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이 가능해서 우리가 고대 이집트에 간다면 지금의 지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이집트에서 천재나 선지자로 행세할 수 있을까? 지금의 과학지식을 이용해 수레, 풍차, 펌프 등 몇몇 부분에서 신통력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만만한 일만은 아니다. 특히 이집트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달력에 관한한 더욱 그러하다.
시리우스별을 보고 1년을 측정
첨단 과학 기기를 쓰지 않고 고대의 상황에서 달력을 만들어 보자. 가장 먼저 우리는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아차리게 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부정확하지만 대체적인 자연의 주기성을 알게 된다.
달력은 이러한 자연이 변화하는 정확한 주기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하루의 길이, 한달의 길이, 1년의 길이 등을 정확히 알아야 몇백년이고 틀리지 않는 달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주기를 측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체현상은 매우 뚜렸한 규칙성을 갖고 있어 이를 관측해 정확한 주기들을 구할 수 있다. 우선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시리우스가 해뜨기 직전에 보이는 때를 표시해 두었다가 계속 관측해서 똑같은 시간에 시리우스가 보이는 날이 있으면 그날이 일년째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측정하려면 먼저 시계가 있어야 하고, 시리우스가 떠오르는 때부터 태양이 뜨는 때까지 정확한 시간 간격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대에 제작된 물시계나 모래시계는 대충의 시간을 잴 수 있겠지만 정확한 측정은 불가능하다.
막대기 하나로 동서남북 알아내
이러한 관측은 시기를 대략 아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정확한 일년의 길이를 알아내고 달력을 만드는데는 아무래도 부정확하다. 고대인들이 쓸 수 있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막대기(노몬 gnomon)를 이용해 해그림자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평평한 면 위에 노몬을 꽂고 해그림자 길이를 측정하면, 하루의 길이를 잴 수 있고, 동서남북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해그림자 주위에 적당한 크기의 원을 긋고, 오전과 오후 해그림자가 원에 일치하는 두 곳을 정한다. 이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이 방향이 정동, 정서 방향이다.
여기에 중학교에서 배운 선분을 수직이등분하는 작도법을 쓰면 정남, 정북 방향도 얻을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네 모서리가 정확히 동서남북방향에 일치한다고 하는데, 고대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정확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정남의 방향이 정해지면, 다음날부터 계속 해그림자를 관측해 남중하는 때의 해그림자를 날마다 측정하고 표시한다. 하루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은, 첫날 태양이 정남의 방향에 오는 때로부터 다음날 다시 정남에 오는 때까지의 시간을 재면 된다.
일년의 길이를 정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해그림자 길이의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 태양의 고도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날마다 남중 때의 해그림자 길이가 변한다. 태양의 그림자가 가장 짧은 때가 하지, 가장 긴 때가 동지다.
이론적으로는 해그림자가 가장 짧은 두 날을 알아내면 이 사이의 시간간격이 일년이다. 그러나 일기불순 등으로 날마다 해그림자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일년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수년을 두고 계속 관측해서 보완해야 한다.
황도 계산에 수십년 걸려
여기에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하지점의 태양의 위치가 하지날 정오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태양은 지구의 공전에 의해 황도상을 이동해가는데 황도상의 최고점이 하지점이다.
그런데 이점은 지구 시간으로 정확히 정오가 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정확한 하지점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관측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완전한 태양의 궤도(황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해그림자의 측정오차 또한 정확한 일년의 길이를 정하는데 피할 수 없는 방해요소다. 지면이 조금만 왜곡돼 있거나, 기울어 있으면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측정면을 완전한 수평이 되게 하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측정면에 물을 채우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수평(水平)을 맞추는 것이다. 해그림자 측정용 자를 물에 띄워 정확한 수명면을 만들고 여기에서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한다.
번지는 해그림자
또다른 방해요소는 태양이 한 점이 아니라 크기를 지닌 천체라는 점이다. 노몬의 그림자는 자세히 보면 그 끝의 윤곽이 정확히 나타나지 않고 부옇게 번져 있다. 이는 태양의 윗부분이 만드는 그림자와 가운데 부분, 아랫부분이 만드는 그림자가 서로 겹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선명한 그림자를 얻는 방법이 여러모로 고안됐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크기가 50여m나 되는 큰 노몬을 만들어 측정하고, 노몬의 끝에 세로 보를 두어 정확도를 높이려 했다. 혹은 바늘구멍으로 태양을 통과시켜 태양의 윤곽을 정확히 측정해 정확도를 높이기도 했다.
해그림자 측정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아래에서 노몬의 끝과 태양을 일직선으로 관측해 정확한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해 내는 것이다.
하루의 길이와 1년의 길이가 정해지면, 이를 기준으로 시간 간격을 나누어 달력을 만든다. 하루를 24등분한 것이 1시간이다. 하루 24등분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
고대인은 밤과 낮을 각각 12등분했는데, 이것이 로마를 거쳐 전유럽에 퍼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또 1시간을 60등분해 1분으로 하고, 1분을 다시 60등분해 1초로 한다. 이러한 시간간격은 모두 하루를 등간격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하루의 길이를 1달의 길이와 1년의 길이에 연장하면 문제가 생긴다. 1달과 1년의 길이는 정확히 하루 길이의 정수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법의 문제는 바로 등간격의 시간을 정수배로 떨어지지 않는 시간간격에 맞추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윤일, 윤월, 윤년 등이 모두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일년의 길이를 재는 다양한 방법
동쪽 지평선에서 매일 해가 떠오르는 위치를 살펴보면 그 위치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남쪽 방향을 기준으로 하면 해가뜨는 위치는 매일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간다. 일정 기간이 흐르면 가장 북쪽까지 갔다가 다시 서서히 남쪽으로 그 위치가 변한다. 태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관측하면 가장 남쪽에서 출발해 다시 가장 남쪽의 위치에 올때까지의 기간이 1년이 된다.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가 가장 남쪽에 있는 때가 동지이고, 정동쪽 방향인 경우가 춘분 또는 추분이고, 가장 북쪽에 위치한 때가 하지다. 기원전 2500년경 영국의 고대인들이 건설한 스톤헨지 유적은 이 원리를 이용한 구조물이다. 이 거석 구조물의 중심에서 해 뜨는 위치를 관측해 계절 변화를 알아내고 또한 달의 위상 변화와 연결해 달력을 만들었다. 고대인들은 스톤핸지에서의 관측을 통해 일식과 월식의 날짜도 예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