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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장치 실현하는 맥가이버들

21세기 꿈의 첨단 에너지로 각광받는 핵융합, 수소와 같이 가벼운 원소들의 핵이 서로 결합해 헬륨과 같은 조금 무거운 원소의 핵을 형성하는 물리현상이다. 이때 발생하는 질량 결손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돼 수소폭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핵융합은 바닷물에 포함돼 있는 중수소를 원료로 삼기 때문에 화석연료처럼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염의 염려가 없다. 또 원자력에너지 10배 이상의 출력을 얻을 수 있지만 핵의 안전성과 방사성폐기물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핵융합은 에너지확보와 환경오염을 모두 해결해주는 진정한 의미의 '무한 청정에너지'라고 인식된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은 최첨단 실험시설을 갖추고 핵융합을 실현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현재 대덕 기초과학지원연구소에서 선진국 수준을 능가하는 핵융합 실험시설 '한별'(KSTAR)을 제작 중이다.

그러나 한별이 가동된다 해도 핵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의 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 한별이 완성될 때까지 핵융합에 대한 기초 연구는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이런 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KAIST 물리학과 토카막실험실의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핵융합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태양 내부와 같은 초고온, 초고압의 극한 상태(플라스마)에서 핵융합물질을 반응시켜야 한다. 흔히 물질의 상태를 고체, 액체, 기체 3가지로 구분하지만, 사실은 우주의 99%이상은 물질의 제4상태인 플라스마로 구성된다. 플라스마란 한마디로 고온 상태에서 이온화된 입자 상태로서, 양이온과 전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제아무리 플라스마를 성공적으로 얻었다 해도 이를 담아놓을 그릇인 토카막이 필요하다. 토카막은 '도넛 모양의 자기그릇'이란 의미의 옛소련말로서, 전기를 띤 상태인 플라스마의 운동을 자기장으로 구속시킨다는게 기본 원리다.

2002년 완공될 예정인 한별의 목표는 3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3백초 동안 지속시키는 것이다. 플라스마의 생존 시간으로 볼 때 선진국 시설의 30배나 된다. 그만큼 핵융합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이 쉬워질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다.

이에 비해 KAIST의 토카막실험실은 한별의 본격 기동을 대비해 다양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전초기지다. 현재 1백만도 정도의 플라스마를 1백분의 4초 동안 발생시킨다. 한별에 비해서 여러모로 작은 규모지만, 학교 실험용으로는 손색이 없다는 게 실험실을 이끄는 최원호교수의 말이다.
 

KAIST 연구진이 자체 조립한 토카막 장치


중고 전자레인지로 불씨 점화

사실 KAIST의 토카막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졌다. 미국 텍사스대에서 폐기하려던 것을 실험용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KAIST에 가져온 시기가 1990년대 초, 물리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설계도를 보며 각 부품을 이리저리 조립하는데 걸린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초창기에는 내부온도나 지속시간이 기대밖이었다. 기계 부품 자체가 중고이다보니 아무래도 여러가지 결함이 발견됐다. 또 극한의 온도와 압력을 요하는 토카막을 만들고 플라스마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물리학에서 다루는 모든 기술이 총동원돼야 했다. 전자기학, 컴퓨터, 전자회로와 같은 첨단과학은 물론 토카막을 안전하게 장치하는데 필요한 선반이나 드릴작업과 같은 '고전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연구원 모두가 맥가이버와 같은 만능 재주꾼이 돼야 했다.

한번은 계절학기 수업에 참가한 학부생 1명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플라스마를 만들려면 우선 조그마한 '불씨'를 발생시키는 전자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전의 전자파 발생장치는 성능이 썩 신통치 않았다. 미국에서 새 부품을 구입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의외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됐다. 전자레인지에 부착된 전자파 발생장치를 달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불과 5만원 상당의 중고 전자레인지 덕에 현재 KAIST 토카막은 별다른 차질 없이 성능을 개선시키고 있다. 작년 말까지 실험실의 목표는 질좋은(높은 온도와 오랜 지속시간을 갖는) 플라스마를 얻는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플라스마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기초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플라스마의 질이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현재 플라스마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은 최교수 외에 박사과정 4명과 석사과정 4명. 계절학기 때 참여한 학부생 2명을 초함해도 겨우 1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 가을에는 플라스마 지속 시간을 10분의 1초로 늘리겠다"고 장담하는 실험실 맥가이버들의 모습에서 핵융합의 꿈이 더이상 선진국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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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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