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바이오텍은 우리나라 바이오벤처 1호라는 명성에 걸맞게 커다란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특허 하나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세계 수준의 바이오 기업으로 인정받는 쎌바이오텍의 비결은 무엇일까.
1995년 2월 사장과 4명의 연구원으로 설립. 그 해 7월 제1공장 완공. 8월 연구소 설립. 12월 대량생산 및 국내 공급 시작. 1996년‘96 신기술 대전’통상산업부 장관상 수상. 1998년 판매 및 마케팅 전문 자회사 설립. 1999년 한국경제신문 선정 50대 우수벤처기업.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정 우량기술기업.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유망중소기업 선정. 2000년 벤처기업대상 대통령상 수상.
어느 잘 나가는 정보통신 중견기업의 연혁쯤으로 보이는 이 명세서는 우리나라 1호 바이오벤처를 자타가 공인하는 쎌바이오텍이 지나온 길이다. 창업 6년 만에 이 정도 성과를 낸 기업도 드물 터인데, 투자 효과가 늦게 나타나기로 유명한 바이오벤처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한국인에게는 한국인 유산균을
쎌바이오텍 성공의 요인은 우선 원천기술의 탄탄함을 들 수있다. 쎌바이오텍은 유산균 원말 및 가공제품을 주요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 원천기술은 바로 한국인 유산균 배양과 단백질 코팅법이다.
쎌바이오텍은 창업 후 2년여 동안의 연구 끝에 지난 97년 갓난아기의 장에서 한국인 고유의 유산균을 배양해내는데 성공했다.
유산균은 사람의 장에 살면서 아밀라제, 리파제 등 소화효소를 생성해 소화흡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 흔히 우유만 마시면 설사를 하는 사람도 유산균 발효유를 마시면 유산균이 분비하는 유당분해효소로 우유의 유당을 정상적으로 분해할 수 있다. 그래서 유산균은 소화를 돕는 요구르트, 유아용 정장제, 성인용 건강식품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유산균의 진정한 효능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데 있다. 유산균은 사람이나 동물의 장에서 당을 분해해 유산(젖산)과 지방산, 항생물질(bacteriocin),과산화수소(H2O2)를 분비한다. 이 가운데 유산은 장을 산성화시켜 유해세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또 항생물질은 유해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며, 과산화수소는 살균작용을 한다. 게다가 마크로파지, 림프구 등 다양한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분열을 촉진시켜,
직접 인체의 면역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들을 억제하는데 유산균이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쎌바이오텍은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유산균시장에서‘한국인에게는 한국인 유산균’을내건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유산균은 일본인에게도 효과가 있어 수출 시장까지도 미리 확보할 수 있었다.
유산균 시한폭탄, 단백질 코팅법
쎌바이오텍의 연구진이 한국인 유산균 분리와 함께 매달린 것은 유산균 코팅법이다. 유산균 제품의 개발에서 유산균이 위산에 녹지 않고 안전하게 장에 도달하게 만드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공정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개발한다면 유산균 생산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연구에 매달린 결과 쎌바이오텍은 단백질 코팅법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신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다양한 방법의 유산균 코팅기술이 발달해 왔다. 우선 유산균을 그대로 사용한 1세대를 거쳐, 에나멜 처리된 약용 캡슐에 유산균을 담은 2세대, 껌이나 젤라틴을 미세하게 만든 입자에 유산균을 넣은 3세대까지 발달했다. 하지만 2, 3세대의 코팅기술은 위산에 견디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장에 도달해도 코팅이 녹지 않는 부작용이 있었다. 결국 복용한 유산균이 그대로 배출되고 만 것이다.
쎌바이오텍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4세대 코팅기술은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단백질로 유산균을 코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단백질은 인체 내에서 잘 분해되기 때문에 유산균을 둘러싼 단백질 코팅해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하나도 뒤떨어질게 없다는 자신감에 가득찬 것이다. 심지어“구매사 담당자가 맘에 안들면 물건을 나중에 주자”는 농담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제품 출시 후 한달이 지나도록 주문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쎌바이오텍의 또다른 성공요인을 찾을 수 있다.
보통 바이오벤처가 출범할 때는 직원 대부분이 연구인력들이다. 이 점은 초기 기술개발에서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해 회사 설립 몇년 만에 신기술개발을 완료해낸다. 그러나 그 뒤 이어져야할 제품화와 판매영업에서는 이러한 인력구성은 오히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기 쉽다.
올해 초 매일경제신문이 바이오벤처협회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벤처의 현주소는‘종업원 20명 미만, 매출 5억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데에는 아직 대부분의 바이오벤처가 창업한지 2년이 채 안되는 신생기업들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판매영업력을 갖춘 기업화에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쎌바이오텍은 한국인 유산균 개발의 도취감에서 바로 깨어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장이 직접 나서 시장 분석, 고객의 요구 및 제품 동향 분석 등 본격적인 마케팅에 매달린 것이다.
