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뼈가 튀어나온 몽골족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투르크족, 퉁구스족, 만주족의 조상이 한 뿌리를 이루는 알타이족과 만난다. 언어가 우리와 비슷한 알타이족. 이들을 만나기 위해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4개국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 알타이산맥의 오지를 찾아가 보자.
옛날 우리 조상이 건너온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타이. 그래서인지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러시아에 속해 있는 알타이는 카자흐스탄, 몽골(몽고), 그리고 중국의 국경과 접해 있다.
러시아의 국경도시인 바루나울시에서 잘 익은 막걸리 빛깔을 띠고 흘러내리는 아크하라강을 거슬러올라가면 만년설에 뒤덮혀 있는 알타이산맥과 맞닥뜨리게 된다.
알타이산맥의 최고봉은 해발 4천5백6m에 이르는 벨루하. 그 깊은 골짜기 어딘가엔 수만년 전에 살다간 우리의 조상이 누워있을 것만 같다. 만년설을 헤치고 오르면 해발 2천3백m의 우코크고원이 펼쳐진다.
이처럼 높은 곳에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 활짝 펼쳐졌던 고대문명의 자취가 있다. 2천5백년 전 알타이 주인이던 파지리크인들은 이곳을 '하늘의 목초지'라며 신성시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남긴 무덤만해도 2백개가 넘는다.
1993년 이곳에서 발굴된 파지리크인의 냉동고분은 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땅속에 스며든 물이 알타이산맥의 모진 기후 때문에 얼어붙어서 수천년 동안 파지리크인의 시신과 유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특히 문신을 새긴 얼음공주(1995년 한국 방문)는 거의 완벽한 미라로 발견됐다.
그녀 옆에서는 9마리의 순장된 말과 여러 동물을 합쳐 하나로 만든 상상 속의 동물 장식이 많이 나왔다. 우리의 불사조와 흡사한 그리핀, 말의 몸에 염소의 뿔을 단 금박 장식품들은 2천5백년 전 사람들의 솜씨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귀고리의 생김새와 목관 위에 돌을 덮은 무덤의 구조는 우리 신라시대의 적석목곽분과 비슷하다. 깊은 알타이에는 정말로 우리의 잊혀진 고향이 잠자고 있는 것일까?
2천5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하늘 아래 목초지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수줍게 낯을 가리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백인계 러시아인과 구분되는 구리빛 얼굴 등으로부터 친근한 알타이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한 자급자족을 한다는 까미르모브 가족. 그러나 영양부족으로 아이들은 다리가 휘는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
할머니의 안내로 집안으로 들어가서 상석에 앉았다. 원래 알타이족의 집은 출입문에서 마주보이는 가운데가 상석이다. 그리고 왼쪽은 남자들, 오른쪽은 여자들의 자리로 정해져 있다. 갑자기 손길이 바빠지는 할머니, 집에 있는 컵이란 컵은 다 찾아보지만 마땅치 않다는 눈치다.
비록 없는 살림이라도 손님 대접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꼭 우리네를 닮았다. '부르삭'이라는 튀긴 빵과 생우유를 응고시켜 직접 만든 버터, 그리고 훈제 양고기가 이들의 주식이다.
알타이산맥의 흰 눈이 녹아내린 추아강을 따라 내려가는 산등성이마다 고대 알타이인의 숨결과 손길을 만난다. 우리에게 낯익은 그림, 곧 암각화의 물결이다. 고대인의 수렵생활, 그들이 주된 사냥감으로 삼았던 사슴의 모습이 칼박타쉬 언덕배기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런 암각화는 한반도의 울주에서도 발견된다. 알타이에서 한반도로 이어진 암각화는 고대문화의 전파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또한 한국과 러시아 고고학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숙제다.
시베리아의 오지 알타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0만년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그곳 사람들은 말을 타고 이 땅을 내달리는 기마민족이 됐고, 30만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들은 여전히 알타이의 주인으로 남아 있다. 물론 말과 함께.
알타이고지에 오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타이사슴을 만날 수 있다. 알타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녹용을 좋아한다. 물론 재빠른 한국의 녹용상인들의 발길이 벌써 이 깊은 오지까지 닿아 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몽골의 지배를 거친 곳이면 마을 입구에 서있는 리본을 매단 나무를 만나게 된다. 우리로 치면 일종의 서낭당이다. 이곳에서 역시 그러한 나무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멘드로사콘이라는 곳이다. 아직도 알타이 민족들이 부락을 이루고 사는 민속마을이다. 알타이족의 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집마다 따로 원추형 오두막집 한채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알타이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여름용 부엌이다. 영하40℃까지 내려가는 겨울에는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이들은 양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러시아의 세력권에 흡수도니지 4백여년. 그 세월과 함께 순수 혈통을 가진 알타이인의 수도 많이 줄었다. 러시아계와의 혼혈을 제외하면 순수 알타이인은 6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멘드로사콘에는 순수 알타이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가르키며 "당신드로가 비슷하게 생격죠"라며 말하자 머리를 갸우뚱한다. '까레(한국) 알아요?"라고 묻자 역시 모른다고 한다.
통나무로 된 박물관에 들어서자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얼마냐고 묻자 한국에선 얼마 하느냐고 되묻는다. 이곳 오지에서 입장료를 흥정하게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왠지 서글퍼졌다.
알타이에서는 쟁기를 소대신 말이 끈다. 말(馬)은 알타이어로도 '말'이라 발음한다. 우리 말이 우랄알타이어계에 속한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또 여러 문장을 비교해본 결과 어순이 우리 말(言)과 똑같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이들은 문자를 잃은지 오래다. 그래서 말은 알타이어로 하지만 글은 러시아 문자를 빌려쓰고 있다. 다만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멘드로사콘 주민들은 러시아어 대신 알타이어로만 대화를 나눈다. 나름대로 민족어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역사상 단 한번도 자신의 국가를 세워보지 못한 민족.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러가지로 가깝게 느껴지는 민족이 바로 알타이족이다. 그래서일까. 쇠락해버린 알타이족의 배웅하는 손짓이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