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회사원 진혁(주지훈 분)은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케이크 숍을 차린다.
진혁은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서양골동품점을 개조해 수백만 원짜리 앤티크 식기에 케이크를 담아내오는 별난 케이크 숍 ‘앤티크’를 연다. 그리고 업계 최고의 파티셰인 선우(김재욱 분)까지 영입하며 가게는 순항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선우는 스스로를 여자로 믿으며 고교시절 진혁에게 사랑을 고백한 껄끄러운 존재다. 선우는 어떤 남자라도 자신에게 반하게 만드는 ‘마성의 게이’로 불리며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키고 급기야 진혁은 몇 달째 직원 한 명 구하기 힘든 지경에 빠지는데….
메디컬 평점 ★★★☆☆ 케이크처럼 달콤한 남자들의 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일본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원작 만화는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남자들의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고 해서 화제를 낳으며 일본에서 170만 부가 팔리는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에서는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케이크와 ‘꽃미남’ 배우들의 춤과 노래가 눈을 즐겁게 한다.
복서 포기하게 만든 망막박리

영화 초반, 최고급 케이크를 만들 파티셰를 구하던 진혁은 면접을 보러온 선우를 보며 고교시절 악몽을 떠올린다.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선우가 진혁에게 사랑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후 진혁과 선우는 멀어졌고 10년이 지난 뒤 케이크 숍 사장과 파티셰로 마주선 셈이다.
진혁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작은 동네 케이크 숍에 일류 파티셰가 올 리는 만무한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선우를 고용한다. 하지만 선우는 툭하면 남자 종업원과 스캔들을 일으켜 가게를 그만두게 만들고, 성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두 남자는 티격태격하며 겨우 가게를 꾸려간다. 선우는 왜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선우는 의학적으로 성적주체성 장애를 앓고 있다. 성적주체성이란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라고 느끼는 감정인데 생물학적인 남성, 여성과는 구별된다. 즉 성적주체성 장애는 해부학적(생물학적)인 성(性)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다를 때 나타나며, 자신의 해부학적인 성에 지속적으로 불편하고 부적당하다고 느끼거나 반대의 성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최소 2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성적주체성 장애는 만 4세 이전에 발병할 수 있으며 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경우가 많고 흔히 사춘기 후기나 성인기 초기에 뚜렷이 나타난다. 아직 성적주체성 장애의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에 장애가 있거나 내분비문제 또는 중추신경 장애로 발병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진혁과 선우가 종업원 한 명 없이 힘들게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터프한 성격의 중국집 배달원 기범(유아인 분)이 종업원이 되겠다며 가게를 찾는다. 처음엔 단순히 서빙을 할 생각이었던 기범은 케이크 맛에 반해 주방보조로 취직한다. 기범의 정체는 전직 최연소 동양챔피언 복서. 하지만 망막박리라는 병으로 복싱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과거가 있다.
기범이 앓고 있는 망막박리란 시각세포가 분포하는 망막 조직이 주변 조직과 분리되는 병을 말한다. 즉 카메라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이 안구 벽에서 떨어져 나간 병이다. 이 때문에 시각세포는 빛을 인지할 수 없고, 망막박리 면적이 넓어지면 마치 눈앞에 검은 장막을 친 것처럼 느낀다. 증상이 심해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권투나 축구 등 격렬한 스포츠 종목에서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눈이 충격을 받아 망막박리가 일어날 수 있다.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도 조금만 방치하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일본 복싱협회에선 한번 망막박리가 일어난 선수를 두 번 다시 링에 설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범이 권투를 그만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사실 망막에는 시각세포가 밀집해 있어 망막질환은 작은 병이라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가령 당뇨병 합병증 중에는 망막증식증이란 병이 있는데, 망막에 신생혈관이 증식하면서 시각세포를 방해해 시력을 떨어뜨리는 증상이다. 당뇨병으로 인한 망막증식증은 이미 현대인이 시력을 잃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망막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안과를 찾아 검진을 받아야 한다.
350kcal의 유혹, 달콤한 케이크

영화에서 진혁이 케이크를 먹으면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혁은 어릴 적 유괴당한 아픈 과거가 있는데, 유괴범이 끼니마다 케이크를 먹인 일이 화근이었다. 만약 진혁의 과거를 모른다면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먹은 음식을 토하는 폭식증으로 오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폭식증 환자는 주체할 수 없이 음식을 많이 먹다가도 체중이 늘어날 것이 두려워 억지로 구토하거나 설사제를 복용한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며 이뇨제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신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폭식증과 비슷한 병으로 거식증이 있다. 거식증 환자들은 살찌는 데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이미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거식증 환자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데, 심한 경우 극심한 영양 결핍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사무직에 있는 성인 남자(64kg)의 하루 평균 섭취 열량은 2200kcal, 여자(53kg)는 1800kcal 정도가 적당하다. 흔히 케이크 한 조각의 열량은 약 350kcal인데, 이는 여성의 한 끼 식사에 해당하는 열량(600kcal)의 절반을 넘는다. 결국 케이크 한 조각만 먹어도 한 끼 식사의 50%가 넘는 열량을 추가로 섭취하는 꼴이 된다. 케이크를 매일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일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셈이다.
한편 케이크를 먹는 즉시 토하는 진혁은 매일 아침 악몽을 꾸면서 깨고, 남자들과 거침없이 연애를 즐기는 선우도 여자 앞에서는 벌벌 떠는 심각한 여성공포증을 앓고 있다. 멀끔한 겉모습과 달리 어두운 내면을 가진 그들은 내면의 병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자 앞에만 서면 무서운 공포증
진혁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잘 알려진 일종의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전쟁이나 지진, 추락 같은 극심한 위협을 느낀 뒤 외상후스트레스를 겪기 쉬운데, 자율신경계가 예민해져 잘 놀라고 잘 못자거나 자주 깨고 일단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면서 악몽에 시달린다. 대개는 사고 뒤 6개월 안에 회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진혁처럼 수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는 조기발견, 조기치료 그리고 일상생활로 조기복귀가 치료의 핵심이다. 즉 초기에 빨리 발견해 치료를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우가 겪는 공포증(phobia)은 특정 대상이나 행동, 상황에 공포를 느끼고 이를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병이다. 자신이 느끼는 공포가 불합리하고 실제로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억제할 수 없는 심한 공포가 일어난다.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행동요법의 하나인 탈감작요법이 흔히 쓰인다. 공포를 일으키는 자극의 크기를 아주 낮은 수준부터 시작해 환자가 이를 극복하면 점차 자극을 키우며 공포에 대한 환자의 감수성을 낮춘다. 정신분석치료나 약물치료도 사용되는데, 방법 자체보다는 환자가 얼마나 협조적인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고 알려졌다.
달콤한 케이크와 ‘꽃미남’ 4인방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 ‘앤티크’.
하지만 성적주체성 장애를 앓는 천재 파티셰와 망막박리로 권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전직 복서, 여자 앞에만 서면 공포심을 느끼는 몸짱 보디가드와 케이크만 먹으면 토하는 케이크숍 사장까지 이들의 내면은 상처투성이다.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