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뚜렷하구요….” 어린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이렇게들 대답한다. 바로 이런 기후 덕분에 한반도에는 4천여종이 넘는 식물이 분포한다. 2000년 과기부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발족된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최근 남북한을 아우르는 식물지를 작성할 연구계획을 세워 화제다.
식물지는 특정한 지역에서 자연상태로 발생하고 자라는 모든 자생식물을 학술적으로 면밀히 분석한 다음 그 내용을 영어로 기록한 전문 학술지다. 식물에 대한 생태학, 분류학, 생화학, 지리학적 정보를 총망라해 적고 직접 모양을 그려넣는다. 때문에 식물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추가한 일반적인 사전이나 식물도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웃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가 자국의 자생식물에 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만든 식물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식물지는 아직 없다. 식물지를 제작하려면 모든 식물학자들이 뜻을 모아야 하고 적어도 수십년 간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남북한으로 분단돼 있는 현실이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식물지’가 있긴 하지만, 이는 나카이라는 일본인 박사의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에는 이미 식물지가 있다. 얼마전 초판을 개정해 증보판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식물지 제작에서만큼은 북한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로 돼 있어서 국제적인 자료로서는 미흡한데다가 남한의 식물은 조선식물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이에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 북한 식물학자와 함께 식물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정혁 단장은 “지난해 말 평양에 갔을 때 북한식물자원연구센터의 김 원장도 공동 식물지 제작에 대해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식물자원 활용을 위한 남북공동연구개발사업’이라는 명칭의 이번 계획에는 연구에 필요한 재료나 기자재를 제공하는 형태로 북한에 연구비를 전달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 단장은 “남한 과학자들이 올봄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의 자생식물을 조사할 예정”이라며 “이 계획이 꼭 실행되길 희망한다”는 바램을 나타냈다. 남한 과학자들의 방북 후에는 북한 과학자들이 한라산을 비롯한 남해안 지방의 자생식물을 조사하러 올 계획이다.
그러나 국제정세나 남북관계의 향방에 따라 방문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제식물분류학회에서 정한 절차와 규격에 맞는 식물지를 제작하려면 갈 길이 아직 멀다.
식물에서 약용성분을 추출한 사례가 많았으니 이 연구가 장차 신약개발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국경 없이 자유롭게 자라는 식물처럼 과학자들이 남북한을 오가며 5-6년 후 한반도 식물지 완성이라는 결실을 맺는다면 뜻깊은 남북협력 연구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