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심리적이건 육체적이건 성적 자극을 받으면 성기뿐만 아니라 전신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난다. 성교가 시작되기 전부터 종료될 때까지 성적 자극으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를 성반응(sexual response)이라고 한다. 성반응은 남녀노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더욱이 성행위는 두 사람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3자가 성반응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성반응과 오르가슴
성반응 연구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창시한 미국의 존 왓슨이다. 그는 1917년에 자신과 여자를 계측장비에 연결해놓고 성교 도중에 발생하는 생리적 반응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내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이혼법정에서 망신을 당했으며 교수직을 잃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불가능해보이는 성반응 연구에 도전하여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내놓은 인물은 미국의 윌리엄 마스터즈와 버지니아 존슨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마스터즈는 1954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는데, 심리학자인 존슨은 조수로 참여했다가 나중에 아내가 되었다.
이들은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한 덕분에 남자 3백12명과 여자 3백82명을 대상으로 성반응을 연구했다. 마스터즈 부부는 측정장치를 부착한 6백94명에게 실제로 성교와 수음을 시키고 무려 1만회 가까이 성반응 주기를 관찰했다. 특히 여자의 경우 그들이 인공성교라고 명명한 별난 방법까지 동원했다. 카메라가 부착되고 불이 켜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음경을 질 안에 삽입한 상태에서 여자에게 수음을 시켜놓고 질 내부의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1966년에 마스터즈 부부는 10여년 간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인간의 성반응’을 내놓았다. 이 책은 20세기 성과학이 거둔 최대 성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마스터즈와 존슨에 따르면, 인간의 성반응 주기는 흥분, 고조, 오르가슴 및 회복의 네 단계를 거친다. 성적 자극을 받으면 자율신경이 흥분하여 성기의 혈관이 충혈된다. 그 결과 남성은 음경이 발기하고 여성은 질이 점액을 분비하여 축축하게 젖어들면서 입구가 확대된다. 흥분기가 지나서 고조기로 접어들면 흥분이 높은 수준에서 수분 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오르가슴에 이르게 된다. 회복기에는 성적 흥분이 사라지면서 음경은 위축되고 질은 원상으로 되돌아간다.
오르가슴은 극단적 쾌감을 불러내는 성적 경험의 절정 상태이다. 남자의 경우 오르가슴이 임박하면 항문 괄약근(括約筋)의 수축이 0.8초 간격으로 시작되고, 근육 수축에 따라 발생하는 세찬 압력에 의해 정액이 단숨에 요도를 통과하여 음경 밖으로 사출된다. 또한 전신에 분포되어 있는 신경이 흥분하고 근육의 경련이 일어난다. 오르가슴은 성기 따위에서 발생하는 국부적 현상이 아니라 성적 흥분에 의해 극도로 긴장된 전신의 근육과 신경이 단번에 이완되는 바로 그 순간의 상태인 것이다.
오르가슴은 사정할 때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정이 오르가슴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허리 아래가 마비된 신체장애자도 가끔 음경이 발기해서 극치감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사정하는 수가 있고, 사정능력이 없는 사춘기 이전의 소년들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남자의 오르가슴은 반드시 사정의 결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자는 오르가슴이 다가오면 질의 바깥쪽 3분의 1이 부풀어오르고, 오르가슴에 도달하면 이 부위의 근육이 2-4초 동안 수축하면서 근육경련을 일으킨다. 남자처럼 항문 괄약근과 함께 질이 0.8초의 간격을 두고 수축을 거듭한다. 이러한 율동적인 수축은 오르가슴을 한번 경험할 때마다 대개 3-15회쯤 되풀이된다.
비성교 오르가슴의 다양한 형태
오르가슴은 남녀가 성교할 때 맛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성교 이외의 행위에 의해 오르가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적어도 네 가지가 있다. 이른바 비성교 오르가슴에는 자발적 오르가슴, 수음, 이성간 또는 동성간의 신체자극에 의한 오르가슴이 있다.
자발적 오르가슴은 대개 사춘기 시절에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 경험하게 된다. 어떠한 직접적인 물리적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오르가슴이다.
남녀 공히 절반 이상이 첫경험하는 오르가슴은 상대가 필요 없는 수음으로 획득된다. 손으로 성감대를 자극하여 손쉽게 극치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음경 아랫면, 여성의 질과 음핵(clitoris)따위의 성기뿐 아니라 젖꼭지, 입술, 항문, 귓구멍 등 트인 부분과 그 주변이 성적 자극에 민감한 성감대로 손꼽힌다. 남자는 손으로 음경을 자극하는 방법을 애용하지만 여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음을 즐긴다. 대부분 손가락을 질의 내부에 삽입하는 대신에 음핵을 문지른다.
