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IBM왓슨 연구소

딥블루의 승리를 E비즈니스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다. 비록 체스경기이지만 딥블루는 인간 챔피언의 무릎을 꿇린 최초의 컴퓨터였다. 딥블루의 고향은 IBM 왓슨연구소. 딥블루 승리 이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세계 최대 컴퓨터연구소인 왓슨연구소의 연구현장을 둘러보았다.


뉴욕 요크타운하이츠에 자리잡고 있는 왓슨연구소.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마천루,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브로드웨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거리마다 칠해놓은 낙서. 뉴욕의 아름다움은 맨해튼이라는 좁은 공간을 마다하지 않고 그려내는 자유와 상상력이 아닐까. 여기에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월가(街)도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서 있다.


월가를 보기 전 세계 최대 컴퓨터기업인 IBM 본사가 왜 뉴욕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컴퓨터는 곧 실리콘밸리라는 편견이 언제부터인지 자리잡고 있어서이다. 그런데 세계경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하는 수많은 은행과 증권사들을 월가에서 만나는 순간 의구심은 삽시간에 사라진다. 엄청난 계산을 해야 하는 월가와 이를 해결해줄 컴퓨터회사는 역사를 함께 해온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국제사무기기회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를 아느냐”고 물으면 “잘 안다”고 대답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아이비엠(IBM)을 모르는 이는 없다. 같은 회사인데도 그 연혁을 아는 이가 적은 까닭이다.


IBM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1911년 6월 15일, 전자식 컴퓨터가 등장하기 훨씬 전이다. 당시의 회사 이름은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로 통계나 회계를 쉽게 처리하는 펀치카드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었다. 이후 CTR은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다양한 계산기와 사무기기를 선보이며, 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국제시장을 개척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그리고 1924년 국제적인 사업에 걸맞게 회사 이름을 IBM으로 바꿨다. 이처럼 일찍부터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한 IBM에게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인 뉴욕은 더없이 훌륭한 홈그라운드였다.


1998년도 IBM의 매출은 8백17억달러(약 98조원), 세전수익은 90억달러(약 11조원). 이는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백대 기업 중 6위의 기록이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매출을 보면 휴렛팩커드(HP)가 4백70억달러(계측기 등을 포함), 컴팩이 3백12억달러, 인텔이 2백63억달러, 델컴퓨터가 1백82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가 1백45억달러 순. 이와같이 IBM이 공룡기업으로 군림할 수 있는 까닭은 3만여개에 이르는 특허를 쏟아낸 IBM의 연구역량에 있다. 그 연구의 중심은 왓슨연구센터다.


하버드대학으로부터의 수모

뉴욕 날씨는 서울 날씨와 거의 비슷. 서울에서 아카시 꽃향기를 흠뻑 맡고서 뉴욕에 도착하면, 뉴욕에서 다시 아카시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다발을 볼 수 있다. 교통지옥으로 일컬어지는 복잡한 맨해튼을 벗어나 북쪽으로 숲을 헤치고 50km쯤 달리면 웨스트체스터카운티 134번 도로 곁에 요크타운하이츠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요크타운하이츠에서 약 10km쯤 떨어진 호손이라는 곳에 또 하나의 IBM연구소가 있는데, 이 둘을 합쳐 토머스 존 왓슨연구센터(흔히 줄여 왓슨연구소라고 함)라고 부른다.

