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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축구가 월드컵정상에 오른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은 메달을 딸 수 있을까. 최근 축구 종주국인 영국이 30년 축구의 한을 풀기 위해 카오스를 도입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축구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축구황제' 펠레. 그는 카오스를 창출했던 전설적인 축구 스타였다.


'유럽판 월드컵’ 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지난 6월 잉글랜드에서 열렸다. 우승의 영광은 톱니바퀴와 같은 조직력을 갖춘 ‘게르만 전차군단’ 독일이 ‘보헤미안의 돌풍’ 체코를 잠재우고 차지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는 4년마다 월드컵 사이에 열린다.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는 것이다.

개최국 잉글랜드는 지난 66년 월드컵을 우승한 이후 30년 동안 한번도 세계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인 테리 베너블스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웠다. 베너블스는 개막을 앞두고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은지, 그들이 정확한 대형을 이루며 경기를 하는지, 또 흔히 하는 말로 “골대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를 제대로 아는가” 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베너블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팀은 불운으로 4강에서 만족해야 했다. 준결승에서 승부차기로 독일에게 졌던 것이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면 어떤 지도자라도 베너블스처럼 교과서적인 지도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전술을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카오스이론이다. 겉으로 보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현상들이 내부에 숨겨진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카오스이론이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기상 현상, 나아가 빅뱅의 대혼란으로부터 은하계, 별, 행성이 만들어지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스템의 행태는 카오스이론으로 설명된다.

축구는 질서와 혼란의 이중주
 

네덜란드 골키퍼가 찬 공이 일정한 장소에 떨어진다는 것을 웨일즈대학이 표기분석법을 통해 알아냈다.


영국 축구의 30년 한을 풀기 위해 나선 곳은 웨일즈대학. 이곳에서 스포츠 과학자인 키이스 리온스와 마이크 휴즈는 카오스이론을 도입해 축구의 신비를 풀어나가고 있다. 축구는 22명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여기저기로 공을 차고 달리는 경기로 무질서한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축구는 잘 정립된 패턴에 따라 이뤄지는 경기”라고 리온스는 말한다.

특히 성공적인 팀은 일정한 경기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패스, 수비, 슛팅과 같은 선수들의 행동에는 일종의 항상성(invariance)이 있다. 이것이 경기를 예정된 코스에 따라 진행되도록 한다. 하지만 일정한 패턴에 따라 전개되던 경기도 4-5번쯤은 탄탄한 구성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이런 ‘혼란’(perturbation)을 이용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웨일즈대학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승리한 팀들은 대부분 득점기회를 높이기 위해 경기의 흐름을 깨는 돌출 행동을 했다.

카오스를 이용하려면 먼저 경기 내에 존재하는 패턴을 이해해야 한다. 웨일즈대학은 10년이 넘는 경기 자료를 수집해 영상에 나타난 정보를 컴퓨터 상의 화면에 표기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패스하며, 찬 공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 등 선수들의 모든 행동을 분석했다. 웨일즈대학은 이러한 표기분석법(notational analysis)를 이용해 경기 패턴을 모델화했다.

그 예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팀은 득점 기회를 잡기 위해 필드의 왼쪽에서 상대편의 골대를 향해 자주 크로스필드(cross-field) 패스를 시도했다. 또 뛰어난 활약을 보인 불가리아의 미드필더 레치코프는 종종 자기 진영의 벌칙지역(페널티 에리어) 가장자리에서 공을 잡아 필드의 오른편을 따라 상대팀의 벌칙지역을 향해 달려갔다. 이것은 위협적인 공격 패턴이다. 만약 이러한 정보를 안다면 그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예기치 않았던 동작으로 수비수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든 순간들이 축구사의 전설로 내려온다. 1970년 코벤트리시티팀의 윌리 카의 프리킥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카는 다리 사이에 공을 끼고 있다가 뒤축으로 차서 공을 뒤로 날려보냈다. 그러자 동료인 어니 헌트가 그 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차서 20m 떨어진 골대에 집어 넣었다. 이것이 바로 수비수를 맥 못추게 하는 전형적인 혼란이다.

작년 5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유럽 컵위너스컵’의 결승전이 열렸다.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던 연장전의 마지막 순간, 레알 사라고사팀(스페인)의 미드필더인 모하메드 나임은 아스날팀(잉글랜드)의 골키퍼인 데이비스 시만이 제자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순간 나임은 50m 떨어진 하프라인에서 기습적인 슛을 쏘았다. 그 공은 네트를 가르고 사라고사팀에게 우승컵을 안겨줬다.

혼란 일으키는 스타 플레이어

1960년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소속의 ‘슈퍼스타’ 조지 베스트의 환상적인 드리블이나 ‘축구황제’ 펠레(현 브라질의 체육부장관)의 날카로운 패스는 마치 칼로 버터를 자르듯 수비수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축구팀들은 펠레나 조지 베스트와 같은 선수를 원한다.
표기분석법은 축구경기에서 숨어있는 질서를 찾아낸다. 질서를 일단 파악하면 선수가 창출해낸 카오스가 경기 패턴에 어떤 혼란을 주는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표기분석법은 또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팬들이 주로 기억하는 명장면들은 눈에 띄는 혼란들이지만 중요한 사건들은 종종 눈에 띄질 않는다. 한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를 가장자리로 유인해내 두번째 공격수가 안쪽으로 공격해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일들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시합이 끝난 후 경기를 분석할 때에야 비로소 분명히 드러난다.

