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선 50여곳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됐다. 공룡화석이 발견된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자. 공룡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자연학습장 하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지만 선뜻 떠오르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이내 동의하고 만다. 연은 그 자체가 학습장이다. 그런데 어찌 유독 한반도에만 자연학습장이 없을 수 있을까. 원인을 따져보면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고 변변한 안내책자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동아에서는 지금까지 묻혀 있거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자연학습장을 찾아나섰다.
그 첫번째 여행지는 공룡이 뛰놀던 현장.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공룡화석이 출토된 것은 50여곳이 넘는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공룡뼈화석이 처음 발견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공룡계곡,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성면 제오동 대추벌,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울산시 두동면 천전리 등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들이다. 또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성과라고 한다면 몇가지 기초적인 상식만 알면 누구나 공룡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공룡뼈가 즐비한 공룡계곡
한반도는 공룡들의 낙원이었다는 말을 공룡학자들로터 귀가 닳도록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공룡화석지를 향해 가는 마음은 이만저만 설레이는 게 아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영천으로 들어서면 군위군과 의성군을 가로질러 안동을 잇는 28번 국도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의성방향으로 45km 정도 달리면 우보면 이화리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군위읍쪽으로 빠지는 985번 도로를 따라 5km만 가면 오른쪽 나즈막한 비탈에 철조망으로 가려놓은 나호1동 공룡화석지가 나온다. ‘지질학 연구자료’라고 군위군수가 세워놓은 표지판이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경북 군위군 우보면 나호1동 공룡화석 출토지는 92년 부산대 김항묵교수가 발견했다.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전기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이라고 한다. 김교수는 “발굴된 두개골(척추골일 가능성도 있음), 어깨뼈, 장골(내장을 싸고 있는 골반뼈) 등을 보면 세계 최대 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의 일부라고 짐작된다”며, 여기저기서 뼈가 흩어져 발견되는 것은 이곳 공룡이 다른 곳에서 죽어 강을 따라 뼈만 운반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바위에 이끼가 끼거나 불에 그을린 듯해 쉽게 공룡화석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게다가 연구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철조망으로 둘러놓아 볼품도 사나왔다. 김교수는 “공룡화석이 검게 보이는 것은 공룡뼈화석 주변의 사암체들이 공룡으로부터 탄소를 공급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처음 보면 우습게 보이지만 앞으로 탐사를 계속하면 뭔가 혜안이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28번 국도로 나와 의성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니 탑리라고 하는 제법 큰 동네가 나왔다. 왼쪽에는 금성산과 비봉산이 눈에 띈다. 그리 높지 않은 금성산은 경상도땅의 중심이 된다. 한반도에 화산활동이 심하던 시절 금성산을 중심으로 경상도땅들이 솟아났다는 설명이다.
탑리 봉황재에는 정수웅씨가 가꾼 공룡농원(전화 0576-32-8821)이 있다. 정씨는 이곳에 살면서 공룡알을 발견하기도 했다. 탑리의 공룡계곡은 정씨의 공룡농원이 있는 곳으로 김항묵교수가 73년 대학원생이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룡뼈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특별히 많은 공룡화석들이 발견되는 것은 늙은 공룡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아니었나하는 추측을 낳는다.
공룡계곡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은 길이 1.8m에 달하는 공룡의 늑골(갈비뼈)화석, 발톱룡(데이노니쿠스)의 넓적다리뼈, 척추돌기화석, 턱뼈 등 다양하다. 김교수는 “앞으로도 공룡화석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체계적인 조사와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봉황재 오르막길에는 공룡뼈가 누워있었다. 길을 낸 절벽 틈사이로 큰 바위들이 질서있게 늘어서 있어 나호1동에서 보지못한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공룡발자국은 세계 최대
누구나 공룡하면 티라노사우루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공룡시대의 사자’인 티라노사우루스를 우리나라에선 발견할 수 없다. 중생대 쥐라기에 살았던 공룡들은 백악기 초기에 일어났던 대보조산활동과 같은 커다란 지각변동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뼈를 추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쥐라기보다 더 아름답고 큰 백악기 공룡들을 찾아낼 수 있다. 금성면 제오리 대추벌(천연기념물 373호)은 바로 그런 곳이다.
제오리 대추벌은 원래 문익점이 목화를 재배하던 곳이다. 그런데 89년 이곳에 도로를 내다가 지층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공룡발자국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항묵교수와 함께 발자국 중 하나의 크기를 재봤다. 뒷발자국은 50cm, 앞발자국은 35cm, 보폭은 1m60cm. 김교수는 발자국 모양을 자세히 살피더니 카마라사우루스라고 결론을 내린다. 어떻게 발자국만 보고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발자국으로 공룡을 알아내는 공식이 있다고 한다. 결국 몸통 크기는 약 3.1m, 몸전체 길이는 10m, 몸무게는 10t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공룡발자국 중에는 80-90cm에 달하는 것들도 있었다. 아마 이것들은 훨씬 큰 공룡이었을 것이다.
