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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르' 소리로 한여름 도시 점령한 말매미

플라타너스 수액 즐기는 고주파 제조기

동림청선(東林聽蟬)

자줏빛 놀 붉은 이슬 맑은 새벽 하늘에 紫霞紅露曙光天
적막한 숲 속에서 첫 매미 소리 들리니 萬寂林中第一蟬
괴로운 지경 다 지나라 이 세계가 아니요 苦境都過非世界
둔한 마음 맑게 초탈해 바로 신선이로세 鈍根淸脫卽神仙
묘한 곡조 높이 날려라 허공을 능가하는 듯 高飄妙唱凌虛步
다시 애사를 잡아라 바다에 둥둥 뜬 배인 듯 旋搦哀絲汎壑船
석양에 이르러선 그 소리 더욱 듣기 좋아 聽到夕陽聲更好
와상 옮겨 늙은 홰나무 근처로 가고자 하네 移床欲近老槐邊



조선 정조 시대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더위를 잘 탔던 걸까. 그는 한여름에 소서팔사(消暑八事)란 한시를 지어 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는 8가지 방법을 추천했다. 그 중 한 가지가 ‘동림청선’이다.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더위를 잊는 것이다. 정약용 선생에겐 매미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나 보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에게 시원한 여름을 선물했던 매미 소리가 언제부턴가 소음으로 전락했다. 매미 소리가 변한 걸까 아니면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변한 걸까.
 

매미소리는 한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최근 매미소리가 도시의 소음문제로 대두됐다


참매미 사라진 자리, 말매미가 점령해

매미는 수컷만 소리를 낼 수 있다. 수컷 매미가 우는 이유는 짝짓기 할 암컷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매미는 암컷이 혼동하지 않도록 저마다 개성 있는 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매미는 전 세계적으로 2000 종이 넘는다. 매미분류전문가인 전 한뫼생태연구소 이영준 소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15종이 기록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미가 ‘맴맴맴’ 소리를 내며 운다고 알고 있다. 예전엔 참매미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참매미의 서식지가 줄고 말매미의 서식지가 많이 늘었다. 그 결과 주로 ‘차르르’하는 말매미 소리가 들린다. 특히 말매미는 주로 도시에서 살고,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말매미도 경쟁적으로 따라서 울기 때문에 더욱 시끄럽게 느겨진다.

말매미는 우리나라에 있는 15종의 매미 중 몸집이 크고 개체수도 가장 많아 ‘매미계의 무법자’로 불린다. 특히 말매미는 남방계 곤충이라서 더운 날씨를 좋아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말매미 서식지가 북상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말매미가 늘어난 이유는 매미의 생활사에서 찾을 수 있다. 매미는 한 번에 20~30개의 알을 나뭇가지에 낳는다. 부화한 유충은 나무 뿌리로 내려가 추운 겨울을 지낸다.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것보단 땅 속에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유충은 주둥이를 뿌리에 꽂고 수액을 빨아먹으며 4~6년 동안 땅 속에서만 산다.

1960년대 개발 붐이 일었을 때 한적하던 시골길은 물론 도시까지 나무가 뽑히고 그 자리에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찼다. 이때 나무뿌리에 기생하던 매미 유충이 많이 죽어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매미가 사라졌다.

그 뒤 1980~1990년대 들어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에 녹화사업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인기가 높았다. 이때 말매미가 ‘르네상스’를 맞았다. 말매미는 활엽수의 수액을 좋아한다. 특히 말매미는 플라타너스의 수액을 좋아한다. 1970년대 급속히 개발된 서울의 강남지역은 말매미 천국이 됐다. 말매미에게 신도시는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신대륙’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한 여름만 되면 강남지역 구청 홈페이지는 아파트 단지 정원에서 울어대는 말매미들을 박멸해 달라는 민원으로 아우성이다.
 

매미가 소리 내는 법


1. 말매미는 배쪽에 있는 발음근을 수축·이완하면서 진동막을 흔든다.
2. 진동막에서 발생한 진동은 매미의 배에서 공명현상을 일으켜 증폭된다.
3. 매미는 배를 들어올려 소리를 더 멀리 보낸다.

