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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 구사하는 군대개미

휩쓸고 지나가면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서슬이 시퍼런 대형 낫과 같은 턱을 철커덕거리며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거대한 개미들이 마을을 습격한다. 저마다 먼저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엎치고 덮치며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거대한 턱에 의해 무참하게 난도질을 당한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어느 옛날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다. 미국 유학 시절 필자는 종종 교내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그곳을 찾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 구경을 시켜주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안내일을 보았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곤충들 중 가장 몸집이 큰 헤르쿨레스 딱정벌레를 보여주기 전에 아이들에게 그들이 본 가장 큰 곤충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거의 어김없이 거대한 식인개미 이야기를 숨을 몰아쉬며 말하곤 한다.

물론 이런 공포의 이야기는 모두 다 그 유명한 군대개미(army ants)에서 나온 것들이다. 땅바닥에 오랫동안 방치해둔 갓난 아기의 경우라면 모르되 군대개미가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사람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더운 지방의 풀숲에 사는 곤충을 비롯한 그리 몸집이 크지 않은 많은 동물들에게는 실제로 심심찮게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현장이다.

한번 행차에 숲속이 왁자지껄

군대개미는 북미, 남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등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 전반에 걸쳐 범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종의 수도 상당하여 북남미 대륙에만도 무려 1백40여종이나 살고 있다. 군대개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남미 열대림에 서식하는 에사이튼 버첼리(Eciton bur-chelli)라는 종이다. 이 종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파나마의 바로 콜로라도 섬에서 이루어졌다. 필자는 군대개미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한 적은 없으나 숲속에서 종종 만나는 그들의 질서정연한 행진을 여러 차례 관찰하곤 했다.

군대개미, 특히 에사이튼 군대개미는 눈으로 찾는 것보다 귀로 찾는 것이 더 빠르다. 아침 나절 10시쯤 숲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마치 장터로부터 들리는 듯한 시끌벅적한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군대개미를 따라 다니는 이른바 개미새들(ant birds)의 흥분된 소리다. 이들은 군대개미에게 놀라 갈팡질팡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온갖 풀벌레들을 잡아 먹는다. 이 소문난 잔치는 또 개미새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의 배설물에 내려 앉아 포식하는 날렵한 날개를 가진 개미나비들은 물론 행군하는 개미의 목 뒤를 습격하여 알을 낳으려는 기생파리들의 잉잉거리는 소리로 늘 왁자지껄하다. 참으로 볼만한 장관이다.

바퀴벌레, 딱정벌레, 메뚜기, 거미들을 비롯해 심지어는 전갈까지, 인해전술로 유명한 군대개미를 피할 길이 없다. 노획물들은 대충 몇 토막으로 잘린 후 즉시 후방으로 운송되고 군대의 행진은 계속된다.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거의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폐허만 남는다.

이렇듯 가는 곳마다 쑥밭을 만드는 지나친 파괴 습성 때문에 개미군대 역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늘 떠돌아 다녀야 한다. 어느 양지바른 곳을 택하여 굴을 파고 그 속에 고도로 조직화된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사는 다른 개미들과는 달리, 군대개미는 일정한 집이 없이 늘 끊임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한바탕 약탈이 끝나고 나면 야영막사를 짓고 밤을 지샌다. 말이 야영막사지 사실상 천막을 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개미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만든 몸의 휘장 속에 동료들이 들어 앉고 제일 가운데에는 애벌레들과 여왕이 잠자리를 편다. 이렇게 만들어진 야영막사는 대개 그 무게가 1kg에 달하고 적어도 50만 마리의 개미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미군대의 야영.일개미들이 손을 맞잡고 휘장을 만든 모습이다.이 속에 애벌레와 여왕,그리고 동료들이 들어 앉는다.
 

