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인 능력과 부단한 노력으로 수심 1백m의 깊은 바닷속에 자유로 드나드는 아가미 인간들이 있다. 8분 이상 숨을 참고 돌고래와 경쟁하는 인간수중능력의 한계는 어디인가.
지구 표면에서 바다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1%이며 평균수심은 약 3천6백m 정도다. 하지만 깊은 바다도 지구의 지름(1만3천2백50km)에 비하면 아주 얇은 필름 두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크기를 농구공 정도로 축소시켰을 때 바다는 젖은 수건으로 표면을 닦은 후에 표면에 남은 물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바다의 81%는 수심이 1천8백m미터보다 얕은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느 정도 자유로이 들락거릴 수 있는 바다의 깊이는 겨우 수심 90m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중에 다다르는 인간의 한계는 8천m 이상을 오르는 고산에서의 한계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다.
물 속 포유동물에 주목
인간은 왜 수중에서 이렇게 약할까? 수중에서의 인간의 능력을 알아 보기 전에 인간과 같은 포유동물이면서도 물에서 살고 있는 수중 포유 동물들(고래, 돌고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등)의 능력에 대해 살펴보자. 아가미로 호흡하는 물고기와 달리 수중 포유동물들은 허파호흡을 해야 한다. 때문에 이들이 물 속에 들어 갈 때는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숨을 참은 채 잠수를 해야 한다.
이제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깊이 잠수하는 수중 포유동물은 아마도 향유고래일 것이다. 수심 1천1백31m에 있는 수중 케이블에 걸려 죽어있는 향유고래가 발견된 적이 있다. 향유고래는 아마도 이보다 더 깊이 잠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통상 웨델바다표범은 수심 약 6백m까지 한시간 이상 잠수할 수 있다. 돌고래는 보통 1백50m까지 잠수를 하지만 최대 4백50m까지 잠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수중 포유동물들은 물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수중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덕택에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됐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육상에서 보내는 인간이 물 속에 들어간다면 문제는 사뭇 다르다.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깊이 잠수할 수 있을까? 문제는 무엇보다도 물 속에 들어갈 때 달라지는 환경에 인간의 몸이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물 속에서는 맥박 느려져
인간이 숨을 참고 물 속에 들어가더라도 몸에서는 혈액 속의 산소가 필요한 조직으로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수중에서는 호흡으로 인한 산소의 공급이 중단되므로 혈액 내의 이산화탄소(CO₂)농도가 증가해 뇌는 호흡조절기작을 통해 횡경막을 자극하게 된다. 이때 인간은 호흡에 대한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충동은 처음에는 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서 결국은 물 위로 올라 와서 숨을 쉬도록 만든다.
숨을 참고 잠수할 때 인체에 나타나는 또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서맥(맥박이 느려지는 것)현상이다. 이것은 고래나 바다 표범, 혹은 돌고래 같은 수중 포유동물에서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서맥현상을 포유동물의 잠수반응(mammalian diving reflex)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중 포유동물들은 서맥현상으로 혈액순환이 줄어 산소소모량도 줄일 수 있으나, 인간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기작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서맥현상은 찬물이 얼굴에 닿는 순간 발생한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 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서맥현상이 진행될 때 인체는 몸의 각 기관 중 중요한 장기인 뇌나 심장으로만 혈액 공급을 집중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10℃ 정도의 찬물에 빠진 어린이를 20분 이상 지난 다음에 구조해 살려낸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수경, 오리발, 그리고 스노클(숨을 쉴 수 있는 대롱)을 가지고 숨을 참고 잠수를 하는 스포츠를 스킨 다이빙(skin diving) 혹은 프리 다이빙(free diving)이라고 한다. 훈련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경우 숨을 참고 잠수를 할 수 있는 깊이가 약 3m 정도 밖에 안된다. 약간의 잠수 훈련을 받은 사람은 5m 정도까지 잠수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훈련을 받았더라도 물 속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분을 넘기지 못한다. 훈련이 잘 된 다이버라면 10m 정도의 수심을 거뜬하게 잠수할 수 있고 1분 이상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직업적인 해녀들의 경우 최대 20m까지 잠수해 2-3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직접 목격한 사이판 섬의 잠수 가이드는 27m 수심까지 스킨 다이빙으로 간단히 내려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이들은 폐활량이 선천적으로 큰 사람이거나 오랜 기간 동안 잠수를 해 후천적으로 잠수 능력이 늘어난 사람들이다.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자주 스킨다이빙을 즐기다 보면 잠수 능력이 어느정도 증가된다.
무호흡 잠수기록 1백30m
몇해 전 ‘그랑 블루’라는 영화가 국내에 상영된 적이 있다. 무호흡 잠수로 누가 깊이 도달하는가를 경쟁하는 줄거리. 이 때는 해녀들처럼 수영을 해 잠수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달린 하강장치를 사용해 빠른 속도로 잠수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출신의 쟈크 마욜은 실존 인물인데, 그는 수심 1백5m까지 도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최고 기록은 1996년 쿠바 태생의 피핀이 세운 1백30m다. 이 때 소요된 시간은 2분18초였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50-60m 이하로 잠수할 경우 흉곽이 찌그러들여서 살아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피핀이나 마욜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론적인 한계를 간단히 뛰어 넘은 불가사의한 위업을 이룩했다.
피핀은 올해 5월 더 깊은 수중 1백52.3m까지 내려가 수중 포유류들을 무안케 했다. 그러나 이번 잠수는 수심 75m 지점에서 공기를 한 번 흡입한 기록이다.
피핀은 잠수에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정상인(3-4L)보다 훨씬 큰 폐활량(8.2L)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복식 호흡과 요가 등으로 맥박을 1분에 18회까지 떨어뜨릴 수 있으며, 육상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9-10분 동안이나 숨을 쉬지 않고 견딜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이러한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후천적인 노력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 조건이 결합돼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특수장비로 300m 심해잠수 가능
순수한 신체능력 외에 인공적인 스쿠버(SCUBA-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paratus) 장비를 사용하면 잠수 기록을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도 생각만큼 기록갱신에 도움이 안된다. 잠수사들이 공기(산소가 아님)를 압축해 담은 탱크를 메고 잠수를 하므로, 일반인들은 맨몸으로 잠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잠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압축공기를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과도하게 축적되는 질소(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79%의 질소와 21%의 산소로 구성)때문에 감압병의 위험이 있어 피핀처럼 깊이 잠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이 즐기는 스쿠버 다이빙에서는 안전을 위해 수심 40m를 절대적인 한계로 하고, 수심 30m를 권장하는 한계 수심으로 정해 놓았다. 특수한 교육을 받은 후에야 그 정도의 수심까지 잠수를 하도록 허락한다. 물론 해저 3백m까지 내려가 작업하는 직업적인 심해 잠수사들도 있다. 이 경우는 특수한 장비와 수면 위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설치해야 하는데,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약 20일 이상이 걸리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잠수사들은 감압실에서 헬륨을 섞은 공기로 숨을 쉬면서 장시간 높은 압력에서 생활하며 높은 수압에 적응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만든다. 또 심해 잠수작업을 마치면 다시 대기압에 적응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수면 위로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