제오리 대추벌은 4백-5백개에 이르는 공룡발자국들이 일정한 흐름을 보이며 찍혀 있었다. 김교수는 이곳에서 울트라사우루스를 비롯해 카마라사우루스, 메갈로사우루스, 이구아노돈 등의 발자국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길이 50m가 넘는 공룡발자국 판화가 마치 야외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느낌이었다.
제오리에서의 감격은 금성면 학미2동에 이르러 새롭게 바뀌었다. 이곳 공룡발자국은 비록 20여개밖에 되지 않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다. 바로 아마추어가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95년 정수웅씨(공룡농원 주인)는 이웃마을에 놀러가다가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농부인 헤레라가 발견해 헤레라사우루스라는 이름이 붙은 공룡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찾으면 자기 이름을 붙인 공룡이 한국에서 나올 법도 하다.
1억년 동안의 낙서가 한자리에
사실 경치만 치자면 제오리보다 울산시 두동면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경남문화재 212호)이 훨씬 낫다. 사연호(湖)의 골짜기 하나를 차지한 이곳은 ‘신선이 놀았음직한 곳’이라는 것말고는 딱히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감회가 기자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곳 공룡발자국을 바라보는 작은 절벽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신석기시대의 기하학적 무늬들과 동물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 고려, 조선을 이어 최근 아이들의 낙서까지 함께 그려져 있다. 이곳은 국보 147호로 지정된 천전리 각석이다. 공룡발자국까지 치면 1억년 동안의 낙서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사연호쪽으로 골짜기를 벗어나면 천전리 각석과 비슷한 암각화가 그려진 반구대가 있다. 하지만 “반구대는 평소 물에 잠겨 겨울밖에 볼 수 없다”고 각석을 관리하는 박장국(79세)씨는 말한다. 시간이 없어 귀동냥으로 떼우려는 기자에게 박노인은 “그곳보다야 이곳이 훨씬 좋지”하며, 각석 구석구석에 새겨놓은 알 수 없는 문양들을 설명해준다. “이것은 그 옛날 사냥할 때의 그림이고, 이것은 조선시대 때의 한복과 배(舟)이고, …”
천전리에 와서야 드디어 공룡발자국을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 김교수가 그동안 공룡발자국의 특징을 여러차례 가르쳐준 덕택도 있지만 자주 보니까 눈이 뜨인 것도 사실이다.
공룡발자국은 앞과 뒤가 다르다. 앞은 뒤보다 작다. 아마 머리쪽보다 엉덩이쪽이 몸무게가 더 나갔던 모양이다. 또 뒷발자국은 앞발자국보다 뭉툭했다. 앞발자국은 대개 발가락이나 발톱자국과 같은 흔적이 있다. 만약 이러한 흔적이 없다면 그것은 두발로 걸어다닌 공룡이다. 공룡발자국은 대부분 무리지어 나타난다. 만약 하나만 덜렁있다면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공룡발자국이 나타나는 곳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공룡발자국은 주로 세립사암에서 많이 나타난다. 아주 작은 입자들로 이뤄진 세립사암은 반질반질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두번째로 공룡화석을 한번 발견해보고 싶다면 그동안 발견된 곳들 주위에서 찾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런 곳들은 공룡화석이 출토될 가능성이 다른 곳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천전리에서 효정원(지체부자유자 교육시설)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있는 장천리 개울가에서 그동안 익혔던 지식을 충분히 활용했다. 이번에는 김교수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공룡발자국이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장천리 개울가에는 군데군데에 공룡발자국이 널려있었다. 살얼음이 낀 개울 위로 커다란 공룡이 앞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곳은 물이 맑아서인지 곳곳에 지하암반수를 찾으려는 시추공들이 널려 있었다. 웬지 지하에서 숨쉬고 있을 공룡화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처에 백연정에도 공룡화석이 많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쉬움을 남긴채 울산시 울주구 둔기리 대동으로 향했다. 대암호(湖)의 줄기인 대동에서는 공룡이 싸질러놓은 집채만한 똥을 보았다. 희끗하게 보이는 노란색이 똥의 사실미를 더했지만 결코 똥일 리가 없다. 이미 똥과 같은 유기물질은 규산과 같은 무기물질에 의해 치환됐기 때문이다. 대동에서 시큼한 공룡의 똥냄새를 맡고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이상한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다. 크기는 40-50cm 정도. 그런데 마치 소나 말이 눈 똥처럼 보였는데 색깔은 공룡의 똥화석과 일치했다.
혹시 이게 공룡의 똥이 아닐까. 그래서 김교수에게 물었더니 김교수 역시 "자세한 것은 성분을 조사해야 알겠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대답했다. 그럼 기자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룡똥을 발견한게 아닌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발자국으로 공룡을 알아낸다
발자국을 연구하면 공룡의 종류는 물론 도보의 속도, 몸무게, 지능지수, 크기를 규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환산 공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룡의 다리 길이
=발자국 길이×4
●공룡의 속도
=${0.25g}^{0.5}$${(보폭)}^{1.67}$${(허리높이)}^{-1.17}$
g:지구 중력
●공룡의 지능지수
=$\frac{노의무게}{0.12×{(체중)}^{0.66}}$
●공룡의 체중
=모형 부피×0.9×${(축적)^{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