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적 산물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프트웨어 보호입법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 시기가 언제이냐,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이냐, 또한 보호법이 국내 정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견하고 사전 대응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무역마찰의 현안
지난 봄 세계 최대의 컴퓨터회사인 IBM은 국내 컴퓨터 업계에 "IBM 퍼스널컴퓨터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 사용했다"는 자인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법적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최근 미행정부는 무역대표부에 한국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통상법301조를 들먹이며 지적소유권 보호가 미흡하면 무역금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저작권및 소프트웨어를 마구 훔치고 있다"는 표현을 서슴치않고 쓰면서 이제는 압력의 차원을 넘어서 보복위협에 이르고 있다.
통상법301조에 의해 무역보복 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국내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다. 소프트웨어나 저작권의 불공정행위 판정으로 엉뚱한 섬유 등 주종 수출업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수출경쟁력 약화로 휘청거리는 한국경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한국 정부는 저작권은 85년내에 임시조치법을 마련하여 무단복제및 번역을 금지하고 공업소유권(물질특허)에 관해서는 86년에 입법조치하고 89년부터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소프트웨어 보호법은 86년에 입법, 87년부터 시행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미국은 이에 만족치 않고 계속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미간 무역마찰의 핵심이 되고 있는 지적소유권은 물질특허를 중심으로한 공업소유권과 저작권, 그리고 새로이 대두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로 나뉠 수 있다(표1 참조). 그중에서도 컴퓨터를 움직이는 내용물인 소프트웨어는 그 시장규모로 보나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물결을 담당하는 핵심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보호법 제정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만약 물질특허 도입이 공식화한다면 연간 7~8백억원의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비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보호법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기업에 로얄티를 지불하고 수입하는 소프트웨어(시스템 프로그램 포함) 가격은 1천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소프트웨어 보호법이 제정될 경우, 우리가 추가분으로 지불해야 하는 액수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단순히 양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핵심산업인 소프트웨어산업이 선진국 독점자본의 영원한 기술종속산업으로 낙후하느냐, 아니면 기술이전에 의한 자생력을 바탕으로 정보선진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있기에, 소프트웨어 보호법 제정은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싱가폴, 대만 등에서 프로그램 복제논쟁을 불러일으킨바 있는 미국은 85년1월, '로덴버그'상원의원이 저작권법에 의한 소프트웨어 보호를 실시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미국내 권리를 거부 또는 제한할 수 있는 '국제 소프트웨어 보호법안'을 제출시켰고 4월에는 일본에 압력을 넣어 저작권법에 의한 소프트웨어 보호압력을 관철시켰다.
소프트웨어의 법적보호는 대외무역관계에 있어서만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권을 보호함으로써 상거래상의 질서를 확립함은 물론, 연구개발 의욕을 고취시켜 기술개발을 촉진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무단복제에 굴복한 개발의욕
"한팀이 2~3개월 걸려 프로그램 하나를 개발하고 복사방지 보호프로그램까지 몇달씩 걸려 완성시켜 시장에 내놓으면 2시간도 안되어 2~3천원짜리 복사품이 시중에 유통되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육성되겠읍니까" 소프트웨어맨의 항변이다. 실제로 청계천 컴퓨터 종합상가에서는 국내S전자의 50~60만원짜리 교육용 프로그램이 무단 복사되어 5~6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1백80불짜리 업무용 소프트웨어인 '비지캘크'를 한사람이 사서 싯가의 3분의 1인 5만원 꼴로 몇명에게 복사해주면, 그 다음에는 1~2만원 내지 공짜로 유통되기 시작한다. 전세계 '애플'기종이 갖고 있는 만여종의 프로그램 중 국내에 유통되는 프로그램은 4천여종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복사된 프로그램이다.
범용컴퓨터소프트웨어 시장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시스템 소프트웨어인 경우 기기도입시 로얄티가 지불되고 있고, 응용소프트웨어인 경우도 외국에서 도입된 패키지나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개발된 패키지는 어느 정도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수요가 너무 분명하고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학용이나 과학기술계산용 소프트웨어 패키지 도입시, 사용자 간의 교환으로 일부 무단복제가 이루어지나 이는 소프트웨어 보호와는 거리가 있다.
퍼스널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은 심각하다. 일부 대형업체의 경우 외국사와 합작이나 기술계약으로 로얄티를 지불하고 있을뿐 많은 중소기업체가 오퍼레이팅 시스템의 무단사용으로 컴퓨터를 조립생산하고 있다. 일부 대형업체에서도 내수시장인 경우, 범용패키지인 LOTUSⅠ,Ⅱ,Ⅲ 등을 대리점 차원에서 사용자에게 서비스로 복사 공급하고 있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퍼스널컴퓨터 응용소프트웨어는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무단복제의 범람이다.
이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의 개발의욕저하로 나타나고 외국 소프트웨어는 진출을 꺼리게되어 건전한 소프트웨어 유통구조 확립, 올바른 기술이전 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모자라는 전문인력에도 불구하고 각사는 자체개발에 의존하여(소요 소프트웨어중 59.8%를 자체개발로 충당: 한국 정보산업협회 소프트웨어 외주관리 실태조사 1985.2)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의 건전한 육성'이라는 대명제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보호법 미비로 인한 무단복제 사용이나 타업체의 소프트웨어 무단복제에 의한 염가공급은 소프트웨어 개발의욕을 저하시켰고 소비자에게 소프트웨어 가치인식에 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소프트웨어 시장형성에 악영향을 끼쳐왔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가치인식 재고와 아울러 소프트웨어 시장이 활성화 될 것은 분명하다.
