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금속절삭을 위한 공작기계가 두가지 형태로 개발됐다. 하나는 ‘기록-재생’ 기계다. 노동자의 작업내용을 자기테이프에 기록한 다음 기계가 노동자의 작업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치제어’ 기계다. 노동자의 작업과 상관없이 미리 프로그램을 짜놓은 내용을 기계에 입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숙련노동자 없이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기록-재생방식은 기존의 시스템을 변경할 필요 없이 작업내용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고, 오류를 사전에 즉각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에 반해 수치제어 방식은 숙련노동의 필요를 줄임으로써 노무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복잡한 기계가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를 도입하려면 공장의 시스템 전체를 바꾸어야 했으며, 작업중에 발생하는 오차를 제거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두가지 가운데 실제로 현장에서 채택된 것은 수치제어 방식이었다. 왜 그랬을까. 작업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경영진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어떤 경영자가 한 말을 들어보자. “보세요. 기록-재생시스템에서는 통제권이 기계공에게 주어져 있어요. 하지만 수치제어 기계를 도입하면 통제권이 경영진으로 이동합니다. 경영진은 더이상 조작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기계의 사용을 최적화할 수 있죠. 사정이 이런데 우리가 왜 이 기계를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미래는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설계하고, 또한 그러한 기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