‘발칸의 마라도나’ 라는 별명을 가진 루마니아의 게오르규 하지는 늘 상대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그러나 수비수들이 하지를 밀착 수비하는 동안 루마니아팀의 또다른 재주꾼인 ‘핵탄두’ 라두시오유를 놓칠 수 있다. 만약 라두시오유의 패턴도 확인했다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상대팀의 경기 패턴을 알면 그만큼 유리하다. 웨일즈대학은 네덜란드 팀의 골키퍼가 찬 공이 대개 필드의 한정된 장소에 떨어지는 것을 알아냈다. 만약 그곳에 미리 수비수를 배치해 놓으면 그 공을 차지할 확률은 커진다.

상대팀을 동요시킬 가장 좋은 길은 하지와 같이 대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은 그럴만한 돈이 없다. 카오스연구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가 일으키는 혼란과 그 혼란이 경기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하지가 없어도 훌륭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축구경기에서 두 팀간의 균형이 깨지면 득점하기에 유리한 일시적인 불균형 상태가 발생한다. 경기 스타일에 변수를 도입하는 모험을 할 준비가 돼있는 코치라면 팀의 구성을 바꾸어 상대팀의 전술을 와해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 중간에 수비수를 공격수로 전환하면 상대팀의 경기 패턴을 엉망으로 만들어 다른 공격수가 더 많은 득점 기회를 잡도록 할 수 있다.

평형에서 혼란으로 가는 카오스 축구
 

최근 84억원의 이적료를 받고 뉴캐슬유나이티드팀으로 옮긴 아스프리야. 그는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베스트11에 뽑혔다.


축구에서 카오스가 일어나는 것은 경기가 벌어지는 90분 동안만이 아니다. 토너먼트나 시즌을 거치는 동안에 혼란이 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팀이 안정돼 있는 경우 대개의 팀은 승률이 좋은 때와 그렇지 못한 때가 평형을 이룬다.

선수들에게 다른 스타일로 경기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등 혼란을 도입하면 팀은 두번째 단계인 카오스기로 접어든다. 그리고 여러 경기를 치르면서 팀은 세번째 단계인 새로운 평형에 도달한다. 새로운 평형은 처음의 평형보다 성공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리온스는 팀이 카오스 단계를 지나 보다 성공적인 3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혼란을 일으키고 또 언제 그 혼란을 일으켜야 하는 지를 밝히려고 시도하고 있다. 새 선수를 영입하고 새 전술을 도입하면 더 강한 팀이 될 수도 있다.

카오스를 모르는 코치들은 팀의 사정이 나빠질까봐 두려워서 균형을 뒤흔드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보수적인 팀에는 문제가 누적된다. 잉글랜드팀은 1966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이전의 전술을 그대로 답습했다. 잉글랜드팀은 그 이후로 주요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반면에 평형 상태에서 신중하게 카오스 상태로 옮겨 가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70년대에 네덜란드팀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포지션을 바꿔가며 많은 임무를 띠도록 한 ‘전천후 축구’(total football)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엄청난 위험을 안고 시작한 이 작전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2번이나 연속해서 네덜란드팀을 월드컵 결승에 올려놓았다.

“상당기간 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팀이라면 카오스에 투자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리온스는 말한다. 충분한 정보에 입각해서 모험을 하지 못하면 두번째 카오스 단계로 접어들지 못한다. 혼란을 도입하는 것은 팀이 일단 평형상태에 이른 후에야 한다. 만약 팀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면 변화를 주어도 2단계로 접어들기 힘들다. 그리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퇴보하지 않기 위해 선수들에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

선수 영입은 ‘나비효과’ 일으켜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에서 뉴캐슬유나이티드는 라이벌 팀들을 누르고 좋은 성적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케빈 키건 감독은 그 시점에서 컬럼비아 출신의 스트라이커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26세)를 84억원의 이적료를 지급하고 영입했다. 과감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아스프리야의 투입은 팀의 경기 패턴을 혼란시켰고, 그 이후 팀의 성적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뉴캐슬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이어 2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물론 키건은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결과를 희생한 것인지 모른다. 언젠가 그의 팀은 카오스 상태를 헤치고 나와 성공적인 3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캐슬유나이티드의 지난 시즌 성적을 분석한 학자들은 또 다른 결론를 끌어냈다. 시스템에 아주 미미한 변화를 주어도 그것이 미래에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나비효과’ 때문이다. 이것은 스리랑카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몇주 후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아스프리야 선수를 몇주 더 일찍 데려오거나 혹은 더 나중에 데려왔으면 팀의 성적이 좋아졌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결론으로 리온스는 이렇게 말했다. “표기분석법의 자료를 이용해 언제 팀이 쇠퇴의 길에 접어드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이것이 바로 카오스의 2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때일 것이다. 바로 이때 아스프리야를 데려와야 했다.”

98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카오스이론은 어떤 기여를 할까. 감독들은 혼란을 일으키는 모든 변수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 예리한 패스와 태클에서부터 공격수의 패턴을 깨뜨리는 수비수의 능력에 이르기까지 변수는 다양하다.

"스포츠와 카오스는 아무리 근사하게 결과를 예측하고 조종할 수 있어도 1백% 확신할 수 없다" 고 리온스는 말한다. 그래서 스포츠와 카오스가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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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뉴사이언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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