 


리듬 없는 고주파 들으면 고통스러워

특정 소리가 좋으냐 나쁘냐는 주관적인 판단이다. 듣기 싫으면 그저 소음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헤비메탈 음악을 듣기 위해 콘서트장에 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음이라고 한다. 필자는 2007년 5월 한국음향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녀 고등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매미소리의 크기에 따른 심리변화를 검사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매미소리가 63~67dB(데시벨, 소리의 크기 나타내는 단위)로 커지자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소음은 3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소리의 크기가 클수록 소음이 된다. 소리의 크기와 불쾌감은 비례한다.

둘째, 리듬이 없으면 소음이 된다. 새벽에 TV를 켜면 화면에 흰 점과 검은 점들이 반짝반짝하면서 ‘치이이’소리가 난다. 이를 백색소음이라고 하는데, 소리의 크기나 진동수가 변하지 않고 의미 없는 소리가 지속된다. 백색소음을 오랫동안 들으면 지루해지거나 짜증이 밀려온다.

셋째, 저음보단 고음이 심한 소음으로 느껴진다. 소리가 나는 이유는 물체가 진동하고 그 에너지가 공기를 타고 사람의 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1초 동안 물체가 진동하는 횟수가 진동수로 헤르쯔(Hz)로 표시한다. 진동수가 낮으면 저음이고 진동수가 높으면 고음이다. 사람이 가장 민감한 진동수 대역은 3000~4000Hz 정도다.

매미의 소리가 큰 이유는 뭘까. 매미는 몸통 중간 안쪽에 있는 발음근이 옆구리 양쪽에 있는 진동막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 이때 비어있는 배 안쪽에서 공명이 일어나 소리가 80dB(1m 거리에서 측정했을 때) 정도까지 증폭된다. 대화가 어려운 번잡한 시내 도로변 수준의 소음이다. 공명현상을 이용하지 않는 메뚜기나 귀뚜라미 소리가 66dB정도인 데 비하면 소리가 꽤 큰 편이다.

게다가 말매미는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경쟁적으로 다른 매미들도 따라서 운다. 말매미가 5~6마리 정도 앉아있는 나무 밑에서 소리의 크기를 측정하면 90dB로 커진다. 말매미가 몇 마리 붙어있는 나무 그늘은 쉼터가 아니라 ‘고문장’인 셈이다.

말매미 한 마리는 약 20초 동안 소리를 낸다. 이 때 리듬이 없는 소리를 약 17초 동안 유지한다. 처음 약 2초간은 소리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상승부). 이때는 말매미 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꽁무니(꽁지)를 최대한 올리면 약 17초 동안 동작을 유지하면서 소리의 크기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와 함께 진동수대역도 유지된다(유지부). 소리를 멈추려면 1초 만에 꽁무니(꽁지)를 내리고 동시에 소리의 크기도 줄어든다(감쇠부). 상승부와 감쇠부를 합친 3초가량을 제외하면 소리의 크기와 진동수가 일정한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일정한 소리에 지루함과 불쾌감을 갖기 쉽다.

또한 매미 울음소리는 고주파다. 말매미 소리는 아주 낮은 진동수에서부터 17kHz까지 분포가 다양한데, 사람이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하는 3000~9000Hz 영역의 고주파가 특히 많다.

한여름을 알리던 신호탄 ‘매미 소리’가 소음으로 바뀐 데는 생태계 변화라는 사실이 숨어있다. 앞으로 지구 온도가 더 높아지면 말매미의 서식지가 북상하고, 도심 속 말매미의 개체수도 많아질 전망이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는 매미 소리를 즐기는 방법을 한 가지 추천한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매미는 매미마다 소리가 다르고 소리를 내는 중간에도 변화가 있다. 이 변화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참매미는 말매미의 개체수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그 수가 줄었다. 전형적인 매미 소리인 ‘맴맴맴’은 참매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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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기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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