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포츠 중 가장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파도타기.인간은 보드만을 이용해 어떻게 파도를 멋지게 타는 것일까.자연의 힘,파도를 활용하는 인간의 지혜를 엿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파도가 출렁이는 시원한 바다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 바다에서 높은 파도를 타는 멋진 서퍼가 담긴 사진 한장이 떠오른다. 보드에 몸을 싣고 아슬아슬하게 파도 사이를 가로지르며 다니는 서퍼의 모습은 실로 짜릿하다.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마음이 탁 트이는 파도타기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놀랍게도 파도타기는 선사시대부터 남태평양에서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수상스포츠다.
서퍼가 보드 하나만 가지고 거대한 파도를 타고 바다 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또 보드 없이 맨몸으로도 가능하고, 돌고래도 파도타기를 하면서 이동한다고 한다. 이렇게 파도타기가 가능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파도의 운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보자.
영원한 맴돌이
파도는 바다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자연현상으로 조수와 함께 바닷물의 대표적인 운동이다. 파도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해보자.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에 물이 반쯤 담긴 음료수병을 놓고 그 운동을 지켜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파도는 쉼없이 해안으로 밀려온다. 그렇다면 병도 해안 쪽으로 파도와 함께 움직일까.’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땡’이다. 파도는 해안 쪽으로 진행해오지만, 병은 다만 제자리에서 파도의 마루와 골을 따라 원을 그리며 하나의 파도가 지나는 동안 다시 되돌아오는 왕복운동을 할 뿐이다(그림1).이를 올 여름 피서를 바다로 가 직접 확인해봄이 어떨까. 만일 병이 없다면 직접 자신이 병이 돼 이 운동을 확인해볼 수 있다. 바다에 떠있는 사람은 파도가 밀려오면 해안 쪽으로 밀려갔다가 파도가 지나가면 바다 쪽으로 밀려오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경험해볼 수 있다. 이 사실은 파도가 물이 매질인 파동의 일종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파도가 진행하는 동안 매질인 바닷물 자체는 진행하지 않고 진동할 뿐이다. 굵은 밧줄을 양쪽에서 잡고 출렁거리는 파장을 만들면 밧줄을 이동하지 않고 힘만 이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물은 어떤 진동운동을 하는 것일까. 병과 마찬가지로 파도가 진행할 때 그 매질인 물은 원운동 형태로 진동운동을 한다. 이때 원운동의 회전방향이 파의 진행방향을 결정한다. 회전방향이 시계 방향이라면 파도는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반시계 방향이라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물의 이런 운동은 수면 근처에서만 일어난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원운동은 점점 감소하고 거의 파도의 파장과 같아지는 수심에서 사라지게 된다.(그림2)
파도가 파동이라는 점은 서퍼가 이동하는 물에 의해서 밀려가는 것이 아님을 지칭한다. 만일 서퍼가 물에 그냥 떠있기만 한다면 음료수병처럼 원운동하면서 제자리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파도타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파도 위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서퍼가 받는 힘을 통해 이를 알아보자. 파도는 언덕과 같은 모양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밀려든다. 반복되는 파도 하나를 ‘파도언덕’이라고 할 때 파도언덕의 진행방향쪽 언덕 마루쯤 위치에서 서퍼가 받는 힘은 중력과 부력 두 가지이다. 중력은 지구 중심방향으로 향하고 부력은 수면에 직각 방향으로 향한다. 이 두 힘의 합력은 결국 서퍼를 파도언덕 아래쪽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마치 스키 타는 사람이 언덕에서 미끄러지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파도타기는 파도에 ‘밀려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파도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중력, 부력, 마찰력의 조화
한편 서퍼가 진행하는 동안 수면으로부터 진행을 방해하는 마찰력이 생기고, 공기저항도 서퍼의 진행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저항력으로 인해 서퍼가 파도언덕 꼭대기 가까이에서 어느 정도 미끄러져 내려가면 힘의 합력이 0이 돼 물체의 속력은 일정해진다(그림3). 즉 종단속력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만일 파도가 정지해 있다고 가정하면 서퍼는 마치 스키 타는 사람과 같이 파도언덕을 미끄러져 종단속력으로 파도언덕의 골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스키와 파도타기의 가장 다른 점은 언덕이 움직인다는 것. 앞서 파도의 운동에 대해 살펴봤듯이 파도언덕의 진행방향쪽 경사면에 있던 병은 물의 원운동을 따라서 조금 앞으로 진행하면서 위치가 위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파도가 진행함에 따라 파도언덕의 앞부분 물은 앞으로 진행하면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다음에 물은 파도언덕을 넘어가 버린다. 따라서 만일 서퍼가 파도언덕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는다면 파도언덕을 넘어가 버린다. 서퍼의 위치가 파도언덕의 한 위치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이유가 파도언덕이 진행하는 동안 서퍼가 파도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는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서퍼는 바닥에 대해서는 아래로 내려가는 운동을 했지만, 파도 자체의 이동으로 인해 파도언덕에 대한 서퍼의 상대적인 위치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림4)이같은 과정으로 서퍼는 일정 높이를 유지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계속 움직이는 파도언덕과 함께 앞으로 진행한다.
