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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허셜과 마리아 미첼

달에 이름 새긴 두 여성

대부분의 과학분야가 마찬가지지만 20세기 이전까지 천문학은 특히나 여성의 접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여성의 진출을 선도했던 두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각각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두 여성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천문학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225 년 전,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1781년 천왕성을 발견하고 1802년에는 별들의 분포를 밝혀 우리 은하의 구조를 확립하는 등 그가 천문학에 이바지한 공로는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그의 뒤에 누이동생인 캐롤라인 허셜(Caroline L. Herschel)이 있었다는 것이다.

캐롤라인 허셜은 1750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원사였지만 음악적 재능이 남달라 한때 프로이센 군대 악단에 소속되기도 했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그는 자식 교육에 매우 열성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윌리엄 허셜을 비롯한 자식들은 수학과 불어, 음악을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자가 집안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인 캐롤라인 허셜이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캐롤라인 허셜은 10살 때 발육에 지장을 주는 발진티푸스에 걸린다. 이 병으로 키도 자라지 않았고 얼굴에는 발진으로 생긴 흉터가 많이 남았다. 부모가 보기에도 너무나 못생겨 결혼시키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집안일만 할 수밖에 없었던 캐롤라인 허셜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것은 오빠인 윌리엄 허셜이다. 윌리엄 허셜은 누이동생의 앞날을 걱정하며 꼭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영국에서 음악가로 자리 잡은 그는 캐롤라인 허셜이 22살 됐을 때 그를 영국으로 데려왔다. 그곳에서 캐롤라인 허셜은 음악을 본격적으로 배웠고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했다. 이런 이력을 볼 때 그의 집안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큰곰자리의 이중성 미자르. 옛날 로마에서는 병사의 시력을 측정하는데 북두칠성의 미자르별을 이용했다.


혜성 발견으로 자취를 남기다

영국에 온 캐롤라인 허셜은 음악 활동을 하며 오빠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허셜이 천문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음악을 등한시하자 안정된 생활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캐롤라인 허셜은 이해심이 많았기 때문에 윌리엄 허셜이 천문학에 정진하도록 밀어줬다. 또 오빠의 조수로 일하며 스스로도 천문학에 깊이 매료됐다.

그의 업무도 천체망원경을 만들기 위해 반사경을 연마하는 일로 바뀌었다. 때때로 캐롤라인 허셜은 윌리엄 허셜이 관측한 성운들의 기록에서 좌표를 찾아내 이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작업은 수학에 능통해야 했고 그는 수학을 더 깊게 공부할 수 있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혜성을 발견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왜냐하면 혜성을 발견하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윌리엄 허셜이 독일에 가 있는 동안 캐롤라인 허셜은 독자적으로 혜성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윌리엄 허셜에 가려져 있던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이 혜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명성을 얻게 된 캐롤라인 허셜은 그 뒤 윌리엄 허셜을 도우며 독자적으로 8개의 혜성을 새로 발견했다.

훗날 윌리엄 허셜이 죽은 뒤 그는 관측을 그만두고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윌리엄 허셜과 자신이 관측했던 기록을 모은 성운 목록을 출판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됐고, 독일 왕은 그에게 과학 금메달을 수여했다.
 

캐롤라인 허셜과 마리아 미첼


미국을 자극한 무명의 천문학자

유럽의 최초 여성 천문학자가 캐롤라인 허셜이었다면 68년 뒤 바다 건너에서도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가 탄생했다.

마리아 미첼(Maria Mitchell)은 181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낸티컷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미첼은 별을 끔찍이 좋아하는 아마추어 천문가였고 하버드대 천문대장이였던 윌리엄 본드와는 친구였다. 이 때문에 마리아 미첼은 어려서부터 천문학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별을 관측하면 그는 항상 옆에서 조수 노릇을 했다.

18세 때 그는 마을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비록 천문학을 좋아한 그였지만 천문학자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미국에는 그때까지 여성 천문학자가 없었기 때문에 여성은 천문학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날이 맑으면 언제나 망원경으로 하늘을 봤다.

