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온과 음이온의 이론만으로는 같은 원자끼리의 결합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마지막 껍질의 전자를 서로 공유하는 새로운 이론이다. 이로써 다양한 분자모양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1860년 9월 독일에서는 제1회 만국 화학자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회의는 3일에 걸쳐서 열렸다. 제2일째 되는 날에 이탈리아의 카니자로는 이미 고인이 된 아보가드로 분자가설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여전히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다음날에도 분자에 대한 생각을 설파했다. 역시 많은 과학자들은 그 자리에서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했던 과학자들이 가져간 카니자로의 강의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점차로 분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옆의 박스는 카니자로 강의록 내용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이미 1811년에 이탈리아의 아보가드로가 기체의 부피는 입자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하에, 기체반응의 법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체상태의 물질이 원자 상태가 아닌 원자들의 집합체, 즉 분자로 돼있다는 생각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러면 분자설이 50년이 지난 후에는 당시의 명성있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조차 받아 들여지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대체로 두가지로 볼 수 있다.
A. 기체 상태의 밀도 측정
(관찰사실) 수소와 염화수소의 증기밀도비는 1:18.25다.
(가설1) 수소기체는 1원자로 된 분자다.
*수소의 분자량-1
염화수소의 분자량-18.25
(가설2) 수소기체는 2원자 분자다.
*수소의 분자량-2
염화수소의 분자량-36.5
B. 정량분석
(관찰사실) 염화수소를 구성하는 수소와 염소의 중량비는 2.74:97.26
(가설1) 수소기체는 1원자로 된 분자다.
*염소의 원자량=18.25×(97.26÷100)=17.25
수소의 원자량=18.25×(2.74÷100)=0.5
(가설2) 수소기체는 2원자 분자다.
*염소의 원자량=36.5×(97.26÷100)=35.5
수소의 원자량=36.5×(2.74÷100)=1
C. 종합
(가설1)은 증기밀도 측정에 의한 원자량과 정량분석에 의한 수소의 원자량이 다르므로 모순이다.
(가설2)는 두 경우 모두 수소의 원자량이 1이다.
결국 수소는 2원자 분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첫번째 이유는 돌턴의 원자설이 정립되는 과정에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은 과학의 중심지였다. 특히 영국은 유럽 근대 과학의 성지였다. 그리고 돌턴은 영국 과학의 중심에 있었다. 보잘것 없는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아보가드로의 실험적 뒷받침 없는 논리적인 유추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수소나 산소 그리고 질소와 같은 물질이 분자로 되어 있다면 이들을 결합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원자 사이의 결합을 전기적 인력으로만 생각하던 당시로선 같은 종류의 두 원자의 결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후에 양이온과 음이온에 대한 개념이 정립된 뒤에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같은 종류의 원자는 어떻게 결합할까
카니자로의 분자에 대한 설명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보가드로가 분자설을 발표한 이후에 발견된 많은 실험적인 성과에 기인한다. 특히 물질을 기체로 만들어 증기밀도를 측정하는 실험 기술의 발달로 많은 물질의 증기밀도가 측정되었던 점은 분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카니자로의 강의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수소가 원자적 구성을 갖는다고 가정할 경우 어떤 때는 원자량이 1이고 다른 때는 분자량이 0.5인 값을 얻는다. 이처럼 한 원자가 경우에 따라 원자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화학자에 따라서 제각기 주관적으로 원자량을 결정하였고 원자량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1860년에 열린 만국과학자대회의 주된 주제도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있었다. 그러나 원자량이 뒤죽박죽인 것을 바로잡는 것은 원자량의 기준을 통일시킨다고 해결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는 물질을 분자적 구성으로 바라볼 때에만 해결되는 것이다. 카니자로는 강의록에 적혀 있는 것처럼 수소를 2원자 분자로 생각하면 어느 경우나 원자량이 1이 된다고 명쾌히 결론지었다.
그러나 분자를 이루는 물질의 결합은 20세기에 이르러서 설명이 가능해진다. 어떻게 같은 원소간의 결합이 가능할까? 19세기의 위대한 과학발전에 이어,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화학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였다. 루이스에 이르러 두 개의 원자는 전자의 이동에 의하여 양이온과 음이온 간의 결합뿐만 아니라 전자의 공유에 의해서도 결합한다는 공유결합론이 제시되었다.
이것은 네온이나 아르곤과 같이 원자의 마지막 껍질에 8개의 전자가 있을 경우 안정한 상태가 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즉 원자가 미완성 상태인 마지막껍질의 전자를 하나씩 내어놓아 서로 공유함으로써 두 원자 모두 네온이나 아르곤과 같은 전자배치를 갖는다는 생각이다.
