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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의 소나무와 잣나무 인공림.


우리가 세계를 향해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에게 숲이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황폐된 국토를 다시 푸르게 복구시킨 숲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앞선 세대가 합심해 지난 30여년 동안 약 1백억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결과,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한국 전쟁 전후 사회적 격동기의 와중에 헐벗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숲은 다시 푸르러졌다.

세계 문화사를 되돌아볼 때 황폐된 숲을 완벽하게 복구시킨 예는 흔한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2백년 전에 국토를 녹화시킨 독일과 금세기 후반의 우리만이 이 과업을 달성했다. 이 한가지만으로도 우리 국민은 세계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복구된 우리 숲은 한민족의 자존심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우리의 숲을 들먹이는 것은 결코 자화자찬이 아니다. 숲을 다루는 행정부처나 이 분야 학문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입으로 퍼진 ‘물타기식’ 홍보는 더더욱 아니다. 녹화 성공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오히려 국제기구나 외국의 저명 언론을 통해서 거꾸로 국내에 전해졌다. 그러기에 더욱 값진 자랑거리다.

UN 식량농업기구는 우리의 국토녹화 성공사례를 전세계에 소개했다. 그것도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최단시일 내에 국토를 완전히 녹화시킨 경이로운 국가”라는 칭찬과 함께. 그뿐 아니다. 2백년 역사의 임업선진국 독일은 “선진 임업기술을 제공한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국만이 경영 기반이 될 푸른 숲을 되찾은 유일한 나라”라고 외국에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녹화 성공은 ‘한강의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대서특필한 외국의 신문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녹화시킨 우리의 숲은 자원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고, 환경을 유지하는 환경지지체로서의 기능조차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근원적인 이유는 심은 지 30여년이 채 안 된 어린 나무들로 구성된 우리 숲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1ha(헥타르, 1만m²)당 2백m² 이상의 산림축적을 가진 데 비해 우리는 겨우 50m²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경제적 수익을 얻기 위해 경영할 만한 숲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한국전쟁 직후 1ha당 7m²의 축적을 가진 민둥산이 이만큼이나 불어나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취약한 우리 숲의 구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숲을 대하는 우리 각자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국민은 숲에 대한 관심이 없다. 돈벌이를 위한 땅투기의 수단이나 여가와 휴양을 위한 공간으로만 생각하지, 목재생산이나 환경 지지체로서 숲이 가진 원래의 역할과 효능에는 무관심하다. 뿐만 아니라 숲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진실처럼 통용돼 옳게 숲을 가꾸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지금부터 가장 대표적인 세가지의 오도된 상식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강원도 청태산의 인공 조림지. 사진의 노란 부분이 낙엽송이고, 푸른 부분이 잣나무 조림지다.


잘못된 상식 -우리 숲엔 쓸모 없는 나무뿐이다.

우리 산하에 자라는 나무들 중 쓸모 없는 나무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수종이 아카시나무(아카시아라고 잘못 알려진)다. 이 나무는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제 영역 안에서 쉽게 자랄 수 없게 강한 독성물질을 분비한다. 뿐만 아니라 뿌리에서 줄기가 될 눈(根株萌芽)을 만들어 새로운 개체로 번식할 수 있다. 그래서 줄기를 잘라내도 땅 속에 남아 있는 뿌리에서 계속 새 줄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다른 식물을 몰아내는 특성과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아카시나무는 우리 숲을 오히려 파괴하는 독수(毒樹)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큰 도시나 마을 주변의 산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온 국토가 나쁜 독수로 점차 잠식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카시나무는 그렇게 못 쓸 나무도 아니며 전국토를 잠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 쓸모 없는 나무란 없다. 오리나무와 더불어 이 나무의 뿌리에는 질소고정균이 있어서 한때 사막같이 헐벗은 민둥산을 효과적으로 녹화시켰고 황폐지의 산림토양을 개량하는 데도 일등 공신 노릇을 했다. 게다가 아카시나무의 꽃은 한해 약 1천억원 이상의 수입을 양봉농가에 안겨주는 중요한 밀원(蜜源)이기도 하다.

