하고 종합적인 분야다. 이 분야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의 치료제 개발이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치료에는 대부분 수술이나 심리치료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울증의 원인을 영적인 것에서 찾기도 했고 정신질환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논쟁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신경계의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약물을 주로 사용한다. 항우울제인 프로작이 출현했을 때 그 효능은 가히 놀랄만했다. 프로작은 세로토닌이 시냅스에서 계속 머물면서 좋은 감정을 유발하도록 한 약물이다. 1995년 한 여성은 3주일 간 프로작을 복용하고 나서 수년 동안 받아온 심리치료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심리치료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약물이 그렇듯 프로작도 부작용이 있기에 많은 신경과학자들과 제약업계에서는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글루코코티코이드의 영향을 줄이는 방법, 뇌하수체가 시상하부로부터 스트레스 신호를 잘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또는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죽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 등이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또다른 방법은 유전자 치료법이다. 글루코코티코이드는 여러가지 유전자를 발현시키거나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흥미롭게도 글루코코티코이드에 의해 발현되는 유전자 중 하나가 바로 글루코코티코이드 수용체를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다. 자신이 전달되는 경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셈이다. 이는 글루코코티코이드의 생물학적 효과를 첫 단계에서 차단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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