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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은 떨어지는 폭탄도 잡는다

김 탐정의 소음 제거 프로젝트

“삐리리리~, 삐리리리~”

무슨 일이든 해결하는 김 탐정의 자명종은 오늘도 여지없이 6시 45분에 시끄럽게 울어댄다. 뒤척이는 시간 9분과 세면하는 시간 6분을 더하면 정확히 7시가 된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하는 필리어스 포그만큼이나 시간 관리가 철저하다. 세수하고 나서는 e메일을 확인하는 게 버릇이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김 탐정의 피엠피(PMP)에 e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다. 발신자는 ‘국가비밀연구소’라고 돼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폭격기를 제작했음. 실험 도중에 문제가 발생함. 레이더를 피해 목표에 다가갔으나 정작 폭탄이 비행기 밖으로 떨어지지 않음. 16시까지 문제 해결 바람.’

현재 시각 오전 7시 45분.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김 탐정은 세계 모든 탐정들의 컴퓨터가 연결돼 있는 탐정인포넷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폭격기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같은 발신자의 e메일이 하나 더 도착했다.

‘N-7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소리잡는 과학자를 만나다

탐정인포넷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가 검색됐다. 비행체에 관한 내용이라면 뭐든 알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대전 도착시각 11시 15분. 문제 해결까지 4시간 45분밖에 남지 않았다. 서둘러 항공우주공학과를 찾아가던 김 탐정은 깜짝 놀랐다. 항공우주공학과 건물에 ‘N-7’이라고 표시돼 있는 게 아닌가.

김 탐정은 뭔가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건물과 주변을 꼼꼼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상한 장소 한 곳을 발견했다. 커다란 나팔을 달아놓은 듯이 보이는 희한한 실험실이 있었다.

“여기가 뭐하는 데죠?”

“어떤 물체에 바람을 불어서 소음을 내고, 발생시킨 소음의 크기를 측정하는 실험실이에요. 음파가 벽에서 반사하지 못하도록 흡음장치를 해놓아서 무향풍동실이라고 하죠.”

바람을 이용한다는 말에 김 탐정은 눈이 동그래졌다. e메일의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 탐정은 KAIST를 찾아온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했다.

“마침 잘 오셨네요. 제가 문제를 해결해 드리죠.”

무향풍동실에서 만난 사람은 항공우주공학과 이덕주 교수였다. 그는 소음제어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일명 ‘사운드마스터’(Sound master)로 불린다.

“일단 풍동실로 들어오시죠. 먼저 소음에 대해 알려 드릴게요.”

무향풍동실은 바람을 일정한 속도로 보내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어떤 물체를 놨을 때 바람이 물체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확인하는 곳이다. 소리는 다른 말로 ‘음파’다. 공기가 어떤 압력을 받아 압축되면 다시 팽창한다. 그리고 인접한 공기를 압축시키고 또 팽창한다. 이런 움직임은 공기를 매질로 음속(20℃, 초속 340m)으로 전파하고 사람은 귀로 소리를 느낀다.

“그럼 문제를 해결해 드리죠. 이 그림을 잘 보세요.”

이 교수는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은 그림을 하나 그렸다. 네모로 파인 웅덩이 모양이다.

“이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바람이 앞쪽 모서리를 지나면서 공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갑자기 넓어집니다. 그러면서 웅덩이 안에는 소용돌이가 생기죠.”

무향풍동실에서 실험 중인 이덕주 교수. 손에 들고 있는 막대는 바람길에 놓아 소리를 일으키는 도구다.


문제의 실마리는 네모 구덩이

소용돌이는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는 공기 덩어리가 회전하면서 만들어진다. 소용돌이가 어떤 물체와 충돌하면 회전운동을 방해받는다. 그러면 소용돌이에 부딪힌 물체 표면은 진동하면서 음파를 발생시킨다.

“소용돌이가 뒤쪽 모서리에 부딪히면 음파가 발생합니다. 음파는 앞쪽 모서리로 전파되고 공기의 흐름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어 소용돌이가 더 강해집니다.”

결국 소리가 소용돌이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폭격기와 무슨 상관인가요?” 김 탐정이 물었다.

“이 그림을 뒤집어 보세요. 움푹 파인 웅덩이는 폭격기의 내부와 같습니다. 실제 폭격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죠. 음파 때문에 강한 소용돌이가 생겨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폭격기에 있는 폭탄이 아래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웅덩이처럼 생긴 폭격기 내부에서 강한 소용돌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한 소용돌이를 만드는 원인은 음파인 ‘소음’ 때문이었다. 결국 소음을 줄이면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폭탄을 쉽게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다.

“비행체에서 만들어지는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능동소음제거기술(Active Noise Control)을 씁니다.”

소음은 일정한 진폭과 파장을 갖는 음파다. 진폭과 파장 크기는 같고 위상이 반대(180°)인 음파를 중첩시키면 서로 상쇄돼 파동은 사라진다. 따라서 여러 가지 소음이 섞여 있어도 특정한 소음만 골라서 없앨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파동의 경우에는 반대위상의 음파를 만들기가 어려워 소음을 완전히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 탐정은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밝혔다. 현재 시각 15시 25분. 이 교수에게 들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해 문제의 e메일에 답변을 보냈다.

