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출간된 후 큰 인기를 끈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중심 키워드는 바로 ‘자기가축화’다.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 교수는 서문에서부터 현생 인류 특유의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했으며, 이는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현재까지 살아남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기가축화란, 인류가 가축화된 야생동물처럼 공격성이 줄고 친화력, 공감능력, 협력 능력 등 가축의 특성이 강화되며, 뇌 용적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스스로 가축처럼 순해지길 택하는 동물로는 인류와 보노보가 꼽힌다. 헤어 교수는 2012년 국제학술지 ‘애니멀 비헤이비어’에 보노보의 자기가축화 양상을 분석한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 헤어 교수가 주목한 건 보노보와 침팬지 사이의 성격 차이다. 보노보와 침팬지는 원래 하나의 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살던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콩고 강에 의해 나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만 년 전 벌어진 일이다. doi: 10.1016/j.anbehav.2011.12.007
콩고 강 북쪽 영역은 고릴라와 먹이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험한 환경이었다. 이 환경에서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통조상은 현재 침팬지라고 부르는 동물로 진화했다. 강한 먹이경쟁 탓에 침팬지는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데 예민하고, 폭력적인 경향을 띠게 됐다는 것이 헤어 교수의 분석이다. 한편 보노보가 처한 환경은 고릴라와 같은 거친 경쟁자가 없고 먹이가 풍부한 환경이었다. 헤어 교수는 여기서 보노보가 더욱 큰 규모의 사회를 형성하고, 폭력성이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물리적 특성도 달라졌다. 보노보의 코가 짧아지고, 뇌가 작아지고, 암컷과 수컷의 신체 차이도 줄어들었다. 그렇다, 앞서 설명한 가축화 신드롬에 부합도록 진화한 것이다. 논문에서 헤어 교수는 “보노보와 침팬지의 차이는 자기가축화 가설로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서 “자기가축화 경향은 포유류의 진화에서 널리 발견되는 특징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같은 학설은 현재 학계에서 얼마나 널리 받아들여지는지 장 교수에게 물었다. 장 교수는 “혼자 살지 않고,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면 당연히 사회생활에 적합한 방향으로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면서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들은 집단 내에서 살아갈 때는 문제가 되므로, 사회성 동물이라면 그런 행동들은 도태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간과 보노보처럼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생존전략을 택한 동물들은 그 전략에 맞게 진화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부분에 과하게 몰입해선 안된다. 장 교수는 “코끼리와 사자도 마찬가지인데, 사회의 구성원들이 혈연으로 연결되는 경우엔 먹이를 함께 사냥하거나, 육아를 함께 하는 등 이타적인 행동이 생존전략”이라면서 “혈연이 있지는 않고,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집단생활을 하는 가젤 등의 경우엔 이타적인 행동이 쉽게 관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동물의 자기가축화, 나아가 인간의 자기가축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란 뜻이다. 여기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기엔 우린 이 현상을 아직 잘 모른다. 당장 보노보만 해도 공격적인 수컷일수록 짝짓기 성공률이 높아지며, 이때 수컷 보노보의 공격성은 침팬지보다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바 있다. doi: 10.1016/j.cub.2024.02.071
한편으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월 2일 유튜브 채널 ‘보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자기가축화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남긴 적 있다.
“문제는 그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가설은 옛날 인류는 더 폭력적이었고 현생 인류는 더 온순하다는 겁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과연 옛날보다 덜 폭력적일지 의심이 듭니다. 사실 진화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두고 ‘왜’를 떠올리기란 힘들어요. 이미 살아남았기 때문에 어떤 설명을 갖다붙여도 다 이유가 되는 거예요.”
가축화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생인류와 가축들은 여전히 서로를 변화시켜가며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류가 남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실험이다. 확실한 것은, 인류와 가축은 자연에게 ‘선택 당하기’ 위해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유전자를 바꾸며 진화해왔고 그 끝에 (아직까지는) 살아남는 데 성공했단 점이다. 앞으로 수만 년 간 인류와 가축은 어떻게 살아남으며 진화할까. 수만 년 후 고양이는 여전히 인류를 캔따개 정도로 부릴지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