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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스탠퍼드 유학시절 교정에서.


경남 남해 섬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는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박사학위는 미국에서 받았으니 계속 대처로 진군한 셈이다. 1963년 대학 이후 지난 33년 동안을 돌아다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필자는 대학을 입학할 때 당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간다는 화공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화공과의 인기는 그후 10년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너무 인기학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설교를 하고 다닌다. 하지만 필자의 진솔한 경험적 충고를 듣지 않고 필자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학생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미국 유학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처럼 쉬울 줄 알고 유학을 떠났다가 전공은 물론 영어도 제대로 못해 큰 곤혹을 치뤘다. 1976년 귀국한 필자에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세계적인 학자가 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는 한국과학기술원 승진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전공분야에서 가장 좋다는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결과는 거절,. 그 울분은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다시 재심사를 요구해 논문게재 허가를 받았다. 그 후 외국의 저명 학술지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논문을 발표했다. 전공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다.

주변에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일류대를 나온 사람들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생의 노력을 100이 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고교 60, 대학 20, 대학 후 20 정도로 고교 시절의 노력을 크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은 고교 10, 대학 30, 대학 후 60등으로 대학과 대학 후의 노력을 중시한다. 고교때 노력해서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우리의 입시관습을 고치지 않고서는 국경없는 국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학기술원 학장 장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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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장호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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