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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막의 경계를 허무는 계면활성제


계면활성제는 거품을 안정화 시킨다.


계면활성제는 막과 막의 경계를 허물며 세상을 부드럽고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다. 계면활성제 덩어리인 비누에서부터 약물 속에 포함된 다양한 쓰임새를 살펴본다.

우리 몸의 세포막이 다른 것들에 의해 쉽게 무너져 내린다면? 물과 기름이 서로의 경계를 영원히 고수하려고 한다면? 다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것과 그 경계를 허물어 득을 보고 있는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한다. 세포막은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으며 물과 기름은 섞을 수도 있다. 이 중 경계를 허물며 등장하는 계면활성제는 생활 공간 어디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다. 피부의 때를 떼어내는 비누를 비롯해 화장품, 잉크, 우유, 마요네즈, 바르거나 붙이는 약 등에서 계면활성제는 큰 역할을 한다.

물과 기름을 섞어라

말 그대로 계면활성제는 계면을 활성시키는 물질이다. 계면은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나눠진 물질들이 만나는 면, 또는 같은 상태라도 다른 종류의 물질이 만나는 곳으로 물질 내부와 달리 높은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독특한 물리적 성질을 보인다. 물 표면의 분자들은 에너지가 높아 끓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기체로 될 수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렇지만 계면의 존재는 물질들이 쉽게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용액 중에 작은 기름 방울들이 섞인 화장품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들은 대부분 2가지 이상이 혼합돼 있다. 이 때 쓰이는 방법이 입자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여기에는 고체입자가 액체에 분산된 현탁액이나 기체 중 고체 입자가 분산된 에어로졸도 포함된다. 이렇듯 서로 섞이지 않는 물질들이라도 콜로이드 크기(수 나노미터에서 수십 마이크론)의 입자 상태에서는 섞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마요네즈나 화장품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시 지용성분과 수용성분으로 분리되듯이 분산된 상태를 안정되게 유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분산된 물질들이 서로 엉키거나 침전되지 않도록 하는 계면활성제다. 계면활성제는 물과 친화력이 강한 친수기와 상대적으로 친화력이 약한 소수기를 갖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구조가 서로 섞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어뜨림과 동시에 그 관계를 안정되게 유지시킨다.

붙이는 약

인체에 투여한 약물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소화액과 혈액에 잘 용해돼야 한다. 만약 용해가 어려운 물질이라면 약물의 표면적을 최대로 만들어 약물이 많이 방출되도록 해야한다. 이처럼 약물의 이용률을 높이는데 적당한 것이 콜로이드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 중 약을 먹는 것과 주사를 맞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체로 먹는 약에 포함된 단백질은 위나 장을 통해 흡수되면서 온몸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고분자 단백질은 위 속에서 흡수가 되지 않으므로 약물형태로 만들어 주사한다. 주사의 방법에도 피하주사와 혈관주사가 있다. B형 간염 백신과 같이 분자량 15만 이상의 고분자로 이뤄진 약물일 경우에는 피하로 흡수되지 않으므로 혈관을 통해 직접 주사한다.

이처럼 입으로 먹거나 주사로 맞는 약은 혈액과 함께 순환계를 통해 몸으로 흡수된다. 하지만 이 때 간을 통과하면서 약효가 떨어질 수도 있고 온몸에 퍼지면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붙이는 약이다. 파스 종류를 비롯해 로션타입의 근육통 치료제, 붙이는 관절염 치료약 등이 그 예다. 이것은 피부를 투과할 수 있는 분자량 1천 이하의 약물로 질병 부위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체로 붙이는 약의 성분은 소수성인 점착제와 친수성인 약물, 그리고 이 둘을 안정화시키는 계면활성제가 피부의 각질층을 벌려주는 용매에 분산돼 있다.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를 예로 들어보자. 아무리 효과가 좋은 약물이 있더라도 피부 표면에 붙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약물과 점착성분은 서로 친하지 않다. 이 때 이 둘이 서로 묶일 수 있도록 친수성과 소수성인 두 개의 팔로 잡아당기는 것이 계면활성제다. 붙이는 약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교 같은 물질이라는 얘기다.


계면활성제는 거품을 안정화 시킨다.


계면활성제 덩어리 비누

계면활성제하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이 비누다. 흔히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한다. 이는 감기의 주요 감염경로가 손에 묻어있는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을 비누로 씻으면 미생물들이 손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말인가.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비누로 인해 미생물의 세포막이 파괴된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계면활성제가 세포막 표면의 지질들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비누도 그 분자 안에 계면활성제의 기본 구조인 친수성 부분과 소수성 부분이 있다. 비누가 물에 들어가면 비누의 친수성 부분은 물을 향해 배열하고, 소수성 부분은 공기를 향하므로 물의 표면장력이 감소된다.

유지가 주성분인 때가 묻어있는 천을 비눗물 속에 담그면 비누가 물의 표면장력을 감소시켜 물이 천 사이로 침투해 들어가 기름때가 떨어져 나오기 쉽다. 또 비누 분자의 소수성 부분은 섬유표면의 기름때를 둘러싸 떼어냄으로써 물 속에 분산시킨다. 이 때 친수성 부분은 물을 향한다.

빨래를 하면 거품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빨래를 한 입장에서는 더러움이 지워진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물을 정화하는 쪽에서는 상당한 골칫거리다. 폐수를 처리한 후에도 거품이 가득한 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계면활성제 때문이다.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는 물이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거품이 생긴다. 공기가 물 속으로 들어가면 계면활성분자들이 공기를 둘러싸면서 거품이 발생한다. 이런 계면활성제는 거품을 안정화시킨다. 거품은 물에 쉽게 녹지 않을 뿐더러 물의 표면을 공기로부터 막고 있어 수질 정화에 문제로 등장한다. 따라서 근래에는 거품이 적게 나는 세제가 개발되기도 했다.

물이 정화되려면 영양물질이 물 속의 박테리아나 빛에 의해 분해돼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계면활성제 내에는 빛이나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될 수 있는 작용기가 없어 분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에 만들어지는 세제에는 빛이나 물 속의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될 수 있는 작용기를 넣은 계면활성제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생체계면활성제다. 완전히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산업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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