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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은 광물에 열을 가해 변형시켜 만든 비금속 무기 재료다. 오래전부터 써온 전통적인 소재다. 보통 점토 같은 천연 원료를 반죽해 모양을 낸 뒤 열을 가해 구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그릇이나 도자기, 유리 등이다. 시멘트, 타일, 변기도 세라믹이다. 편의상 이런 종류를 전통세라믹이라 하며, 요즘 소재과학에서는 첨단세라믹이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먼저 영상을 하나 감상하자. 지난해 지식경제부와 한국세라믹기술원은 ‘첨단 세라믹 글로벌 챌린저’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엄지걸스’ 팀(경희대 김정윤· 이나영)의 동영상은 첨단세라믹 소재가 현재 우리 주변의 어떤 제품에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물건에서 첨단세라믹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월 말, 김정윤·이나영 씨, 한국세라믹기술원 김응수 선임연구원과 함께 미국 세라믹공학의 중심지인 뉴욕 주를 찾았다. 미국 북동부인 이곳은 세라믹의 원료가 많이 매장돼 있어 세라믹 산업이 번성했던 곳이다. 미국 최고 수준의 세라믹공학과가 있는 알프레드대와 첨단 유리로 유명한 코닝 사가 이곳에 있다.

 
산업용 강화 유리의 재발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세라믹 소재가 있다. 바로 유리다. 오래전부터 쓰여온 유리는 첨단세라믹 소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모바일 기기가 널리 퍼지면서 소비자는 더 넓은 화면과 얇은 두께를 원했지만, 기존 유리는 자칫하면 깨지거나 흠집이 나기 쉬워 섣불리 적용할 수 없었다. 보통 4~5인치, 크게는 10인치가 넘는 모바일 기기의 전면을 유리로 덮어 넓은 디스플레이를 확보할 수 있는 건 기존 유리보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충격에 강한 첨단 유리 덕분이다.

코닝 시에 있는 코닝은 1851년도에 설립돼 과거에는 에디슨이 개발한 전구 유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미국 우주선에 쓰이는 유리도 공급하고 있다. 코닝의 R&D센터인 ‘설리반 파크’를 찾아 코닝의 세라믹 소재 개발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정질 재료 분야 연구 디렉터인 크리스 헤켈 박사는 “코닝이 성공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기술의 장래성을 보고 투자를 계속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요즘 모바일 기기에 널리 쓰여 유명해진 ‘고릴라 글라스’도 마찬가지다. 고릴라 글라스는 원래 1960년대 강화 유리로 개발된 제품이다. ‘근육 유리’라는 이름으로 자동차나 항공기 등에 쓰이다가,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재조명됐다. 기존 유리로 스마트폰을 만들면 쉽게 깨지거나 주머니 속의 동전이나 열쇠 같은 물건에 긁혀 흠집이 잘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고릴라 글라스는 화학적인 방법을 써서 강도를 높인다. 유리를 약 400℃의 녹은 칼륨염에 넣으면 나트륨 이온이 유리에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칼륨 이온이 채운다. 칼륨 이온은 나트륨 이온보다 크다. 크기가 더 큰 칼륨 이온은 유리가 식을 때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해 유리를 압축시키면서 표면으로 퍼져 나간다. 그 결과 일상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강도를 갖게 된다. 현재 고릴라 글라스는 갤럭시와 옵티머스 시리즈, 아이폰을 비롯한 10억 대가 넘는 모바일 기기에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유리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정보디스플레이학회에서 코닝은 휘는 유리인 ‘윌로우’를 발표했다. 두께가 0.1mm에 불과해 종잇장처럼 얇고 가볍지만, 유연하기 때문에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다.
 

 
스마트폰 부품의 70%가 세라믹
유리는 겉에 보이는 부분일 뿐이다. 세라믹 소재를 이용한 부품은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다. 반도체와 콘덴서, 센서 등 70%에 달하는 부품이 세라믹 소재다.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거나 열에 강하고 강도가 높은 성질을 이용한 이들은 모바일 기기를 더욱 작고 가볍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세라믹 소재는 디스플레이나 전자 제품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환경 및 에너지 소재, 바이오 소재, 구조 소재가 대표적이다. 설리반 파크에서 일하는 화학자 스티븐 오군우미 박사는 한 예로 개발 중인 배기가스 필터를 소개했다. 오군우미 박사는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 효율이 높은 차세대 필터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세라믹 필터는 원통형 모양에 사각형, 육각형 등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오염물질을 붙잡을 수 있는 미세한 구멍이 많다. 표면에는 오염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코팅돼 있다.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배기가스 속의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것이다. 세라믹으로 만든 필터는 열에 강해 배기가스의 높은 온도에도 잘 견딘다. 세라믹 필터는 물속의 오염물질을 거르는 데도 쓸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화학적으로 안정돼 있어 부식이 일어나지 않는 게 장점이다.

바이오 소재 또한 앞으로 유망한 분야다. 세포를 배양하거나 유전자를 검사하고 질병을 진단하는 일에서는 정확도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금속이 아닌 세라믹으로 인공 관절을 만들면 높은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부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코닝이 최근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소재는 리튬이온배터리에 쓸 수 있는 세라믹 전해질이다. 전해질을 세라믹으로 대체하면 전지의 크기를 줄이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더 작고 오래 가는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헤켈 박사는 “이 기술 역시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지만, 장래성이 높다고 보고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통을 넘어 첨단으로 나가야
세라믹공학은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야다. 세라믹공학이 발달한 알프레드대에 가면 한 건물에서 세라믹 공예를 전공하는 미대생과 세라믹 공학을 공부하는 공대생이 뒤섞여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작품의 한 재료였던 세라믹이 이제 각종 첨단 제품에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첨단 세라믹 소재 시장은 일본의 교세라나 무라타, 미국의 코닝과 같은 소수 기업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첨단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우리나라는 아직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김응수 선임연구원은 “국내 세라믹 기업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전통세라믹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며 “첨단세라믹 소재 연구를 강화해 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취재 첫날 방문한 ‘빅터 인슐레이터’다. 이 기업은 100년에 걸쳐 세라믹 전기 절연체를 생산해 왔다. 그러나 중국 기업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사업이 침체에 빠져 있다. 이라 닉커보커 사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의 시작 단계부터 생산 과정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헤켈 박사는 “생산 과정에서 혁신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소재를 최초로 개발하지 못해도 결과적으로는 코닝이 앞서 나갔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금 코닝에서 쓰고 있는 세라믹 전해질 연구 시설도 그대로 규모만 키우면 산업에 적용할 수 있다.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첨단세라믹 소재 기술을 확보하려면 우리나라도 원천기술 개발과 연구인력 확보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첨단 스마트폰은 잘 만들면서 정작 부품은 수입에 의존한다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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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코닝, 알프레드=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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