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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년 전 한반도에 거대 운석이 떨어졌다

구글 어스로 한반도 남부를 확대해 보면 경남 합천 부근에 유독 동그란 지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 산에 둘러싸인 동그란 모양은 오래전부터 지질학자의 관심을 끌었다. 운석이 충돌한 충돌구(크레이터)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입증이 어려워 추정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국내 연구팀이 이 지역을 시추, 조사한 끝에 실제로 5만 년 전 형성된 운석 충돌구라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최초의 충돌구다. 연구를 주도한 연구자가 직접 놀라운 발견 과정을 밝혔다.

 

운석 충돌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다. 가장 유명한 운석 충돌의 흔적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칙술루브 충돌구(Chicxulub crater)’다. 


약 6600만 년 전에 운석 충돌로 생긴 흔적으로 지름 180km, 깊이 20km의 거대한 운석충돌구를 형성했다. 백악기-팔레오기 경계(K-Pg 경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어난 이 운석 충돌은 규모가 컸던 만큼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며 지구 생태에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공룡이 멸종했고, 지구상의 동물과 식물의 75%가 사라졌다. 이후 포유류가 지상 생물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미궁 속에 있던 적중-초계분지 생성 원인

 


대구에서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면 황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독특한 분지 하나가 등장한다. 경남 합천군 적중면과 초계면에 걸쳐있는 지름 약 7km의 분지다. 지역의 이름을 따서 ‘적중-초계분지’라고 부른다. 한 번이라도 이곳을 지나가 본 사람은 ‘이상한 분지가 있네’하며 갸우뚱했을 것이다. 여러 산이 그릇 모양의 평평한 대지를 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다. 


이 분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었다. 분지 내부에 관입해 있던 화강암이 차별침식으로 사라지며 분지가 생성됐다는 가설, 단층선을 따라 발생한 침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설, 운석 충돌로 움푹하게 패인 지형이 만들어졌다는 운석 충돌 가설 등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를 두고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게 아닐까’하는 의문을 품었으나, 명확히 밝혀진 증거는 없었다.


이런 의문들 속에서 필자의 연구팀은 ‘만약 이 분지가 운석 충돌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운석이 충돌할 때는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 충격파는 충돌지점의 지하와 그 주위에 있던 암석, 광물 속에 다양한 변형구조를 만든다.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 연구팀은 두 가지 단계로 연구를 기획했다. 먼저 1단계로 분지 주위 현장 조사를 통해 충격 변형구조를 찾았다. 이어 2단계로 분지 내에서 시추작업을 해 지하 깊은 곳에 운석이 충돌한 증거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1단계 현장 조사 과정에서는 분지 내부의 산 사면(산의 경사진 곳) 퇴적층과 지표면에 노출돼 있는 암석을 수집했다. 수집한 암석에서 연구에 필요한 암석들을 선별했고, 이를 박편으로 만들었다. 현미경으로 박편을 관찰하며 충격에 의한 변형 구조가 있는지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암석에 포함된 석영 광물에서 평행하고 긴 홈 모양의 흰색 선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충격파로 광물 입자가 녹았다 다시 굳는 과정에서 형성된 ‘평면변형구조(planar deformation feature)’였다. 분지가 운석 충돌로 형성됐을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추가 현장조사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자 시추를 이용한 2단계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동아시아 최초 ‘충격원뿔암 증거’

 


처음에는 막막했다. 운석 충돌 시 만들어지는 ‘충격각력암층(impact breccia)’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기반암을 피해 깊이 구멍을 파야 한다. 하지만 땅밑 지하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시추 위치를 정하기도, 깊게 시추하기도 힘들었다.


특히 운석충돌구의 지름에 따라 형성되는 지하구조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 어려운 문제였다. 운석 충돌로 만들어지는 지름 4km 미만의 ‘단순운석충돌구’는 가장 깊은 구덩이가 중앙에 위치하는 지하구조를 형성한다. 반면 지름 4km 이상의 ‘복합운석충돌구’는 중앙이 위로 볼록 솟아오른 지하구조를 갖게 된다.