29세가 된 10월의 어느 날 밤, 마리아 미첼은 용자리에서 혜성을 발견했다. 그는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경험이 많던 아버지는 새로운 혜성으로 확신했다. 아버지는 이 발견을 알려야 한다고 권했고 마리아 미첼은 떠밀리듯 이틀이 지난 뒤에야 하버드대 천문대에 편지를 보냈다.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배는 육지로 가지 못한 채 편지와 함께 섬에 묶였다. 결국 편지는 6일 뒤에야 하버드대 천문대에 전달됐고 천문대장 윌리엄 본드의 아들인 조지 본드가 이 혜성을 유럽에 보고했다.

캐롤라인 허셜 때도 그러했지만 혜성의 발견은 당시의 천문학자에게 대단한 영광을 안겨줬다. 혜성 발견자에게는 덴마크 프리드리히왕이 직접 메달을 수여하고 그 영예를 기렸다. 그런데 마리아 미첼이 발견한 혜성은 그가 발견한 날로부터 이틀 뒤 이탈리아의 드 비코가 발견해 이미 첫 발견자로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궂은 날씨로 보고가 늦어 마리아 미첼은 메달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하버드대 천문대에서는 조지 본드의 일기와 편지 등을 증거물로 마리아 미첼이 첫 발견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의 외교관까지 동원해 그는 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발견은 당시까지 과학이 유럽에 뒤떨어져 있던 미국에 큰 자극제가 됐다. 미국에서 이뤄진 최초의 과학적 발견이었고 학계에서는 무명이었던 한 여성이 이뤄낸 쾌거였다.

이 일로 마리아 미첼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으나 천문학자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돼 고향을 떠날 수도 없었다. 대신 그는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아버지가 만든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을 계속했다.

마리아 미첼은 유럽의 천문대와 천문학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한 은행가의 도움으로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당시 하버드대 천문대는 천체를 사진으로 찍어 관측하는 기술을 막 도입하던 시기였다. 조지 본드는 큰곰자리의 유명한 이중성 미자르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이중성 사진이었다.
 

1789년 캐롤라인 허셜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윌리엄 허설이 만든 대형 망원경. 구경이 122cm로 당시 최대의 반사망원경이었다.


두 여성의 시간을 초월한 만남

마리아 미첼은 이 사진을 유럽에 알리고 싶었고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리니치천문대에 근무하는 윌리엄 헨리 스마이스와 조지 에어리를 만났다. 그들 앞에 내놓은 이중성 사진은 위대한 두 천문학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바야흐로 천체관측에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 사진은 영국 왕립천문학회 모임에 전시돼 많은 유럽인에게 충격을 줬다. 마리아 미첼이 미국의 천문학을 유럽에 소개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이다.

마리아 미첼은 당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윌리엄 허셜의 아들인 존 허셜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초대장을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용기를 내 존 허셜을 직접 찾아갔다. 존 허셜과의 만남은 마리아 미첼에게 큰 전기를 가져왔다. 존 허셜이 자신의 숙모 캐롤라인 허셜의 친필 논문을 선물로 준 것이다. 이렇게 두 여성 천문학자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지상(紙上)의 인연으로 닿았다. 유럽과 미국의 최초 여성천문학자가 정신적으로 만나게 된 셈이다.

마리아 미첼은 훗날 바자르여대 천문대장을 역임했다. 그는 프로 천문학자가 아니었음에도 미국 과학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이자 미국 철학회의 회원이 됐다. 그는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썼고 과학계에서는 그의 뜻을 기려 여성의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미첼협회가 탄생했다.

유럽과 미국의 최초 여성 천문학자라 할 수 있는 캐롤라인 허셜과 마리아 미첼은 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달의 표면에 이름을 새기게 된 사실이다. 반달이 보일 때 달의 북쪽 부근에 있는 작은 크레이터에 마리아 미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며 이곳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비의 바다 부근으로 가면 캐롤라인 허셜이라는 작은 크레이터가 있다.
 

달에 있는 마리아 미첼 크레이터와 캐롤라인 허셜 크레이터 위치.


이중성 : 맨눈으로 관찰하면 한 개의 별로 보이지만 천체망원경 같은 광학기기로 보면 두개 이상으로 보이는 별을 이중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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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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