또 아카시나무는 연탄이 보급되기 전에는 땔감을 공급하는 연료림의 구실도 톡톡히 해냈다. 인가 주변에 특히 이 나무가 많은 이유도 연료채취로 황폐된 도시 주변의 산에 집중적으로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가가 드문 깊은 산에서는 아카시나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복구된 우리 숲은 아직 1세대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카시나무나 오리나무 같은 사방(砂防)수종만이 사막같은 헐벗은 산에 적응해 살 수 있었기에 이들 나무들을 심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이들 사방수종이 산림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주었기에 오늘날 경제수종을 가꿀 수 있게 된 형편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숲도 독일처럼 2백여년 길러내면 쓸모 있는 나무들이 가득찬 훌륭한 숲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옳은 숲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 숲에 길을 내는 것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한편, 산불과 같은 대형사고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물론 이 작업은 반드시 환경친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된 상식 -녹화가 됐으니 더 이상 투자할 필요 없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숲에 대한 투자를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로 치부하고 있다. 숲에 대한 철학도 없고, 숲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는 위정자나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선입관은 숲의 특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숲은 지상에서 유일한 재생 가능한 자원이다. 옳게 가꾸고 현명하게 이용하면 영원히 쓸 수 있는 귀중한 자연자원이다. 또한 숲은 환경을 유지하는 기능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몸체를 키워가는 공기 청정기이자 탄소 통조림 공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연 공장이 원활하게 가동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투자가 필요하다.

산림학자들은 선진 임업기술을 동원해 우리 숲을 집약적으로 경영할 경우 자연상태로 방치했을 때보다 3배 이상의 경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산업발전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느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해결책의 중심에는 산림이 있다는 사실이다.

작년 12월 교토에서 폐막된 기후협약 제 3차 당사국 총회의 주요 의제는 온실가스의 강제적인 배출감소였다. 비록 개발도상국에 대한 탄산가스 배출감축계획이 당장은 미루어졌지만 우리가 안심할 처지는 못된다. 우리의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가 하루 아침에 에너지 저소비 구조로 전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OECD에 가입하고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로 취급받고 있는 우리들 앞에는 가까운 장래에 다른 선진국들처럼 강제적인 탄산가스 배출감소 의무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의 근간은 중화학공업이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 탄산가스 배출량이 지금보다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거의 정지 상태에 있거나 감소 중인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교할 때 치명적이다. 특히 에너지의 80% 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만일 구속적인 온실가스 배출감소 의무가 주어진다면 지난날과 같은 높은 경제성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지난 교토회의에서 각국이 보유한 산림이 흡수하는 온실가스량 만큼 배출량에서 삭감해주는 순배출 제도가 합의된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경제발전 속도는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우리 산림이 흡수하는 탄산가스의 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숲을 집약적으로 경영하면 탄소 저장 효과를 20% 나 더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숲을 옳게 가꾸고 지키기 위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못된 상식 -숲길을 내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숲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심었던 나무들은 덩치가 커져서 이웃 나무의 가지들이 서로 맞닿아 있다. 솎아주지 않은 빽빽한 숲은 병충해나 산불의 피해를 받기 쉽다. 충분히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콩나물처럼 촘촘하게 심겨진 나무를 솎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녹화시킨 우리 숲은 가꿀 때가 되었건만, 예산도 충분하지 않고 가꿀 사람도 없다. 산림에 기대 살아왔던 농촌 주민들이 산업화의 여파로 모두 도시로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숲을 가꾸고 지키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임업기계를 투입해 대신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업기계의 투입마저 임도(林道) 건설의 미비로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숲을 옳게 보호하고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숲길을 내는 것이 선결과제다. 환경보호 정책이 가장 앞선 독일도 숲을 가꾸기 위해서 ha당 40m의 임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겨우 1m의 임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숲길을 만들 때마다 환경단체를 위시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직면하곤 한다.

대부분의 시민환경단체는 숲길을 내는 것을 환경을 파괴하는 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잘못된 숲길 공사 때문이다. 정부의 불충분한 예산은 환경친화적으로 숲길을 내기보다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워서 무리하게 숲길을 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결국 시민사회단체는 숲길을 내는데 적정한 단가를 지원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지엽적인 훼손현장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숲길을 내는데 필요한 적정한 사업비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환경자원으로서 숲의 기능을 더욱 증진시키는 일임을 인식하고, 더 많은 숲길을 내는 것이 숲이 가진 환경적 기능을 더욱 증진할 수 있는 길임을 우리 모두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숲에 대한 이 모든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인 애정이 필요하다. 국민의 관심이 우리 산림으로 모아질 때 목재생산의 경제적 기능과 환경지지체로서의 공익적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원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더욱 악화된 대기오염과 물사정에 대한 기사들을 만나고 있다. 나무와 숲은 인간의 의식주에 필요한 귀중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와 물을 공급해준다. 아울러 숲은 생태계의 질서를 정상적으로 유지, 지탱시켜주는 중심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자연환경을 개선하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해준다. 이런 이유로 숲을 가꾸고 지키는 일은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세대가 심은 1백억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면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숲을 가꾸고 지키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자원으로서의 가치 창출은 물론이고, 자연환경을 지탱하는 생태적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숲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일은 식목일이 있는 4월에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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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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