 
만약 적중-초계분지가 단순운석충돌구라고 가정하면 분지의 중앙에서 시추해야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작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지가 복합운석충돌구일 경우 시추를 중앙에서 하면 솟아오른 기반암에 닿아서 깊숙이 들어갈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고심 끝에 중앙을 피해 시추 위치를 잡았다. 


그렇게 시추를 시작했다. 시행착오 끝에 142m 깊이까지 시추를 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연구에 적합한 퇴적층 시료를 얻을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이 분지의 내부에서 회수된 142m 두께의 퇴적층은 크게 3개의 퇴적단위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깊은 부분에는 충격각력암층(72~142m)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위에는 세립질 실트 점토의 엽층리를 포함한 호수퇴적층(6.2~72m)이 있었다. 표층에는 토양 및 하천퇴적층(0~6.2m)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구팀은 하부에 있는 충격각력암에서 운석 충돌에 따른 충격파가 만드는 미시적 광물변형 증거와 거시적 암석변형 증거를 모두 발견했다. 운석 충돌 시에는 강한 충격파가 발생하면서 지하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발생한 충격파가 암석과 광물 속에 충격 변성에 의한 흔적(shock-metamorphic effects)을 남기게 된다. 이런 암석학적, 지구화학적 변형구조를 추적하면 과거에 운석 충돌이 있었는지를 판별할 수 있다. 


시추코어 142m 충격각력암층에서 발견한 사암에서는 석영광물입자에 충격파로 만들어진 평면변형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미시적 광물변형의 증거였다. 130m 셰일 암석에서는 ‘충격원뿔구조(shatter cone)’가 발견됐다. 이 충격원뿔암은 동아시아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 운석 충돌의 거시적 암석변형 증거였다.

 

 

국내 첫 운석충돌구 발견


특히 충격원뿔암을 발견한 것이 매우 감격스러웠다. 오후 6시 해가 질 무렵에 이뤄진 그 날의 마지막 시추작업이었는데, 무려 130m 깊이에서 암편들이 올라왔다. 그중 약 6cm 크기의 암편 하나를 박편 관찰용으로 만들기 위해 해머로 내리쳤다. 


원래는 이등분 할 생각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암편이 3개의 큰 조각으로 쪼개졌다. 쪼개진 면에서 두 눈을 의심할만한 구조들이 보였다. 바로 충격원뿔구조였다. 가장 강력한 운석 충돌의 증거로 여겨지는 바로 그 증거가 확보된 순간이었다.


만약 그때 그 암편을 쪼개지 않았다면,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도록 음영을 강조해 준 붉은 노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충격원뿔암의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순간에 하늘이 허락한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수퇴적층 속에 포함된 숯을 이용한 탄소연대측정 결과, 이 운석 충돌사건은 약 5만 년 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반도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거대한 운석의 충돌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운석 충돌 시기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추가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적중-초계분지에서 진행한 현장조사와 암편 분석 결과를 모아 지난해 12월 8일 지질학 분야 국제학술지 ‘곤드와나 리서치’에 발표했다. doi: 10.1016/j.gr.2020.12.004 


이번 연구는 한반도 최초, 동아시아 두 번째 운석충돌구의 존재를 밝혔다는 사실에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 여러 분지에 대해서 운석 충돌설이 있었지만,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 연구결과는 없었다. 현재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운석충돌구의 수는 200여 개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에서는 2010년 중국에서 발표한 ‘슈엔 운석충돌구’가 유일했다. 


국내 첫 번째 운석충돌구의 발견은 그동안 한국에서 생소했던 운석충돌지질학 분야를 소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번 발견이 두 번째, 세 번째 운석충돌구 발견을 이끌 것이라 믿는다. 적중-초계분지와 유사한 모양과 특징을 가지는 분지에 대해서 운석 충돌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에 임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었다. 향후 지질연구 방법과 해석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적중-초계분지를 바라볼 때 우리는 과거에 우주에서 날아온 지름이 적어도 200m는 되는 운석이 대기에 진입해서 초속 수십km의 속도로 떨어져서 만드는, 상상할 수 없이 강력한 천체 실험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당시 한반도 남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 부분 역시 향후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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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조혜인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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