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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시대의 주역 TV인가 PC인가

멀티미디어 시대를 움직일 기술은 '전통'의 TV인가, '무서운 신예' PC인가. 전 인류의 생활양상을 바꾸어놓을 멀티미디어의 왕좌를 놓고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을 자부하는 양자가 벌이는 경쟁은 치열하기만 하다.

'텔레비전 컴퓨터 비행기 원자력 반도체 레이저 플라스틱 로봇 인공위성 액정…'

20세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열 가지를 고른다면 아마 이러한 기술들이 포함될 것이다. 이들 기술의 발전은 금세기 뿐아니라 다음 세기에도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데 20세기를 5년 남겨놓은 지금, 미래 정보사회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는 두가지 기술이 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PC)가 그것이다.

'3m와 30㎝의 싸움.'

멀티미디어시대의 주역을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대결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TV를 3m쯤 떨어진 거리에서 시청한다. 거실 소파에 앉거나 안방에 누워서 편안한 자세로 리모콘으로 TV를 조종한다. TV를 보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거나 식사를 하기도 한다. TV 시청이란 대개 이런 식이다.

컴퓨터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렇게 느슨한 자세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무실이 아닌 가정에서도 PC를 사용하려면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켜고 의자를 바짝 당겨 모니터 화면과 눈의 거리는 30㎝를 유지한다.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PC를 혼자서 작동하며(PC라는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컴퓨터작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3m와 30㎝의 싸움'이란 이러한 TV와 PC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이같은 생활 패턴은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PC같은 TV, TV같은 PC

예전에는 구태여 TV와 PC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TV는 가전산업을, PC는 컴퓨터산업을 각각 대표하는 전자제품으로 소비자가 따로 존재했다. 컴퓨터를 잘 아는 매니어들이 주로 구입하는 PC와 손가락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TV의 소비자는 부류가 달랐다.

업체들도 우리나라는 삼성 금성 대우 등 대기업들이 컴퓨터와 가전산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엄연히 영역이 구분돼 있다. IBM과 애플은 컴퓨터업체를, 소니와 필립스는 가전업체를 각각 대표해 왔다.

하지만 멀티미디어의 열풍은 이러한 산업간의 벽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가전업체가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고, 컴퓨터업체들은 가전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직장에서 사용되는 사무용기기로 인식되던 PC가 가정용 전자제품으로 변신, '홈PC'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PC는 국내시장에서 최대의 가전제품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PC 판매액은 2조2천억원으로 2위인 컬러TV의 8천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매출액을 기록했다. 반도체와 가전제품의 위세를 업은 삼성전자가 컴퓨터전문업체 삼보컴퓨터를 누르고 PC업계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컴퓨터업체들이 올봄에 대거 출시한 홈PC들을 보면 얼핏 보기에 컴퓨터라기 보다 가전제품에 더 가깝다. 모니터와 본체에 붙어있는 일체형 제품이 있는가 하면 기능스위치들이 전면에 나와 있어 사용자들이 리모콘으로 조작하도록 돼 있다.

빨간색이나 검은색 같은 '튀는' 색상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거실에 설치해도 다른 가구와 어울리게 외양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등 패션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과연 멀티미디어시대의 주역은 누구인가. 컴퓨터업체들은 PC를, 가전업체들은 TV를 각각 대표선수로 뽑았다. 컴퓨터업체들은 "PC에 모든 가전제품의 기능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가전업체들은 "TV가 PC처럼 똑똑해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선택은 소비자에게 넘겨졌다. 그러나 양측 모두 전력이 만만찮아 승부가 나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두 선수의 약점은 무엇일까. TV는 일방향성이고 '두뇌'가 없다는 점이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전파를 받아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방영할 뿐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TV수상기나 방송국에 의사를 표현하는 길은 막혀 있다. 또 정해진 프로를 보는 것 외에 시청자가 TV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연구가 진행중인 차세대 TV HDTV^PC진영으로부터


'나의 강점은 상대방의 약점'