이성간에 성교를 하지 않고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손으로 상대방의 성감대를 자극하거나 음경을 질 이외의 부위에 비비면서 사정한다.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도 방법이 된다. 구강 성행위에는 펠라티오(fellatio)와 쿤닐링구스(cunnilingus)가 있다. 항문성교는 동성애하는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기기 쉽지만 적어도 10%의 미국 가정주부가 정기적으로 남편의 성기를 항문에 삽입시키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가 나와 있다. 동성간에 상대방을 자극하여 오르가슴을 경험할 때에는 남자는 주로 항문성교를 하며 여자는 음핵을 손으로 자극한다.
음핵 진화의 파라독스
이와 같이 성교 이외의 행위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드시 성교에 의해서, 그리고 반드시 성교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오르가슴이 반드시 생식에 필요한 기능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오르가슴과 성교의 분리는 오르가슴의 기능에 대해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여러 학자에 의해 여자들이 질보다는 음핵으로 더 자주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가 1953년에 발표한 ‘킨제이 보고서’(Kinsey Report)에서는 대부분의 미국 여자들이 성교 도중에 음핵을 자극하지 않고서는 절정감을 느낄 수 없었음을 밝혀냈다.
1976년에 세어 하이트가 내놓은 ‘하이트 보고서’(Hite Report)에 따르면, 3천명의 미국 여자 중에서 79%가 음핵을 자극하는 수음을 즐겼으며 성교시에 오르가슴을 얻는 빈도는 겨우 30%에 머물렀다. 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대다수 여성들이 수음이건 성교이건 음핵의 자극 없이는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어려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음핵은 크기, 형태, 위치에 큰 차이가 있지만 영장류 암컷은 거의 모두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태아의 동일 조직이 호르몬에 의해 음경 또는 음핵으로 분화된다. 태아의 다리 사이에 있는 조직이 수직으로 뻗어나서 음경이 되거나 수평으로 움쑥 들어가서 음핵이 된다. 따라서 음경과 음핵은 똑같이 성적 자극에 민감하다. 그러나 그 기능은 완전히 다르다. 음경은 생식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지만 음핵은 생식에 쓸모가 없고 오로지 성적 쾌감을 위해서 존재할 따름이다.
음핵에 의한 오르가슴은 생물진화의 개념에서 볼 때 하나의 파라독스가 아닐 수 없다. 진화는 다른 개체보다 자손을 더 많이 생산하려는 유기체 사이의 경쟁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성적 쾌감 또한 생식의 성공을 위해 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논리는 남자에게 제대로 적용된다. 남자의 성적 쾌감은 성교 도중에 음경이 생식을 위해 필요한 정자를 사출할 때 정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자의 성적 쾌감 역시 임신을 시도하는 행동인 성교가 진행되는 질을 통해 획득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생식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음핵을 자극하여 오르가슴을 맛본다.
적응인가 우연인가
질보다는 음핵에 의존하는 여성 오르가슴의 특이성 때문에 오르가슴의 기원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동물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화제작인 ‘털없는 원숭이’(1967)에서 여자의 오르가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득이 있으므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오르가슴은 한쌍의 남녀관계를 결속시켜준다. 성교 도중에 여자들이 오르가슴을 통해 남자 못지않은 수준으로 성적 쾌감을 보상받는다면 여자들은 성교할 때마다 짝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이러한 여자에게 매료된 남자는 바람을 덜 피우게 되므로 오르가슴은 부부관계를 강화하고 가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오르가슴은 임신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여자가 걸을 때 질의 각도는 거의 수직에 가깝다. 따라서 성교 직후에 여자가 서서 움직이면 대부분의 정액이 질 밖으로 나와서 허벅지로 흘러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액을 질 속에 담아두려면 남자가 사정을 마치고 성교를 끝낸 뒤에 여자가 수평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여자를 누워있게 하려면 성적으로 만족해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자가 기진맥진해서 녹초가 될만큼 격렬한 오르가슴을 느끼면 피로하고 졸음이 와서 계속 누워있을 것이다. 결국 정액이 질 밖으로 덜 흘러나오기 때문에 수정될 기회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이 주로 밤에 성교를 하고 곧장 잠들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오르가슴이 일거양득의 이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리스의 견해는 오르가슴을 인간이 환경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진화시킨 적응의 산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르가슴을 적응의 결과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도널드 시몬스이다. 그는 1979년에 펴낸 ‘인간 성의 진화’ 라는 책에서 음핵을 남자의 젖꼭지에 비유했다. 남자의 젖꼭지는 여자의 그것과는 달리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여자의 젖꼭지가 아이에게 젖을 빨리는 중요한 기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남자에게 젖꼭지가 달려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젖꼭지는 그 기능이 어떻든 남녀에게 똑같이 주어진 신체기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 젖꼭지가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남자의 젖꼭지가 덤으로 붙어있다는 것이다.