영원한 기술종속?
이러한 국내외적 환경이 보호법 제정의 분위기를 성숙시키고 있으나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현실은 아직 유치단계에 머무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수준은 개량이식단계라 할 수 있다. 장차에는 컴퓨터의 이용및 보급증대로 소프트웨어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추측되나, 현재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일본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역사가 일본, 미국은 15~20년의 실적과 경험을 쌓아온 오늘이지만 우리나라는 경우 3년정도(소프트웨어업체중 61.4%가 83년 이후 설립)에 불과하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를 장애물 경기에 출전시킨다면 그 모습은 어떻겠는가.
일천한 역사에 기인하여 기술개발 형태 역시, 최근 오퍼레이팅 시스템 계통의 연구를 중심으로 일부 기술개발 활동이 진행중이나 원천기술의 미비로 아직 개량이식이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CP/M이나 UNIX, MS-DOS에 한글을 포팅하는 기술은 어느정도 정착되어 있으나, 한국어 자체로 운영되는 한국형 컴퓨터의 개발은 아직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산업현실을 감안하여 소프트웨어 보호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개발 초기단계에서는 모방위주의 발전방식을 채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시기에 소프트웨어를 보호하게 된다면 막대한 로얄티를 외국에 지불해야 할뿐만 아니라 선진국 의존도만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앙대 전산학과 이 경환 교수는 "국내 조건만 보면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 외국의 선진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를 살펴 보면 쉽게 결론지을 수 없읍니다"고 말한다. 현재 기술수준에서 보호법이 제정되어 외국의 소프트웨어가 락(Lock)되면 영원한 기술 종속국으로 위치를 벗어나기 힘들것임을 조심스럽게 예견한다.
인간의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양식이다. 인간은 양식을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컴퓨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것이 프로그램이라면 그 프로그램을 통제하는 것은 시스템 프로그램이다. 컴퓨터는 시스템 프로그램 없이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가 움직일 수 없다. 지금 현재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우리에게 소프트웨어 보호법을 제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는 프로그램 차원에서 만족하고 항상 그들의 통제에서 움직이라는 요구와 같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조합에서는 85년 7월부터 86년 6월까지 학계, 경제계, 법조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법적조치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업계와 개별접촉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시기에 법적조치를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85년 12월에는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보호방법과 시기를 검토하고 보호에 따른 국내사전대응태세 그리고 향후 국내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이 광범위하게 검토됐다.
독자적으로 선택할 과제
85년 정보산업협회가 경제계, 학계, 관계인사 3백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소프트웨어 보호제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며(84.1%),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겠으나(35.2%), 다른 국가의 동향을 관찰해가며 하는 것이 좋겠다고(40.0%) 보는 한편 법률형태는 저작권법 제정을 기대하고(45.5%), 단계적 실시를 희망(89.7%)하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산물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보호하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 이것이 정보화사회의 올바른 모습이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물어봐도 소프트웨어 보호법 제정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이 문제일뿐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제대로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고 외국 범용 소프트웨어를 복사해서 사용한다면 그 프로그램은 완벽한 기능을 발휘하질 못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올바른 선진기술의 이입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제대로 배우려면, 당장의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하루빨리 법적보호를 서둘러야 할것입니다"
"퍼스컴 시장에서 로얄티 지불은 가격상승을 불러일으키고, 이제까지 OS의 무단 사용과 소프트웨어 염가공급에 힘입어 성장해온 중소업체의 경쟁력은 대폭 약화됩니다. 소형업체가 운영위기를 맞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부 대기업은 외국업체와의 합작이나 판매계약으로 일시적인 호황을 누릴지 모르나, 전체적인 소프트웨어 값 상승으로 인한 컴퓨터시장의 위축으로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기를 상당기간 뒤로 미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육성되려면 상품의 품질에 따라 올바른 가격을 받는 유통구조의 확립이 필수불가결합니다. 개발의욕이 생기지 않는 분위기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보호법 제정후 과도기적으로 생기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하루빨리 소프트웨어 보호법을 제정, 창의력 보호, 동기부여, 권익보장을 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보호법이 제정되면 많은 외국 소프트웨어 업체가 국내에 진출할 것입니다. 국내업체는 기술개발 능력의 부족으로 경쟁은 어려울 것이며 이 분야는 싹을 내지 못한채 대외의존만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법제정을 해야한다는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주위여건과 준비상황을 반드시 고려한 후 단계적인 실시를 찬성합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무성하다. 그만큼 소프트웨어 보호법 제정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해외동향을 살펴보면 미국도 82년에 가서야 입법조치를 취했고, 우리 시장의 20배나 되는 규모를 가진 일본도 86년에 가서야 입법조치할 예정이다. 하물며 이제 막 시작한 우리나라가 남이 서두른다고 덩달아 춤을 추어서 될것인가.
소프트웨어의 법적보호 제도를 어떤 형태로 마련하느냐, 언제 실시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은 사업자와 수요자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국익과 국민경제의 성장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데서 찾아야 한다.
사전 준비없이 경제적 불평등 관계의 강압으로 인한 지적소유권 보호는 국내의 소프트웨어 시장의 활성화를 이루기도 전에 그 싹이 뭉그러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