PC의 약점은 비디오에 있다. TV영상을 PC에 담으려면 현재의 CPU(중앙처리장치)나 기억장치로는 역부족이다. 통신으로 비디오 영상을 주고받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현재 아날로그방식으로 주고받는 TV 영상을 PC에서 쓰는 디지털방식으로 바꾸면 데이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1초의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려면 적어도 30개의 정지화면이 필요하다. 정지화면 1개의 데이터량이 0.9MB이므로 1초의 동화상을 저장하려면 27MB가 소요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을 담는다는 CD롬에 불과 22초 분량의 동화상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영상압축기술, 비디오CD에 활용되는 영상압축카드(MPEG 1)는 데이터를 1백50-2백배 압축해 CD 1장에 70분 분량의 영화내용을 담을 수 있다. 2시간짜리 영화라면 CD 2장이 필요하므로 영화를 보는 중간에 CD를 갈아 끼우는 불편이 따른다. 아직 화질도 비디오테이프보다 나은 편이 아니다 요컨대 PC에서 처리되는 영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PC조작이 어려운 것도 단점이다. 아무리 컴퓨터 배우기가 쉽게 되더라도 리모콘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TV를 따라잡기란 어려울 것이다.

양측은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이러한 약점들을 해소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V쪽에서는 쌍방향 TV에 대한 실험이 한창이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프로그램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선택해서 본다는 것. 미국에서는 오라클 실리콘그래픽스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컴퓨터회사와 MCI 벨어틀랜틱 AT&T 등 통신회사, CATV업체 등이 여러개의 컨소시엄을 구축, 쌍방향 TV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통신이 지난해말부터 서울반포전화국가입자 1백가구를 대상으로 쌍방향TV의 일종인 주문형비디오(VOD) 시험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가입자는 전화선을 통해 뉴스 영화 오락 교육 문화 등 자신이 보고 싶은 다양한 프로를 선택해서 보고 그만큼 요금을 낸다.

한국통신은 오는 10월경 시험대상을 전국 6대도시 1천5백 가입자로 확대하고 내년말부터 상용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반면 PC쪽에서는 TV기능을 가진 카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요즘 판매되는 PC 내장카드들을 보면 단순히 TV를 시청할 뿐아니라 ▲TV 시청과 컴퓨터 동시작업 ▲여러개 TV채널 동시 시청 ▲TV로 잡은 영상 편집 등 컴퓨터의 '두뇌'를 활용한 다양한 기능을 엿볼 수 있다.

게임시장에서 한판 승부

PC와 TV의 싸움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첫번째 전쟁터는 게임산업. 컴퓨터로 즐기는 PC게임과 TV를 앞세운 비디오게임의 승부는 비디오게임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시작됐다. 닌텐도 세가 등 일본 게임업체들은 비디오게임기와 게임프로그램으로 세계시장을 석권, 전세계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PC보급의 증가와 CD롬 게임 및 머드게임(PC통신을 통해 온라인으로 여러명이 즐기는게임)의 등장으로 PC게임의 추격도 만만찮다. 아직은 목소리가 높지 않지만 "게임이야말로 멀티미디어의 주역"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게임의 용량이 커지고 게임 속에 영화처럼 현장감있는 영상을 집어넣을 필요성이 대두하자 게임업체들이 PC와 TV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 게임을 이용한 교육, 가상현실게임 등 게임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두번째 싸움은 컴팩트디스크(CD)의 활용문제. 80년대 중반 소니 필립스 등 가전업체들이 먼저 개발한 CD는 디스크(LP) 대신에 음악을 담는 음악용 CD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가전업체들은 TV에 연결해 쓸 수 있는 CD-I를, 컴퓨터업체들은 종이책 대신에 멀티미디어정보를 담는 CD롬을 각각 개발했다. 최근 CD롬 드라이브가 대중화되면서 CD-I는 CD롬의 물결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전업체들의 판정패.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 가전업체들을 중심으로 TV나 PC 양쪽에 연결해 쓸 수 있는 '비디오 CD'가 등장한 것. 자기테이프 방식 VCR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디오 CD는 현재의 소프트웨어(영화 또는 영상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비디오 CD 타이틀이 1백여종 출시돼 조만간 비디오대여점에 VCR 테이프와 나란히 비디오 CD 타이틀이 전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가전업체들의 예상과 달리 비디오 CD 플레이어는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 PC에 동영상압축카드(엠펙카드)를 장착해 PC화면으로 비디오 CD 타이틀을 감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PC업체들이 엠펙카드를 내장한 멀티미디어 PC를 불티나게 팔고 있는데 비해 가전용 비디오 CD 플레이어 'CD비전'을 내놓은 현대전자는 개점휴업상태다.