웅덩이 소음(Cavity Feedback Noise)^웅덩이 위로 바람이 지나갈 때 생기는 음파를 그렸다. 바람이 부딪힌 표면이 진동해 음파가 발생하고 음파는 공기 소용돌이를 더 크게 만든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더 큰 소음이 발생한다.


스텔스가 집으로 들어온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김 탐정의 자명종은 오늘도 6시 45분에 시끄럽게 울어댔다. 어제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해결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역시 버릇처럼 e메일을 확인했다. 문제를 잘 해결했으니 국가비밀연구소에서 혹시 포상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면서.

“아직 끝나지 않았음. 스텔스가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야 한다.”

역시 발신인은 어제와 같았다. 김 탐정은 짜증이 나긴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다시 탐정인포넷에 접속했다. 스텔스는 항공기나 미사일이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군사기술을 말한다. 검색을 하던 김 탐정은 뜻밖의 정보를 찾았다.

‘스텔스 소음제로 프로젝트. 청소기 소음을 최대한 줄이는 삼성전자 가전연구소….’

“집안으로 들어온 스텔스라면 혹시….”

김 탐정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삼성전자 가전연구소로 향했다.

“네. 스텔스는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최대한 줄이는 저희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삼성전자 기술연구소의 주재만 박사와 이준화 박사가 김 탐정을 반갑게 맞이했다.

“진공청소기는 소음은 보통 70dB(데시벨) 정도죠. 저희는 청소기 성능은 높이고 소음은 59dB까지 낮추는 연구를 했습니다.”

보통 음파는 10dB 늘어날 때마다 소리 세기가 2배씩 늘어난다. 청소기 소음을 10dB 줄였다면 소리 세기는 반으로 줄였다는 말이다.

“모터만 떼어 작동시키면 100dB 정도 소음이 납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정도죠. 청소기 소음을 줄이기 위해 공기가 지나가는 각 부분을 따로 연구했습니다. 먼저 모터 자체에서 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모터를 덮어 싸는 특수 구조물을 만들고, 바람을 일으키는 모터 팬을 공기를 잘 일으키면서 소리가 작은 모양으로 다시 설계했습니다. 부분에 따라서는 흡음제를 사용해 소리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공기를 회전시켜 먼지를 분리해 모으는 집진장치 역시 공기 흐름을 고르게 해 소음을 줄였습니다.”

공기가 청소기 내부를 움직이면서 생기는 것이 소음이므로 청소기는 좋은 소음 실험도구다. 물론 모터를 약하게 돌리면 소음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들이는 게 목적인만큼 모터의 성능은 그대로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청소기의 소음을 제거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스텔스 청소기 소음제거^청소기는 일종의 소음발생장치다. 공기는 청소기 내부의 각 부분을 지나가면서 소음을 낸다. 부분에 따라 각각 다른 소음제거 방법을 써야 한다.


감성을 흔드는 소음제어 기술

“무조건 줄이는 게 좋은 건 아니죠. 소리가 너무 작으면 청소가 잘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먼지가 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소리가 나도록 연구하고 있어요.”

이준화 박사는 “소음도 듣기 좋게 디자인한다”며 이것이 ‘감성 소음’(sound quality)이라고 설명했다. 청소기 소음(59dB)을 도서관 소음(45dB) 2배 정도로 맞춘 것도 그런 이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이 모터사이클의 배기음을 말발굽 소리처럼 나도록 해서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만들었고, 시리얼 제조회사 캘로그에서는 씹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도록 해서 먹고 싶은 충동을 높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박사는 “수천 개의 형용사 중에서 ‘시끄럽다’‘날카롭다’‘짜증난다’와 같은 형용사를 정리해 15개 정도로 간추려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음 실험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익숙하고 기능에 맞는 소리를 찾아 가전제품에 응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찾아낸 소리를 ‘타겟 사운드’(target sound)라고 부른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은 성능이 더 나은 자국의 제품보다 독일 가전기기 제조회사인 밀레의 청소기를 선호한다. 할머니부터 써온 청소기의 모양과 소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청소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성에 맞는 소음을 찾아 디자인해야 한다. 사람의 감성에 맞춰 과학기술이 진보하는 셈이다.

김 탐정은 진공청소기 소음을 줄이는 방법과 감성소음에 대해 정리해 다시 국가비밀연구소라는 곳으로 e메일 답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이제 무슨 상이라도 주겠지!”

그 다음날 김 탐정은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답장이 도착했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e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삼촌! 놀랬죠? 학교에서 갑자기 소음 줄이는 방법에 대해 숙제를 해오라잖아요. 덕분에 학교 숙제 잘 했어요. 삼촌, 사랑해요~!”

김 탐정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다시 침대로 갔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를 악물고….

스텔스 프로젝트 수석연구원인 주재만 박사. 마이크로폰이 장착된 인형으로 소음측정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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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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