왓슨연구소의 모체는 1945년 컬럼비아대학 근처에 세운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 IBM의 창업주 토머스 존 왓슨(1874-1956)은 1915년 CTR사의 대표가 됐을 때 ‘생각하라’(think)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결국 이 말은 오늘날 IBM의 좌우명이 됐으며, 그 정신을 실현할 파이어니어들이 모인 곳이 바로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였다.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는 1961년 웨스트체스터카운티로 옮기면서 토머스 존 왓슨연구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1944년 5월 하버드대학 교수인 하워드 에이킨(1900-1973)은 IBM과 해군으로부터 50만달러를 지원받아 미국 최초로 전기기계방식의 대형컴퓨터인 마크 1호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에서 공식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에이킨은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제작비의 3분의 2를 대고 상당수의 부품을 제공했던 IBM의 사장 토머스 왓슨을 발표회장 뒷줄에 앉힌 것이다. “만약 총만 들었다면 아버지는 에이킨을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2대 IBM회장에 오른 토머스 왓슨 2세(1914-1993)는 당시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이 터진 후 토머스 왓슨은 곧바로 에이킨의 마크 1호를 능가할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소를 세웠다. 이게 바로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다. 한편 왓슨은 더 이상 하버드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또 왓슨의 뒤를 이은 IBM 회장들 역시 IBM의 자존심을 건드린 하버드대학에 결코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이 없었다.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는 1948년 1월 27일 마침내 마크 1호를 능가하는 SSEC라는 전설적인 컴퓨터를 화려하게 데뷔시켰다. SSEC는 전기기계방식의 마크 1호와 달리 1만2천5백개의 진공관을 사용했으며, 편미분방정식을 푸는 것은 물론 8개의 20자리 10진수를 기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상업용 컴퓨터였다. 데뷔하는 날 SSEC는 과거, 현재, 미래의 달의 위치를 순식간에 계산해냄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후 왓슨과학컴퓨팅연구소의 맥을 이으며 왓슨연구소는 수많은 컴퓨터 관련 발명과 특허를 획득하면서 컴퓨터공룡기업인 IBM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56년 컴퓨터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를 선보였고, 1957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언어인 포트란을 만들었다. 1966년에는 D램을, 1979년에는 박막자기헤드 기록장치를 선보였다. 이후 IBM은 중형컴퓨터 시장을 장악하면서 컴퓨터업계에서 ‘지존’으로 통했다.


1948년 IBM이 처음으로 선보인 SSEC 컴퓨터.


인간을 이긴 컴퓨터

왓슨연구소를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시킨 것은 뭐니해도 딥블루(Deep Blue). 딥블루는 1997년 5월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에서 인간챔피언을 눌러 전세계인들을 경악케했던 IBM의 슈퍼컴퓨터다. 당시 컴퓨터와 겨룬 세계챔피언은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가리 카스파로프(당시 34세). 그는 1985년 22살 때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후 12년 동안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천개의 눈을 가진 사나이’였다.


이에 맞선 딥블루는 6명의 왓슨연구소 과학자들이 8년 동안 2백만달러를 들여 만든 슈퍼컴퓨터로, 초당 2억번의 행마를 검토하고 과거 1백년 동안 열렸던 주요한 체스대국의 기보를 암기하고 있었다.


결과는 2승3무1패로 딥블루의 승리. 1승3무1패의 팽팽하던 전적을 깨고 마지막 6차전에서 딥블루가 1시간 만에 카스파로프의 무릎을 꿇게 만든 것이다. 결국 우승상금 70만달러는 딥블루에게 돌아갔다.


그때의 영화를 다시 한번. 최근 IBM이 왓슨연구소 내에 제2의 딥블루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딥컴퓨팅연구소(www.reseach.ibm/dci)를 개소한 것은 이 때문이다. 참여 연구원수는 1백20여명, 시드머니는 2천9백만달러.


딥컴퓨팅연구소는 앞으로 과학, 경제, 인간 생활과 얽혀 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풀어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어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는 것도 이 가운데 속한다. “나비 한마리가 중국에서 팔랑거리면 뉴욕에서는 폭풍이 분다”는 카오스의 나비효과 때문에 일기예보는 1주일만 넘어도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딥컴퓨팅연구소가 여기에 도전한다. 딥블루에 사용했던 RS6000SP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고성능날씨예측시스템인 ‘딥썬더’(Deep Thunder)를 개발하겠다는 것.


