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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학의 초석을 마련한 보람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 소장 조경철

 

조경철 소장


1929년생. 천문학 박사, 미국NASA 최고연구원, 미국 알렉산드라이대 공대 교수, 미국 호와드대 교수, 연세대 자연과학연구소 소장, 한국천문학회 회장, 경희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미해군 천문대에서 천문학을 연구했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이 늙어버린 기분이다. 1955년까지 물리학(연세대)과 정치학(미국 더스칼럼대)을 공부한 후 본격적인 정치학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이학박사 제1호인 이원철박사(독수리자리 에타별, 일명 원철스타가 변광성임을 증명한 세계적인 천문학자)의 명령으로 천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시간대학으로 끌려간 것이 그만 새 인생의 출발이 됐다.

그때만해도 천문학은 미국에서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1957년 10월 4일 난데없이 옛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천문학은 일약 인기과목으로 각광을 받았다. 덕분에 천체의 궤도운동과 관련된 공부를 했던 필자도 많은 곳에서 취업 권유를 받았다.

미국 내 연구소와 대학에서 연구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1968년이었다. 당시 한국의 천문학이란 불모지였다. 한국에 천문학을 심겠다는 몇분들과 함께 서울대와 연세대에 천문학과를 개설하고, 국립천문대의 창립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과학기술처 내에 설치됐던 국립천문대 창립준비위원장직을 맡아 장관과 싸움깨나 했던 일은 이제 곰팡내가 나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1970년 연세대에서 연필 크기의 로켓을 만들어 발사시켰을 때 땅 위에서만 이리저리 굴러다닌 일, 이어 길이가 1m에 달하는 로켓을 만들어 발사했다가 대학총장 사무실 지붕 위에서 발견돼 대소동이 일어났던 일도 자랑스런 추억이 돼 버렸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다. 오늘날 1백여명의 천문학 박사가 배출되고,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천문우주과학 분야의 일선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또 우리 손으로 만든 인공위성도 하늘을 날고 있다. 7순(旬)을 바라보며, 이 나라의 천문우주과학 정립을 위해 작은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은 아직도 가느다란 촛불같이 마음 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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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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