대반격 속에 당분간은 'PC 우위'

백화점이나 서점에 가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홈쇼핑'분야에서도 TV와 PC의 대결은 펼쳐진다.

PC통신 천리안을 이용하면 교보문고의 신간서적이나 신세계백화점의 각종 상품을 PC화면으로 보고 구입하는 홈쇼핑코너가 있다. 영화표나 항공기 티켓도 PC통신으로 예매한 후 대금은 신용카드로 지불한다.

그러나 PC통신 홈쇼핑은 몇년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이용이 부진하다. 소비자들은 PC통신에서 제공하는 문자 위주의 상품정보보다 직접 매장에 나가서 만져보거나 입어본 후에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CATV시대의 개막과 함께 하루종일 쇼핑정보만을 방영하는 홈쇼핑 전문채널도 등장한다. 오는 10월부터 방영될 홈쇼핑 CATV는 "문자 그림 사진 등으로 이루어진 PC통신에 비해 움직이는 영상과 소리로 소비자들에게 훨씬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므로 진짜 홈쇼핑 "이라고 선전한다.

한 전문가는 "PC통신으로 쇼핑을 하려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CATV는 시청중에 직관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므로 훨씬 성장속도가 빠르다. 또 PC통신은 어느 정도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제한적" 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QVC와 홈쇼핑네트워크 양대 CATV 채널이 주도하는 홈쇼핑시장이 매년 30% 이상 성장해 아무래도 홈쇼핑쪽은 TV가 PC에 비해 우세하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구축돼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정보가 통신망에 흘러다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그때까지 최소한 10년은 걸릴 것이다.

TV와 PC의 대결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컴퓨터업체들은 "현재 TV의 다음 단계라 불리는 고선명TV(HDTV)를 컴퓨터쪽에서는 이미 현실화했다. HDTV의 해상도는 슈퍼 VGA 급인 현재의 PC 모니터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가전업체들은 "그렇다면 PC모니터를 30인치가 넘는 TV 대형화면 크기로 확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14인치 모니터로 영화나 비디오를 실감나게 즐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최근 PC모니터의 대형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겨우 14인치에서 15-17인치로 화면을 조금 확대하는 것 뿐이다. 17인치로만 키워도 60만원이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PC 이용자들은 손쉽게 화면 크기를 넓힐 수 없다.

이에 비해 TV 모니터의 대형화 추세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컬러TV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업체들은 대형화면과 선명한 화질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30인치는 보통이고 화면 비율을 전통적인 4:3에서 HDTV 수준인 16:9로 확장한 와이드 TV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평면화면 프로젝션TV 등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PC모니터의 한계는 액정기술이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일본에서 최근 선보인 55인치 대형 액정화면은 앞으로 TV나 PC의 모니터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 크기를 확대할수록 모니터의 길이가 뒤로 길쭉해지는 현상을 막고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액정을 쓰는 수밖에 없다. 벽걸이TV나 벽걸이PC의 출현을 점치는 것도 대형액정기술이 10년 이내에 대중화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10년 후면 PC와 TV의 개념구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PC에 TV적인 기능을 대폭 추가하고, TV에 쌍방향적인 특성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장하게 된다면 두가지 기술의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 HDTV의 실용화와 함께 이러한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의 반도체업체인 미국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사장은 "멀티미디어시대의 주역은 당연히 PC이며 TV는 PC에 눌려 언젠가 사라져갈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TV가 PC에 밀리는 이유로 "TV를 근거로 한 기술은 기업마다 제각각인데 비해 PC기술은 범세계적인 표준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OS)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계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시장의 80%를 장악한 인텔사장다운 자신감있는 표현이다. 최근 몇년간 PC쪽이 멀터미디어시장을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PC가 TV에 비해 우세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정한다.

그러나 PC보다 50년이나 역사가 오래되고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TV가 PC의 물결에 밀려 그대로 주저앉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전업체 방송국 통신업체들이 연합전선을 펴고 CATV 위성방송 HDTV 쌍방향TV 등을 통해 영역을 확대해가는 한편 새로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199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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