20세기가 물리학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 특히 유전공학의 발전이 눈부시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소에서 매주 테라(1012)바이트 이상 쏟아내는 유전정보를 통합해 유전자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단백질을 합성하는지를 밝히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 역시 딥컴퓨팅연구소의 슈퍼컴퓨터가 맡게 될 과제 중의 하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왓슨연구소가 이런 난제를 맡겠다고 나선 것일까. 그 이유는 딥블루에서 찾을 수 있다.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IBM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는 큰 수익을 올리는 IBM 특유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 내다보면 딥썬더는 기상정보 자체도 상품이지만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또 21세기를 주도할 유전공학회사 등도 IBM의 주요한 고객이 된다. 이점에서 딥컴퓨팅연구소장으로 선임된 수학자 풀리블랭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슈퍼컴퓨터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이다가 기초과학 연구로 이전됐다. 이제는 상업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출 때다. 딥컴퓨팅이 인간생활과 경제활동에서 풀리지 않는 난제들을 푸는 것은 새로운 e비즈니스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카스파로프가 딥블루와 체스경기를 하는 모습.


e비즈니스 열풍

마치 부흥회를 열듯 최근 IBM에서는 e비즈니스(e-business)를 외치며 모든 조직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왓슨연구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e비즈니스는 IBM이 만들어낸 말로 인터넷과 정보기술(IT)을 통합한 개념. 사이버증권의 경우 기존의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했을 때는 단순히 주식만 사고 팔지만, e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경제동향자료, 주식시황자료, 관련기업의 경영분석자료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주식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다. 또한 사이버증권은 객장을 가지 않아도 되고 수수료가 적다. 그러다보니 e비즈니스를 찾는 증권사들이 크게 는다는 것.


유명한 피아노회사인 야마하는 최근 ‘글로벌 주크박스’(www.globaljukebox.com)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전세계 어디서나 무인피아노연주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피아노곡을 곡명, 작곡가, 연주가에 따라 데이터베이스화한 다음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데, 여기에다 실제 피아노만 연결하면 피아노는 유명 연주가의 연주를 흉내내며 연주를 하는 것이다.


일찍이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던 야마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형식적인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를 만들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피아노를 주문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살 사람들은 매장에 가서 직접 피아노를 쳐본 다음에 산다. 이 점을 간파한 야마하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야마하 매장을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장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글로벌 주크박스다. 유명 연주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야마하 피아노를 고르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생각을 바꾸자 e비즈니스의 시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어졌다. 전자상거래, 인트라넷은 물론이고 공공업무, 원격교육 등이 모두 e비즈니스 영역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IBM의 매출은 8백17억달러, 이중 1백20억달러가 e비즈니스 매출이다. 게다가 IBM의 추산에 따르면 2001년 전세계 인터넷 사용인구는 2억3천만명, e비즈니스의 규모는 3천억달러로 껑충 뛴다. 그 절반만 차지하더라도 매출은 1천5백억달러라는 계산.


IBM은 불과 3년 뒤 매출을 2배로 키워줄 e비즈니스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e비즈니스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는가. 결국 IBM은 지금까지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판매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e비즈니스 기업으로 탈바꿈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케팅과 영업 조직을 개편하고, 왓슨연구소를 비롯한 전세계 8개 IBM연구소를 모두 e비즈니스 선도기술 개발에 투입했다.


IBM 연구소들이 풀어야할 e비즈니스 과제는 날로 복잡해지는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는 방법,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덧붙이는 확장기술, 다양한 업무를 인터넷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기술, 해킹과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는 보안기술, 그리고 정보가 늘어나는 만큼 접속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 e비즈니스를 활성화할 새로운 기기들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왓슨연구소가 올해 말에 보급할 베지비전(VegeVision)도 유통 관련 e비즈니스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베지비전은 과일이나 채소를 계산대에 놓으면 미리 설치된 카메라가 색깔과 모양을 보고 종류를 판단하고, 무게를 재서 가격을 결정해주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과일과 채소에다 일일이 바코드를 붙일 필요가 없다. 손님이 물건값을 계산하면 매출과 재고상황은 인터넷을 통해 유통회사와 생산자에게 전해진다.