사실 정사장에게 이런 일은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었다. 정사장이 연대 생물학과와 서울대 미생물학과 대학원을 나온 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곳은 종근당이었다. 처음 회사에서 발령을 받은 곳은 생산공장. 하지만 정사장은 자청해서 약품영업직으로 갔다. 정사장은 이때 가장 하기 어렵다는 약품영업에서 사내 1위의 실적을 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의 결실은 지난 1998년 자사 상표의 정장제 제품을 국내외에 판매하기 위한 전문 마케팅∙영업회사인 (주)쎌바이오텍 인터내셔널 출범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바이오벤처로는 처음으로 연구 및 생산과 판매영업을 분리, 특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정신 없이 제품 판매에 매달릴 즈음 기회도 찾아왔다. 지난 1998년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제 아래 들어가면서 환율이 상승해 수입 유산균의 가격이 곱절로 뛰어 아예 공급마저 딸리게 된 것이다. 그 때 쎌바이오텍의 유산균은 수입가의 1/3으로 떨어져있었다. 그 결과 1997년 10월 이전에 8개사에 불과하던 거래업체가 40여개로 늘어났다. 매출도 1997년 전체가 6억원이었는데, 판매가 급증하던 1998년에는 한달 매출이 8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을 보였다.
유산균산업의 고속도로
현재 쎌바이오텍은 50여종의 유산균 원재료와 가공제품을 생산, 대웅제약, 제일약품 등에 유산균 완제품을 공급하는 등 내수 위주로만 경영해 지난해 약 5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유산균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자본금도 지난 1995년 2억원으로 출발한 이래 지금은 39억원으로 불어났다. 또 1백억원대의 수출계약이 체결돼 올해부터는 해외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쎌바이오텍의 목표는 이보다 훨씬 크다. 아예 전세계 유산균 시장의 생산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기서 쎌바이오텍의 세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을 찾아볼 수있다. 최근 쎌바이오텍은 단백질 코팅법이라는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다국적 기업들과 이미 임상시험, 특허 등록이 끝난 유산균의 대량생산에 대한 상담을 활발히 추진중이다.
쎌바이오텍은 미국, 일본, 덴마크, 독일에 이어 세계 5번째로 유산균 고농도 배양기술을 개발했지만 특허가 하나도 없다. 다른 산업분야의 특허와 달리 미생물 발효분야에서는 학문적인 연구와 산업용 기술개발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특허 출원이 곧 기술유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생물 생산시설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인증서를 다 갖췄다. 특허가 한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면, 인증은 기업이 일류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명서다. 제2공장의 우수원료의약품(KGMP) 제조시설 인증, 단백질 코팅 유산균 원료 및 완제품의 인체안전성에 대한 미국 KOSHER 인증, 한국유전자검사센터로부터 원료에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섞이지 않았음을 인증받았으며,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설계, 개발, 제조, 설치 및 서비스에 대한 국제 품질보증인 ISO-9001 인증을 받는 등 원료에서 생산설비에 이르기까지 유산균 대량배양에 대한 거의 모든 인증을 받은 상태다. 게다가 단백질 코팅이란 신기술까지 갖추고 있어 말 그대로 유산균만 보내면 완제품까지 일사천리로 생산이 가능하다. 외국 기업들은 쎌바이오텍을 자동차 격인 자신들의 유산균을 제품화시켜 시장에 내달릴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로‘고속도로’(highway)라 부른다고한다. 마치 무한 질주가 가능한 독일의 아우토반이라고나 할까.
보일러 기술자 차림의 연구원들
쎌바이오텍의 성공에는 연구실의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기업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정사장의 역할이 컸다. 정사장에게는 미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쌓은 발효업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회사의 지원으로 덴마크 왕립공대에서 유산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보고 느낀 선진국의 발효산업에 대한 식견이 있었다.
그러나 용감한 장수에게는 용감한 병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쎌바이오텍의 마지막 성공 요인은 바로‘작업복의 연구원들’이다. 이 회사의 공장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누가 연구원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산균 배양 자체가 각종 탱크와 배관으로 가득 찬 배양기들과 씨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모양새 또한 보일러 기술자와 다르지 않다.