시몬스는 젖꼭지의 논리를 음핵에 적용했다. 음핵은 음경과 함께 태아의 같은 조직에서 분화되었다. 음경은 사정으로 오르가슴을 달성하는 생식기로 진화되었다. 말하자면 음경은 적응의 산물이다. 그러나 음핵은 생식을 위해 성교에 개입하지는 못하면서 오르가슴을 제공한다. 요컨대 음핵은 생식을 위해 진화되지는 않았지만 음경 덕분에 덩달아 오르가슴 기능을 갖게된 우연의 산물이다. 시몬스의 논리에 따르면, 남자의 젖꼭지나 여자의 음핵은 이성의 몸에 있는 짝의 기능이 진화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존재하게 된 진화의 부산물인 셈이다.
임신 가능성 높여준다
1981년 인류학자인 사라 홀디는 모리스와 시몬스의 주장을 일축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여성의 오르가슴과 생식이 분리된 까닭을 유아살해(infanticide)에서 찾은 이론이다. 여자가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 배란이 되지 않아서 아무리 성교를 하더라도 임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들은 자신의 자식을 갖지 않은 여자의 어린애를 보면 곧잘 살해했다.
잔인한 수컷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연약한 암컷이 생각해낸 전략은 가능한 한 많은 수컷들이 그녀의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발한 무기는 배란의 은폐와 적극적인 성행동이었다. 배란기를 모르고 성교를 함에 따라 수컷들은 암컷의 새끼라면 자신의 자식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암컷이 여러 수컷들과 생식보다는 성교 자체를 즐기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은 성교에서 받는 보상, 즉 오르가슴이었다. 오르가슴은 결국 암컷이 밤낮으로 성교에 탐닉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다. 홀디의 이론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일부일처의 결속보다는 난잡한 성관계를 고무하기 위해서 진화되었다는 측면에서 모리스의 이론과 정반대이며, 암컷이 수컷으로부터 자신이 낳은 새끼를 기르는데 필요한 양육투자와 보호를 얻어내기 위해 진화된 적응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시몬스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오르가슴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그 밖에도 여러가지가 더 있지만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오르가슴이 비록 생식과 분리되어 있지만 임신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두 개의 이론이다. 하나는 모리스가 제안한 바와 같이 오르가슴이 여자를 성교 직후 누워있게 만들어서 정액의 손실을 줄여준다는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가슴이 정액을 흡인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다. 흡인이론에 따르면,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면 자궁이 수축하므로 자궁 내부의 압력이 증가된다. 이러한 압력의 증가로 여자의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질에 있는 정액을 더 많이 자궁 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수정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오르가슴은 문화적 발명품
여성의 오르가슴은 음핵의 물리적 자극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는 강간을 당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또 매춘부들이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여성의 오르가슴이 음핵의 생리적 기능 못지 않게 여성의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성 오르가슴이 문화적 산물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여자의 성욕을 죄악시하고 여자를 남자의 성적 노리개로 삼는 문화에서는 여자의 성을 철저히 억압한다. 예컨대 회교가 득세하는 아랍국가의 여자들은 금욕을 강요받고 있다. 아프리카 일부 부족 사이에는 음핵절제(clitoridectomy)와 음순봉합(infibulation)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음순봉합은 음핵을 제거하고 주변 조직을 난자한 다음에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음순이 서로 붙게 하는 외과적 수술이다.
한편 오르가슴을 남녀가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쾌락으로 높이 사는 사회에서는 여자의 오르가슴을 소중한 문화의 발명품처럼 다룬다. 남태평양에 소재한 쿡 제도의 하나인 망가이아(Mangaia) 섬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 섬의 여인들은 성교 중에 2-3회의 오르가슴을 만끽한다. 남자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성인이 되는 일련의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성교 경험이 풍부한 늙은 부인네들로부터 여자에게 최고의 성적 쾌락을 안겨주는 비법을 실습을 통해 전수받는다. 만일 여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사내는 섬사회로부터 신분상실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된다. 망가이아 섬사람들은 남녀노소가 선진국의 성의학 전문가 못지 않게 성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