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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하느님의 유머감각에 탄복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숲 속에서 작은 새가 깃털을 쫙 펴고 구애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새가 갑자기 몸을 홱 돌려 뒷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푸하핫’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새의 가슴팍에 딱 사람의 눈처럼 생긴 깃털이 “어때, 이만하면 꽤 웃기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미물도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조건에 맞는 이성을 만나 그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본능인 셈이다.



외모 보는 검은 게 vs. 능력 보는 하얀 게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이야기 속 미스터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주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때로는 프랙탈 이론처럼 하나의 실마리가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특히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일수록 자연은 곧잘 해답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그것도 매우 재미있는 방식으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탐색할 때만큼 본능에 충실한 순간도 없다. 대개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고 여자는 남자의 조건에 먼저 반응한다. 흥미로운 점은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따지는 건 그다지 흉이 되지 않는데 여자가 남자의 조건을 따지는 건 온당치 못한 행동으로 매도당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아름다움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지만 조건에 끌리는 건 계산적인 태도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이런 태도 역시 본능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바로 달랑게 이야기다.



오만 무스카트 해변에는 두 종류의 달랑게가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눈이 까만 플라티타서스 달랑게한 종류는 눈이 하얀 사라탄 달랑게다. 이 달랑게들은 눈 색깔뿐 아니라 구애 방식도 크게 다르다. 플라티타서스 달랑게는 암컷을 유혹할 때 긴 다리로 멋지게 춤을 춘다. 춤을 잘 추는 게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야 나중에 그처럼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낳을 수 있다. 플라티타서스 달랑게를 보면 남자고 여자고 이성에게 매혹당하는 이유로 상대방의 ‘준수한’ 혹은 ‘아름다운’ 외모를 드는 것은 본능에 따르는 행동이다.





반면 사라탄 달랑게는 한가하게 춤이나 추고 있을 여유가 없다. 해변 깊숙이에 집을 만들고 거기에서 나오는 모래흙으로 멋진 산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이 높고 멋질수록 암컷이 찾아올 확률이 높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단순히 산이 높고 멋지다고 해서 암컷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암컷은 반드시 직접 안으로 들어가 꼼꼼하게 집의 상태를 살핀다. 그리고 자기가 알을 낳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상대방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암컷은 수컷이 가진 조건을 요리조리 완벽하게 따져본 다음 자기 태도를 결정한다.



필자는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보다가 실소를 참지 못했다. 작은 게의 세상도 인간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요즘 일부 젊은 여성들이 외모, 돈, 학벌 등 남자의 외적인 조건만을 따진다는 이유로 사회적 매도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달랑게의 삶은 그것이 매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실 자신의 평생을 걸고 결정해야 할 일인데,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그 편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물론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져볼 일은 따져볼 수밖에 없고 그런 행동은 본능에 기인한다. 저 조그마한 달랑게의 세계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의 마음



우리는 흔히 자식 혼사를 두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부모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물론 그런 부모의 처사가 온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면에서 조건을 따져보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역시 자식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일이다. 아직 미혼인 젊은 의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병원을 개업하기 전까지는 자식 혼사를 두고 따지는 것이 많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부모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런 깨달음을 준 것은 강아지였다.



병원에서 다정하게 돌보던 개가 새끼를 낳으면 입양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냥 덥석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강아지를 데려다가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을지, 집 안팎의 환경이 강아지가 지내기에 알맞은지, 혹시라도 어릴 땐 예쁘다고 키우다가 다 자라면 귀찮다고 마당 한구석으로 내몰지는 않을지 이것저것 따져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선뜻 입양을 결정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식 혼사 문제에 걱정이 많은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 말했다.



자식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 역시 본능이 아닌가 싶다. 남녀관계 또한 조건을 따진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평가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본능 외에도 서로에게 반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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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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