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대권을 향한 손짓 그리고 얼굴표정

케네디가 닉슨을 물리친 이유

오는 12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대표를 뽑는 국가 행사다. 열마디 말보다 더 큰 효과를 주는 한번의 멋진 제스쳐를 보이기 위해 대선 후보들의 노력이 치열하다. 정치인은 어떤 제스처럴 잘 사용할까. 그리고 제스처의 한계는 무엇일까.

1960년 미국에서는 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자웅을 겨뤘던 상대는 젊은 민주당 상원의원 케네디(43)와 부통령인 공화당의 닉슨(47). TV 토론 직전까지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은 닉슨이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두 후보의 토론을 듣던 미국 국민은 닉슨의 논리적인 말솜씨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TV 토론 이후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화면에 비친 닉슨은 토론 얼마 전 2주간 병원에 다닌 탓에 조금 초췌해 보였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부통령으로서의 여유로움을 보이지 못하고 케네디의 말꼬리를 잡는데 급급했다. 더욱이 케네디의 질문을 받으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반면 케네디는 젊고 패기찬 모습이었다. 닉슨이 질문을 던졌을 때 “당연한 질문이다”라고 여유롭게 말하며, 닉슨 개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미국 국민 전체를 상대로 비전을 제시하는 인상을 깊게 심어줬다.

손짓으로 3천가지 이상 표현

TV 토론이 끝나고 케네디는 처음으로 기선을 잡기 시작했다. 선거는 케네디의 승리로 끝났다. 라디오 토론에서 우세하던 닉슨이 TV 토론에서 점수를 잃은 이유는 무엇일까. 케네디는 독특한 손짓과 얼굴표정을 바탕으로 유연한 제스처를 구사함으로써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눈으로’ 확연히 보여줬다. 반면 닉슨의 경우 논리 전개 면에서 케네디보다 뛰어났을지 몰라도 국민의 눈에 비친 제스처는 ‘대통령감‘으로 보이기에 다소 부족한 것이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이 ‘고전적’인 얘기는 최근 우리나라 정계에서 심심치 않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유세장이 야외에서 가정, 즉 TV 화면으로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후보들에게는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식견 못지 않게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남에게 자신의 인상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 구사하는 대표적인 제스처는 손짓과 얼굴표정이다. 손짓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사람이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제스처는 3천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세련된’ 정치인들은 이 중 몇가지 전형적인 손동작을 몸에 익혀 자신의 발언에 절묘하게 박자를 맞춰가며 상대를 설득한다. 손짓은 특히 어떤 대목을 강조하려 할 때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강력한 논지를 펼칠 때 두주먹을 불끈 쥔다든지, 세세한 요점을 강조하려 할 때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매우 조심스러운 물건을 집어내기라도 하는 듯 한곳에 모은다. 강하게 보이고는 싶지만, 너무 폭력적인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경우 주먹을 반쯤 움켜쥐는 온화한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둥그렇게 구부리는 동작은 상징적인 포용을 나타낸다. 마치 청중 하나하나를 가슴에 품어안는 모습이다.

손이 제스처를 취할 때 얼굴표정도 달라진다(그림). 해부학적으로 볼 때 사람은 동물 중에서 가장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한승호교수(가톨릭의대·해부학)는 “얼굴에는 모두 44개의 근육이 있는데, 이 중 음식 씹는 동작을 도와주는 근육은 4개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40개의 근육은 무엇을 할까. 바로 표정을 나타내는데 필요하다.

인체에서 대부분의 근육은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해 골격의 운동을 조절한다. 운동의 형태는 단순하다. 굽히거나 펴는 동작뿐이다. 그러나 얼굴근육은 다르다. 40개 근육의 한쪽 끝은 뼈에, 그리고 다른 쪽 끝은 얼굴피부에 연결돼 있다. 즉 뼈 사이에 연결된 상황보다 훨씬 다양한 동작, 즉 ‘표정’을 만들 수 있다.
 

(그림)사람 얼굴 근육의 구조^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44개의 근육이 있다. 이중 음식 씹는 동작을 돕는 근육은 좌우 2개씩 모두 4개다. 나머지 40개는 표정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40개 근육은 다른 근육과 달리 한쪽 끝에는 뼈, 다른쪽 끝에는 피부에 연결된다. 따라서 뼈 사이에 붙은 경우에 비해 다양한 운동형태를 나타낸다. 눈과 귀, 코, 그리고 입 주위를 움지이며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비결이다. 또 얼굴 근육의 움직임은 뇌의 통제를 받는다. 마음먹은 대로 표정을 다양하게 변하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카드 쥐어도 무표정한 포커페이스

서양의 경우 손짓과 표정은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의사전달 수단이다.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12월 대선을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5명의 후보들은 어떤 제스처를 잘 사용할까. 미국과 달리 후보들이 모여 토론을 벌인 사례가 없다 해도, 각 후보들이 취하는 고유의 행동을 통해 이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재희 소장(이미지컨트롤연구소)과 정연아 소장(정연아이미지연구소)은 TV 화면에 비친 대선주자들의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대선후보들은 특이한 손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소신을 밝히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긴장감으로 몸이 굳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주먹을 쥐고 손을 뻗는 동작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김대중 후보다. 정소장은 “김대중 후보가 손바닥을 펴고 칼로 자르는 동작을 적절하게 자주 취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말이다.