4가지 군사 계급

아침이 되어 먼동이 터오면 모두 잠에서 깨어나 다시 길을 떠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행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듯 싶으나, 일단 약탈을 시작하면 시간당 약 20m의 속도로 질서정연하게 전진해 나간다. 에사이튼 군대개미의 경우 종에 따라 행군과 약탈의 수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예를 들어 에사이튼 버첼리는 종대로 행진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채꼴로 퍼져 넓은 지역에 걸쳐 약탈을 벌인다. 그러나 다른 종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작은 행렬들로 갈려 앙상한 나뭇가지 형태를 유지하는 것으로부터, 그런 가지 끝에 종종 작은 부채 모양으로 펼치는 것까지 사뭇 다양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개미들이 다 나름대로 대단히 효율적인 포식동물들이기는 하나, 그들이 포획할 수 있는 먹이에는 한계가 있다. 혼자서도 잡아 운반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먹이여야 하거나, 조금 큰 것이라도 한 곳에 잡아두고 동료들을 불러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군대개미는 그럴 필요가 없다. 막강한 숫자의 일개미들이 늘 현장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큰 먹이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 그들의 행군 속도보다 빠르게 피할 수 있는 운동성을 지니고 있거나, 몇몇 종류의 진드기(ticks)와 막대벌레(stick insects)처럼 자신의 냄새를 변화시킴으로써 화학적으로 위장하여 들키지 않을 재주가 없다면, 그들이 지나는 길목에 서있던 동물들은 모두 어김없이 그들의 제물이 되고 만다.

에사이튼 군대개미의 행렬을 지켜 보노라면 비교적 작은 몸집을 가지고 대부분 앞만 보고 전진해가는 검은 일개미들 사이로 가끔 훨씬 큰 몸집에 옅은 색깔을 지닌 대형 일개미들(majors)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삼복 더위 얼음 공장에서 큰 얼음 덩어리를 집어 올릴 때 쓰는 집게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턱을 가진 그들은 실제로 먹이를 포획하거나 운반하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고 동료들을 다른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군대개미 사회의 병정개미들이다. 낫처럼 둥그렇게 휘어 있고 날카로운 그들의 턱은 아예 먹이를 운반하는 일엔 적합하지 않게 되어 있다.

군대개미의 일개미들은 대형 일개미를 포함하여 크게 네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 일개미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머리나 가슴 부분이 비교적 옅은 색깔을 띠는 버금대형 일개미들(submajors)은 주로 포획한 먹이를 후방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의 턱은 대형 일개미의 턱과는 달리 물건을 집어 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

대형 일개미와 버금대형 일개미는 실제로 가뭄에 콩나듯 보일 뿐이고 군대의 대부분인 약 3분의 2 정도는 모두 중형 일개미들(media)이다. 이들은 거의 모든 작업에 고르게 종사하는 일반 노동자들이지만 몸집의 크기가 적합하여 번데기나 애벌레를 운반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포획한 먹이를 후방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담당한 버금대형 일개미.물건을 잘 집어올릴 수 있도록 턱이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재선에 승리하려는 몸부림

중형 일개미보다 더 작은 소형 일개미들(minors)의 주임무는 지나치게 비대한 몸 때문에 거동조차 불편한 여왕을 돌보는 일이다. 군대개미의 여왕개미는 혼인비행을 하지 않는다. 대신 수캐미들이 번식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집을 떠나 다른 집안으로 장가를 든다. 군대개미의 수캐미들은 여왕개미와 비슷한 크기의 몸집을 지니며, 다른 개미 종들과는 달리 일단 장가를 들면 여왕개미처럼 날개를 끊어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그것도 무시무시한 일개미들의 눈을 피해 잠입해야 하기 때문에 여왕개미와 흡사하게 진화했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몸은 여왕개미 만큼이나 많은 분비샘으로 가득 차 있다. 여왕개미는 분비물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냄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일개미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군대개미의 수컷도 이를 흉내낸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에사이튼 군대개미는 약 35일 주기로 방랑생활과 정착생활을 반복한다. 한 15일간 방랑생활을 하고 난 후 야영막사를 짓고 알을 낳아 차세대 일개미들을 양육한다.

이때 여왕은 약 10만 내지 30만개의 알을 낳는데, 그들이 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20일 정도다. 이런 주기를 여러번 반복하다 조직이 너무 거대해지면 어느 날 두 집안으로 갈린다. 슬며시 찾아든 수캐미들과 정사를 나눈 젊은 여왕들은 제가끔 군대의 선봉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가장 힘센 두 여왕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군대의 반씩을 끌고 전진하고, 뒤쳐진 여왕들은 몇몇 일개미들에 의해 후방에 억류돼 죽어간다. 정권을 쥐고 있던 현 여왕도 이 경쟁에서 낙오되면 가차없이 희생되고 만다. 재선을 위해 항상 힘을 구축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군대개미가 행진하는 모습.종대로 진군하다 어느 순간 부채꼴로 퍼지거나(오른쪽)나뭇가지 모양을 유지한다(왼쪽).가지 끝에 작은 부채꼴을 만드는 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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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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