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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세계 미남 미녀의 조건

본질은 효과적인 종족 번식 전략

꽃이 아름다운 색깔로 곤충을 유인하는 것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자연스러운 몸짓이다.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암술과 수술을 다양하게 조합시켜 표현함으로써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지혜도 발휘하고 있다.


식물세계의 미남 미녀의 조건


봄의 소식을 전하는 노란색의 복수초, 웃음짓는 것처럼 보이는 흰색의 함박꽃, 붉은색을 띠는 산천의 진달래, 자주색을 띠는 제비꽃 등 산과 들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대부분 식물의 줄기와 잎은 녹색이지만, 꽃은 눈에 띄는 노란색, 흰색, 붉은색, 자주색으로 배고픈 곤충을 유혹한다. 사실 유혹은 식물의 고착성에 기인한다. 식물이 다른 개체와 교배하기 위해서는 화분을 옮겨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이를 담당하는 것이 주로 곤충이나 바람이다. 대개 우리가 꽃으로 부르는 것은 곤충에 의해 화분이 운반되는 충매화다. 이들은 아름다운 색깔로 곤충을 유인한다. 하지만 은행나무처럼 바람에 의해 화분이 운반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꽃이 눈에도 잘 띄지 않고 볼품도 없다.

충매화 시나리오

식물의 꽃은 곤충에게는 아주 멋진 식당에 비유될 수 있다. 배가 고픈 곤충은 음식을 먹기 위해 커다란 숲 속에서 꽃이 피어있는 음식점 거리를 찾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음식점의 간판(꽃잎)을 보게될 것이다. 냄새를 맡는 감각이 뛰어나면 수백m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맛있는 냄새(꽃의 향기)를 맡고 돌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중한 곤충들은 곧바로 음식점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음식점 바깥에서 요모조모 따져본다. 특히 처음 방문하는 음식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먹고 싶은 요리(화분과 꿀)를 정말로 줄까? 가격은 적당할까? 편안하게 식사가 가능한지 등 걱정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람들이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에 가짜 음식을 쳐다보거나 메뉴를 검토하듯이 곤충들도 다양한 유인장치를 요모조모 관찰한다. 맛있는 음식점(꽃)을 발견한 경우에도 자리가 없으면 가게 안으로 못 들어갈 수도 있다. 인기가 높은 음식점이라면(수분곤충이 꽃을 방문하는 빈도가 높은 꽃)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점이 생기기 이전에 있었을 법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민가(식물)의 수입(수분에 의한 수정)은 다른 중매(바람, 풍매화)에 의해 얻어졌다. 여행자(곤충)가 자주 통과하는 길목에 민가가 있다고 하자. 그 민가에 때때로 배가 고픈 여행자(식물을 먹는 곤충)가 ‘먹을 것을 조금 주세요’ 라면서 들렀다. 처음에 민가는 스스로 모아두었던 음식물(줄기, 잎, 꽃)을 제공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여행자들의 등쌀에 장사(돌연변이)를 하려는 생각이 들어, 민가를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 혹은 주막으로 개량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꿀과 화분)를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점(충매화)이 된 것이다. 요리가 맛있어 여행자들에게 소문이 나면 수입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여행자는 단순한 탈취자가 아니라 훌륭한 손님(매개곤충, 중매장이)이 된다. 또 일단 요리점을 개업하면 주인은 손님을 많이 모아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천남성은 성전환식물


양성화인 함박꽃.자주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수술이고,중앙의 흰색이 암술이다.


식물은 아름다운 꽃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것과 아울러 암술과 수술을 다양하게 조합시킴으로써 자신의 후손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외부로 드러나 보이는 미남 미녀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암술이나 수술과 같은 꽃 내부의 기관도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식물이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다. 꽃은 남성 생식기관에 해당하는 수술과 여성 생식기관에 해당하는 암술을 가진다. 함박꽃에서처럼 암술과 수술을 함께 가지는 꽃을 ‘양성화’(사진1)라 부른다.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중 하나인 소나무는 수술만으로 된 수꽃(사진2)과 암술만으로 된 암꽃(사진3)을 가진다. 이를 ‘단성화’라고 한다. 꽃의 성 표현은 크게 2가지 유형이 있으나, 집단 내에서 개체가 어떤 성을 표현하는가는 매우 다양하다. 동물들이 1개의 개체가 1개의 생식기를 가지는데 비해 식물은 한 그루나 같은 집단에서도 양성화, 암꽃, 수꽃들을 다양하게 가진다.


