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영어책에서 'chaos'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됐다. chaos(케이아스)의 발음이 시험에 잘 나온다는 설명을 읽고, 발음과 '혼돈' 이라는 뜻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다시 chaos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몇년 전 전자제품 광고에 유행어처럼 사용된 것을 본 후부터다. 새로운 기술로 신제품을 만들었다는 광고들을 접하면서 두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째는 혼돈, 무질서라는 뜻의 chaos가 전자제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둘째는 chaos를 왜 카오스라고 쓰는 걸까? 발음이 그것이 아닐텐데 하는 궁금증이 바록 그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물리학 시간에 교수로부터 카오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카오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몇몇 학생들에게 교수는 제임스 글리크의 '카오스' 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것이 벌써 2년 전인 대학 4학년 때였다.
초등교육을 전공했지만 평소 과학에 관심이 컸다. 잡지 기사를 통해 카오스에 대해서 가끔 읽을 수 있었으나, 새로운 용어와 어려운 내용 때문에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내 닫혀진 사고가 깨어져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예로 기상예보에 대한 나의 생각이 그렇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계측기가 발전할수록 더욱 정확하고 장기적인 기상예보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또 인간에게 불가항력으로 여겨지는 장마나 가뭄 피해가 해소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대기현상이 초기조건에 민감해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비효과에 대해 읽으면서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일기도 했다.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내가 소수차원에 대해 처음 알게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그동안 내가 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왔던 생각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최초의 공간에서 인접했던 두점을 골라내더라도 그 점들이 최후에는 어디로 가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고, 카오스라는 것이 영원한 무질서나 혼돈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체되어 있던 내 사고에 파문이 일었다. 물리학 시간에 처음 '상대성이론'을 접하면서 내가 알고있던 절대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무너지는 순간에 느낀 약간의 혼란을 다시 느끼게 됐다.
과학교육이론에서 오는 경직된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백지 상태의 사람보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배웠다. 나 역시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이 너무 견고해서인지 "아하,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기를 주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의 과정을 지낸 다음에 오는 지적인 충족감은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최신 과학이론을 이 책처럼 자세하고 평이하게 설명해 놓은 책은 없었던 것같다. 더욱이 과학이론을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기존의 과학이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몰이해와 저항과 반감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더욱 인간적인 존경을 자아냈다.
21세기를 주도해나갈 꿈나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지 9개월째를 맞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나비효과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더니 무척이나 신기해 했다. 무엇이든지 흡수할 준비가 돼있는 스폰지처럼 항상 개방된 꿈나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는 것이 평소의 욕심이다. 그러기 위해서 '카오스' 를 읽으며 갖게 된 지적 충격과 열린 사고를 항상 유지하며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찾고 공부하는 부지런한 교사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