왓슨연구소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지금까지 맹위를 떨쳐온 PC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 사실 PC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만큼 단순하지 않고 휴대하기도 불편하다. 그런데다가 최근 괄목할 성장을 하고 있는 이동통신기기들이 인터넷 시장을 넘보고 있다. 가트너그룹에 따르면 현재 이동통신을 이용하는 인구는 전세계적으로 2천3백만명이고, 2천년에는 5천5백만명으로 늘어날 전망.


왓슨연구소 보급형정보단말기(Pervasive Computer) 개발책임자인 아제이 고팔은 “언젠가 PC를 이용한 인터넷 인구보다 이동통신을 이용한 인터넷 인구가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며 “IBM은 이동통신기기를 이용한 e비즈니스 서비스는 물론,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단말기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20세기를 이끌어온 공룡기업인 IBM과 왓슨연구소는 지금 21세기를 앞두고 인터넷혁명이 한창이었다. 그것은 바로 e비즈니스 혁명이었다.


e비즈니스 관련 공급망 체계개발 팀장인 한국인 안재훈박사.


세계 인재를 등용하는 IBM연구소 - 키스하면서 정보 주고받는 '디지털 오로라'

IBM은 대표적인 다국적기업. 따라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든다. 또 IBM은 이러한 인재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세계에 8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다. 직원수는 모두 2천8백여명.

IBM연구소들의 중심은 뉴욕에 있는 왓슨연구소다. 직원수는 1천4백명. 주요 연구분야는 E비즈니스, 모빌컴퓨터, 수학을 기반으로 한 딥컴퓨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왓슨연구소에는 안재훈 박사(e비즈니스 중 공급망관리체계 개발책임자)를 비롯해 30여명의 한국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IBM연구소에서는 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처음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에사키레오나(1925-). 일본인인 그는 소니에서 근무하다 왓슨연구소로 옮긴 후 반도체에서 일어나는 전자의 터널링효과르 발견했다. 이 공로로 1973년 노르웨이의 이바르 예이버(1929-)와 영국의 브라이언 조지프슨(1940-)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에사키를 제외한 4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스위스 취리히연구소 출신이다. 취리히연구소는 1956년에 설립됐다. 이곳에 근무하던 독일의 생리학자 게르트 비니히(1947-)와 스위스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로러(1933-)는 1981년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을 발명했다. 그 공로로 최초로 전자현미경을 디자인한 독일의 에른스트루스카(1906-1988)와 함께 1986년 노벨물리상을 수상했다. 또 1986년에는 독일 출신의 게오르크 베드노르츠(1950-)와 스위스의 알렉스 뮐러(1927-)가 고온초전도를 발견해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IBM에서 배출해낸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 미국인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취리히연구소의 직원은 1백60명. 주로 물리, 광전기술,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IBM 연구소 중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곳은 1986년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설립돼 실리콘밸리로부터 기술과 인력을 수혈받고 있는 알마덴 연구소. 이곳은 1996년 11월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에서 개인영영네트워크(PAN)를 선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람 몸에 흐르는 전류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일명 '디지털 오로라'라고 한다. PAN은 디지털 오로라를 이용해 악수나 키스와 같은 신체적인 접촉이 일어나면 이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첨단장비다. 신용카드처럼 생긴 PAN장비에는 개인의 신상정보가 담겨 있어 피부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전송속도는 2천4백pbs. 이 장비를 이용하면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명함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고, 신용카드전화나 보안장치가 부착된 출입문에도 이용할 수 있다. 알마덴연구소의 직원수는 7백명.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도 이곳에서 개발하고 있다.

이밖에 IBM연구소로는 일본 야마토시에 세워진 도쿄연구소(1982년 설립, 직원은 1백75명), 이스라엘 하이파연구소(1982년, 2백55명),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연구소(1995년, 30명), 중국 베이징연구소(1995년, 20명), 인도 델리솔루션 연구소(1997년, 20명) 등이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GAMMA
  • 홍대길 기자
  • 사진

    IBM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정보·통신공학
  • 소프트웨어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