소나무의 수꽃.
곰솔의 암꽃.


함박꽃이나 진달래는 암술과 수술을 함께 가지는 양성화그루로 고등식물계에서 이러한 성형태는 약 70% 이상을 차지한다. 한반도의 숲을 구성하는 주인인 참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있고, 은행나무는 수그루(사진4)와 암그루(사진5)가 따로 있다. 하지만 암꽃과 양성화를 함께 갖는 그루, 수꽃과 양성화를 함께 갖는 그루도 있다. 또 큰개별꽃처럼 꽃가루의 기능을 잃어버린 암그루와 양성화그루가 함께 나타나는 식물(사진6)도 있으며 수그루와 양성화그루를 함께 가지는 경우도 있다. 천남성(사진7)처럼 어릴 때는 무성, 조금 크면 남성, 완전히 성숙하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예도 있다.
 

암그루인 은행나무에 핀 암꽃.
수그루인 은행나무에 핀 수꽃
큰개별꽃의 양성화(왼쪽)와 꽃가루의 기능을 잃어버린 암꽃.
천남성은 어렸을 때는 무성(왼쪽)이었다가,약간 성장한 다음에는 수꽃(가운데)으로 된다.그리고 완전히 성숙하면 암꽃(오른쪽)으로 된다.


자손 생산이 최대의 목표

그러면 동물과는 달리 고등식물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성을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이 다양한 조합을 가진 개체들은, 개체군 안에서 다양한 유전자를 결합시킬 뿐만 아니라, 가장 효과적으로 다음 세대의 자손을 생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형질은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기구와 관련 있다. 그러나 식물은 동물과 달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식물은 물리적 환경의 조건과 동물에 의해 먹히는 양을 고려해 여러 가지 성표현, 수분 기구, 교배 시스템, 번식 시스템 등을 변화시켰다.

식물 자신이 생산한 유한한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살펴보자. 식물이 암꽃과 수꽃을 따로 가지면, 암꽃과 수꽃이 각각 꽃잎과 꽃대를 만들어야 하므로 2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꽃잎과 꽃대를 함께 사용해 양성화의 형태를 취하면 공동경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하다. 고등식물에서는 흔한 모습이나 고등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경우는 동물처럼 수컷이 암컷을 찾아다닐 수 없다. 따라서 단일 개체 안에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는 쪽이 교배의 확률이 높다. 또 화분을 만들고 종자를 만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는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암술과 수술의 투자 비율

식물이 보이는 다양한 성의 형태를 이론적으로 해석해보자. 생물이 자손을 남기는데 드는 에너지는 유한하다. 따라서 암술과 수술에 광합성으로 얻은 물질을 투자하는데는 서로 길항 관계가 성립한다. 즉 수술이 많이 열리면 그만큼 암술에 투자하는 물질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암술과 수술에 어느 정도의 비율로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은 출생시의 성비가 거의 1:1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은 부계와 모계로부터 같은 수의 유전자를 받는다. 따라서 만약 집단 속에 암컷이 많은 상태라면, 수컷을 많이 낳는 개체가 자기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기회가 증가하므로 유리하다. 반대로 개체군 안에 수컷이 많으면, 암컷을 많이 낳는 개체가 유리하다. 그러므로 수컷과 암컷을 1대 1의 성비로 자손을 낳는 개체만이 집단 속에서 안정한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면 식물은 어떠한가? 수꽃과 양성화가 한 그루에 있는 경우를 살펴보자. 대부분 미나리과 (미나리, 참당귀, 어수리, 고본 등)에 속하는 이들 식물들은 대개 큰 과일을 달고 있다. 큰 과일을 만들려면, 성숙할 때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용 가능한 한정된 에너지로 많은 수의 열매를 맺기란 힘들다. 수꽃은 과일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양성화에 비해 에너지 소비를 격감시킬 수 있다. 수꽃은 양성화와 비교할 때 엄마의 기능은 소실돼 있으므로 열매는 맺을 수 없다. 그 몫만큼 번식에 성공할 확률은 낮다. 양성화의 수를 적절하게 조절해 열매의 크기를 가능한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식물들이 암술과 수술을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보여주는 예다. 이용가능한 한정된 에너지를 2개의 성이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이상적일까.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적 안정화 전략’ 이라는 수학적 이론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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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재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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