용인 캐리비안베이의 ‘서핑라이더’라는 놀이시설도 이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바다에서처럼 인공적으로 파도타기를 해볼 수 있는데 다만 다른 점은 이 놀이시설은 언덕이 파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놀이시설은 실제 언덕 위로 강한 물을 흘려줘, 사람이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만큼 물살에 의해 올라가게 돼 한 자리에서 머물러 있을 수 있다.
파도가 있는 바다라면 어느 곳이나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을까. 파도가 이동할 때 수면 아래 물은 파도의 파장 길이 정도의 수심까지 원운동을 한다고 앞서 얘기했다. 해변으로 가까울수록 바다의 수심이 얕아져 파도의 한 파장보다 더 짧아지면 결국 바닥에서의 원운동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때 파도의 속력이 줄어들게 되고 파도의 마루들은 합쳐지고, 골들이 합쳐지면서 높이가 더욱 커지게 돼 파도언덕의 경사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바다 한가운데서는 완만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파도가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가파르고 위협적으로 변한다. 해일일지라도 바다 한 가운데에서는 파도가 높이 1m인 것이 해안 가까이에서는 무려 20-40m까지 엄청나게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파른 파도언덕이 해변에 가까울수록 수심이 얕아지면서 파도 앞부분의 언덕을 이룰만한 물이 충분치 않아서 언덕이 불완전해지고 파도가 ‘부서진다’. 하얀 거품을 내며 파도가 부서지는 것이 오직 바닷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먼바다에서는 불가능
해변 가까이에서 파도가 뭉쳐져서 파도언덕의 경사가 심해지면 서퍼가 진행방향으로 받는 알짜힘이 커져서 더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다. (그림5)만일 서퍼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속력이 충분치 않으면 파도와 함께 이동하지 못하고 파도언덕을 넘어가 버리고 만다. 서퍼가 파도타기를 시작하기 전 빠르게 손을 저어 나가는 이유도 빠른 속력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는 이런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경사를 가진 파도가 없다. 따라서 파도타기가 먼바다에서 가능하지 않다. 파도타기를 하려면 거대한 파도가 일어날 수 있고, 파도언덕의 경사가 급해져서 부서질 수 있는 해안이어야 한다. 하와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은 파도타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도타기 장소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파도타기를 즐길만한 파도가 몰려오는 해안이 없다. 국내에서 아직 보급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캐리비안베이의 서핑라이더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소규모 모임이 구성돼있기는 하다.
서퍼가 해변 가까이에서 파도를 성공적으로 타고 적당한 속력을 얻은 후의 운동은 어떨까. 서퍼가 파도 진행방향과 나란히 해변 쪽으로 곧바로 향해서 파도를 타게 되면 속력이 빨라져 파도언덕의 거의 바닥 부분에 다다르게 된다. 파도언덕의 경사면에 비해 서퍼의 진행을 방해하는 저항력이 충분히 크지 않아 서퍼가 경사각이 작아지는 골 근처까지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서퍼는 파도언덕의 골을 향해 미끄러지고 이때 서퍼는 파도의 진행 속력대로 파도를 따라 서서히 해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보다 멋지게 파도를 타기 위해서 서퍼는 파도를 가로질러 타기도 한다. 해변으로 곧바로 향하도록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각을 지어 진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 서퍼는 몸의 중심을 파도 안쪽으로 기울여 미끄러지는 경사각을 줄일 수 있어 아래로 향하는 힘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경사각에 의한 아래 방향의 힘이 작아져 물로부터의 저항력이 서퍼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막아주므로 서퍼는 거의 파도언덕 정상부근에서 파도를 탈 수 있다.
서퍼는 파도를 타고 해변을 향해 이동하다 파도가 부서지기 직전에 보드를 돌려 파도와 정확히 수직으로 가로지르게 위치한다. 그러면 순간 아래로 미끄러지는 힘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되면서 물의 저항력으로 서퍼는 멈추게 된다. 곧 파도가 그를 덮쳐버릴 것이다. 이제 서퍼는 물을 저어가며 또다른 파도언덕을 타기 위해 찾아다닐 것이다.
실제 바다에서 파도타기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요소 외에도 다양한 변인들을 고려해야한다. 우선 보드 위에서의 서퍼의 균형, 바람과 같은 파도 이외의 외력도 고려해야 한다. 파도를 타면서 속력을 얻거나 늦추거나 하는 방법은 스노우보드 타기와 비슷하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행방향의 경사를 조절하는 방법과 몸의 무게중심을 변화시켜 가속도를 얻는 방법, 보드를 잡고 보드의 기울기를 조정함으로서 부력의 방향을 조정해 속력을 조절하는 방법 등이 있다. 파도타기는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이용한 스포츠인 스키, 스노우보드 등과 비슷한 원리와 기술을 요구해 이들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은 쉽게 파도타기를 할 수 있다.
파도타기는 파도라고 하는 바닷물의 운동과 지구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이용한 스포츠이다. 인공의 에너지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오직 자연의 힘을 빌어 자연과 조화되는 멋진 스포츠인 것이다. 자연을 탐구하고 활용하는 인간 활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올 여름은 바다와 파도에서 이런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