김대중 후보는 표정 관리도 뛰어나다. 연설문을 읽을 때 항상 눈길이 수평을 유지한다. 말이 조금 틀려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여유로움의 표현이다.

또 심소장은 “김대중 후보의 얼굴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poker face)”라고 얘기한다. 노련한 도박사일수록 포커 게임을 할 때 아무리 좋은 카드가 손에 쥐어져도 얼굴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후보는 어떤 어려운 공격을 받아도 표정이 잘 안바뀐다는 것이다.

제스처를 익숙하게 구사하는 또다른 사람은 이인제 후보. 정소장은 “이인제 후보가 박정희 전대통령의 근엄한 표정과 천천히 움직이는 몸짓을 거의 완벽하게 몸에 익힘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정소장은 “클린턴이 유세 과정에서 케네디 전대통령의 웃는 모습이나 부드러운 이미지를 흉내내 젊음과 변화를 추구하던 미국 국민을 움직였다는 일화가 있다”고 말하면서 “누구라도 자기 이상형(이미지 모델)의 사진을 10년 정도 붙여놓고 매일 보면 그 사람과 닮아진다는 말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인제 후보의 경우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미지 모델이었던 셈이다.

이들과 달리 이회창, 김종필, 조순 후보의 경우는 제스처를 만들었다기 보다 ‘자기 본성 그대로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유형이다. 이회창 후보는 법조계 출신답게 ‘대쪽’의 이미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정소장은 “이회창 후보는 연설문을 읽을 때 토씨 하나 안틀리겠다는 자세를 취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선이 연설문과 카메라 두곳을 수직 이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확한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둔 탓이다. 이런 면에서 심소장은 “이회창 후보가 강직하고 정확하며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것은 오랫동안 몸에 익은 법관 생활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때 불편한 속마음이 드러나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한다.
 

미국 37대 대통령 닉스. 1960년 대선에서 외형적인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 케네디에게 패한 이유중의 하나다.


‘화면발’에 속지 말 것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습성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조순 후보도 마찬가지다. 학자 출신의 조순 후보는 겉모습이 무척 단호한 인상을 준다. 특히 독특한 흰눈썹과 과묵해보이는 표정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연설문을 읽을 때의 표정은 학자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드러운 눈매와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읽어가는 표정은 정치인보다 학자의 분위기에 가깝다는 평이다.

김종필 후보는 다섯 후보 중 제스처를 가장 ‘애용하지’ 않는다. 정소장은 “김종필 후보의 제스처는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오랫 동안 정치생활을 했음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제스처를 개발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인상이다.

대선후보 다섯명의 제스처는 각양각색이다. 앞으로 얼마 안남은 선거일정에서 후보들은 좀더 멋진 제스처를 보이면서 유권자를 설득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제스처는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후보들의 겉모습에 너무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리스는 저서 ‘맨워칭’(까치, 1994)에서 사람의 행동 중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언어, 표정, 그리고 손짓을 꼽았다. 손짓과 표정에 관여하는 근육의 운동은 대부분 뇌의 명령에 따라 조절된다. 이론상으로는 마음먹은 대로 손짓과 표정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는 말할 것도 없다. TV 토론을 보면서 후보의 미소나 말만 듣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정덕희교수(명지대 사회교육원)는 “유권자들이 ‘화면발’에 속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평소 화면이나 지면에서 굉장히 포용력 있고 지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던 모후보의 ‘사모님’ 얘기다. 우연히 방송국에서 만나게 됐는데, 인사를 해도 아예 받을 생각도 없이 오만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너무나도 자비로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더라는 것이다. 정교수는 배우 뺨치는 그녀의 연기력에 놀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보의 진실성은 어디에서 드러날까. 뇌의 통제에서 벗어난 무의식적인 행동, 즉 자율신경계에 의해 지배받는 생리적 현상을 통해 속마음이 표현되기 마련이다. 거짓말을 할 때 땀을 흘리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또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눈동자의 크기는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

후보의 하체 부위 드러나야

눈동자는 빛이 눈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밝기에 따라 크기가 변한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눈동자는 지름 2mm 정도로 크기가 준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면 이보다 4배 정도 확대된다.

흥미로운 점은 빛 외에도 감정의 변화가 눈동자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람이 기대이건 공포이건 무언가 흥분할만한 것을 보았을 때 눈동자는 밝은 곳에서의 크기보다 더 커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을 볼 때는 눈동자 크기가 줄어든다. 이 변화는 무의식중에 이뤄지는 것이므로, 사람의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그러나 TV 토론에 나선 후보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유권자가 심장박동수를 측정하거나 눈동자 크기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규형소장(리서치앤리서치·정치심리학 박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노소장은 “우리나라 TV 토론을 보면 후보의 하체가 책상에 가려 안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탓에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후보의 무의식적 행위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다리의 움직임, 그리고 다리를 자주 꼬거나 움직이는 행동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도망가고 싶다’는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노소장은 “프랑스나 미국의 경우 전신이 다 드러나도록 서서 토론을 진행하며, 앉아서 하는 경우도 앞에 탁자가 없거나 매우 낮다”고 말하면서 “앞으로의 TV 토론에서는 하체를 노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후보들의 제스처도 점차 화려해지고 있다. 후보들은 단순히 손짓과 표정을 관리하는 일외에도 넥타이 색깔이나 머리 모양과 같은 패션에도 신경쓰고 있다. 겉멋에 혹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진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뽑기위해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정치외교학
  • 언론·방송·매체학
  • 심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