현재 쎌바이오텍이 보유한 발효 설비는 모두 발효미생물 연구소 연구원들에 의해 배관 설계를 거쳐 시공이 진행됐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통해서 연구원들이 자연스럽게 기계설비의 설치와 유지, 개선에 관련된 모든 기술사항들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쎌바이오텍 연구원들은“유산균 배양은 생명체를 만드는것이기때문에장비를세팅(setting)한다는말이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끊임없는 연구과 시행착
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증명해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쎌바이오텍이 설립될 무렵 연구원들이 미생물 냉동건조기를 찾았더니 국내에 그런 건조기를 생산해본 기업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대안으로 찾은 것이 바나나 건조기라고 한다. 바로 술안주로 나오는 바나나 칩을 만드는 기기다. 연구원들은 이 바나나 건조기를 이리저리 고쳐가면서 결국 원하는 미생물 건조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송이버섯 인공배양으로 새로운 도전
쎌바이오텍의 성장을 보면‘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면 하늘이 알아준다’(盡人事待天命)는 말이 생각난다. 연구실에서 거둔 조그만 성과라도 바로 들고 나와 벤처를 창업하는 현실에서 직원들이 들인 공이 그만큼 값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여기에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쎌바이오텍은 폭발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자사의 상표를 부착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해 초 천연 송이버섯 균사체의 인공배양에도 성공했다. 송이버섯은 그동안 인공양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쎌바이오텍이 30년이 걸리는 균사체 형성기간을 인공적으로 배양해 15일만에 균사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실험결과에 의하면 인공배양한 균사체 추출물을 종양을 가진 쥐에게 투여한 결과 완전퇴치율 75%, 종양저지율 97%를 기록했다고 한다. 쎌바이오텍은 앞으로 천연 송이버섯 균사체가 들어간 다양한 기능성 식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바이오벤처를 21세기 산업이라 부르는 것은 부가가치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치료제인 인터페론 1kg값은 금값의 3백57배에 이를 정도다. 유산균 정장제 역시 마찬가지로, 원료인 대두, 탈지 분유 1kg이 4천원인데 유산균 완제품은 kg 당 50만원에 이른다. 1백배가 넘는 부가가치가 생기는 셈이다. 바나나 건조기를 두들겨 미생물건조기로 탈바꿈시킨 연구원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낸 것이다.
영업 마인드로 무장한 발효학 박사 정명준 사장 "바이오벤처는 잡학의 결정체"
지난 1995년 정명준 사장이 미원이라는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유산균 정장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그의 행동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유산균 정장제 생산은 일반적으로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반면 정사장은 원하는 유산균을 찾아내고 대량배양 기술을 개발하려면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대기업의 특성상 3년 이상 같은 업무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창업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기술연구팀장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데는 뭔가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정명준 사장은 유학시절에 보고배운 선진국의 농촌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덴마크 왕립공대에서 발효학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유럽의 농촌을 수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변변한 산업 시설 하나 없는 덴마크가 농업의 선진화로 부를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발효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김치공장 설립 권유 받기도
그러나 자신이 보지도 못할 후손을 위해 수십년 간 산기슭의 밭에 관개시설을 만들어가는 나라의 이야기를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사장 역시 창업 후 아무런 매출도 없는 상황에서 유럽의 농부처럼 자신을 밀어줄 자금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길이‘스스로 구하라’라는 평범한 진리의 실천.
“바이오벤처는 단기간에 매출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벤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 당시는 그 말조차 생소한 시절이라 매출도 없는 회사에 돈을 댈 사람은 없었죠. 그래서 연구, 설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때 택한 방법은 정부의 프로젝트를 따는 것이었습니다. 벤처라면 자사가 보유한 원천기술의 우수성과 연구인력, 장비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쎌바이오텍은 창립 직후부터 과기부, 보건복지부, 농림수산부, 통상산업부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기술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자금 확보가 용이해졌습니다.”
처음 정사장이 창업 자금을 얻기 위해 방문한 은행지점장은“아직 박사가 김치공장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전공도 발효학이고 하니 김치공장을 하면 어떠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지점장에게 당시 정사장은 10분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지금은 거래은행의 지점장이 일부러 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기업의 자금흐름, 경제 동향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최근 신문지상에서는 올해부터 바이오벤처들의 본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쎌바이오텍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세계시장을 두드릴까.
“유산균 관련 다국적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마케팅과 연구인력만 1만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연구한 성과물을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있게 하는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처음 한국인 고유의 유산균을 찾아내 우리 회사가 개발한 단백질 코팅으로 장내 활성이 높은 유산균 제품을 개발한 것처럼, 각국의 기업들이 연구를 통해 고유한 유산균을 분리해내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 제품화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유산균 관련 시장 규모는 20조원에 달합니다. 우리 회사가 1%만 차지해도 웬만한 대기업 부럽지 않겠죠.”
정사장은 지금 그 꿈에 부풀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창업 후 몇년 간 공장 숙직실에서 먹고 자며 개발에만 매달리면서 주말에나 가족을 보는 아쉬움을 회사의 성장으로 보상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정사장은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무모한 젊은이들에게는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어쩌면 누구나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 아닐까.
“바이오벤처는 잡학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실험실의 연구성과를 기업화 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과학기술자도 일단 기업을 세웠다면 영업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기술이 있으면 벤처가 되지만 결국 벤처도 기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