이제 여러 분자의 신기한 모양과 성질에 대해서 살펴보자.
물분자의 춤솜씨
물 한방울의 크기를 재보자. 그리고 그 지름을 1백으로 1천으로, 또 다시 1천으로 나누어 보자. 결과는 물 한분자의 크기와 비슷할 것이다. 건물을 지으려면 무수히 많은 모래알이 필요하듯이 물 한방울을 만들기 위해서도 무수히 많은 물분자가 필요하다.
물분자는 복숭아에 두 개의 살구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간에 있는 복숭아는 산소원자에, 두 개의 작은 살구는 수소에 비유할 수 있다. 산소원자는 결합이라는 매우 정밀한 관계에 의해 각 수소원자에 연결돼 있다(그림1).
물방울로부터 물분자를 분리한다면 아마도 공기속으로 증발해버릴 것이다. 물방울로부터 해방된 물분자는 아주 빠른 속도로 돈다. 1초 동안에도 수만, 수억번을 돈다. 그러나 장난감 팽이와는 달리 세가지 다른 방향으로 돈다(그림2).
물분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도는데 비해 각각의 원자는 그 분자 내에서 비교적 천천히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원자가 천천히 움직인다고 해도 우리가 보기에는 여전히 매우 빠른 속도다. 원자들은 세 원자 간에 조화를 이루며 매우 정교하게 춤을 춘다. 그들의 춤은 두 수소 원자가 동시에 산소 원자에게 바짝 다가섰다가는 물러서고 다시 다가서는 동작과, 수소원자 하나는 다가서고 다른 수소원자는 물러서는 방식의 동작이 있다.
분자의 구조는 단순한 평면 구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케쿨레는 벤젠의 구조를 기하학적인 육각형의 도형으로 그려냈다. 케쿨레는 원래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집을 건축하면서 물질의 세계에 기하학적인 구조가 있음을 발견한 셈이다. 이 육각형의 탄소 고리는 냄새를 내는 여러 화학물에서 발견된다. 이로 인하여 벤젠의 육각형고리를 지닌 화합물을 방향족 화합물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그림4).
어떤 모양이든 만들수 있다
케쿨레가 벤젠고리를 발견하기 10년 전에 파스퇴르는 이미 분자 세계의 입체구조가 가지는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분리해낸 두 물질이 왼손과 오른손같이 완전히 닮은 모습이지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마치 한 분자를 거울 앞에 세워 놓았더니 거울 속의 분자가 튀어 나온 것과 마찬가지다(그림5). 빛을 편광면을 통과시키면 한 방향으로만 진동한다. 이 편광된 빛을 오른손 분자에 통과시키면 진동축이 오른쪽으로 휘고 왼손 분자를 통과시키면 왼쪽으로 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원소는 다섯가지의 정다면체에 의해서 상호 관계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정다면체는 물질의 구성원소는 아니지만 물질의 기하학적 구조로는 가능하다. 메탄분자는 정사면체를 만들고 12개의 붕소원자는 정20면체를 만든다. 그리고 염소 6개로 된 육각형 속에 몰리브덴 6개가 정팔면체로 갇혀 있는 화합물을 만들 수도 있다(그림6).
최근에는 60개의 탄소로 축구공과 같은 분자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분자식이 ${C}_{60}$인 이 분자는 마치 축구공이 오각형과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각 꼭지점에 탄소를 하나씩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중심에 크기가 큰 금속 이온을 효과적으로 가둔다. 이 물질의 용도는 계속 연구되고 있다. 탄소가 전기전도성이 좋은 물질인데다 그 내부에 금속이온까지 들어있어서 전기전도성이 매우 좋은 재료로 평가된다.
생체 내의 고급 분자
생체 내의 분자들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생체 내에서는 매우 섬세하고도 치밀하며 융통성있는 기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담즙에서 분비되는 산은 생체 내의 무기염류와 물의 대사에 관계한다. 예를 들어 나트륨과 칼륨의 농도를 적정하게 조절하는 기능도 이에 해당된다. 필요시에 나트륨을 체내에 축적하고 칼륨을 배설한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담즙산의 구조는 콜레스테롤과 유사하다. 이 물질들은 일반적으로 탄소원자로 된 육각형 고리 세개와 오각형의 고리 한개를 가진다.
부신피질에서도 이와 같은 구조의 분자가 분비된다. 이러한 공통된 구조를 갖는 분자를 스테로이드라고 부른다. 우리는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을 때 혈액 중의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검사한다. 그 양이 체내에 많을 경우는 여러가지의 질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량의 콜레스테롤은 반드시 필요하다. 콜레스테롤은 담즙산 부신피질호르몬 성호르몬 프로비타민D 등의 재료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그림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