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현상은 하나도 신비롭지 않다." 분자 생물학강의를 처음 듣던 날, "생명현상은 물리, 화학적 법칙을 따른다" 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교수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곤 한시간 내내, DNA의 구조가 밝혀진 후 행해진 생명현상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소개해줬다. 또 이제는 생명현상이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현상일 뿐, 더 이상 '신비' 라는 이름 속에 묻혀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과학의 위용이 전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과학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의 역사는 성욕만큼 질기고 왕성했다. 고대부터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과학' 이라는 이성의 역사가 시작된 후, 그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되고 다양해졌다. 비록 지금은 로봇이 더 이상 신기한 물건은 아니지만, 현실과 로봇은 아직 멀리 있기만 하다.
그런데 SF에는 로봇뿐 아니라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인조인간, 복제인간, 자동인간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 많은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까. 언젠가는 우리가 그들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인가.
SF의 대표적 가공 생명체인 로봇, 사이보그,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무엇이며,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영화나 소설에서 그들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들이 단순한 꿈으로 끝날지, 과학의 적자(嫡子)로 남을지는 우리가 선택하고 책임져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감초 C3PO와 R2D2
로봇은 상대성이론이나 아폴로 우주선만큼 많은 이들에게 과학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로봇은 체코말로 '일한다' 혹은 '강제노동'의 의미를 갖는 robota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로봇이 처음 등장한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에는 로봇이 매우 비관적인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렐 차펙에 의해 쓰여진 이 희곡에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인간과 똑같이 할 수 있으나, 인간미를 갖고 있지 못하는 인조 인간'으로서 로봇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로봇들이 노동을 통해 지능과 반항심을 가지게 되고, 로봇을 제조하는 회사의 중역들을 죽이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로봇들은 사람의 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홀로 살아남은 인간 알키스트에게 자신들을 개량해 줄 것을 의뢰한다. 이때, 로봇 남녀가 서로 희생하려는 것을 보고 두 로봇을 아담과 이브로 만들어 준다는 이 희곡은 기계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도전적인 물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렇게 처음 등장한 로봇은 '자동으로 작동하여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기계'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인조 인간' 혹은 '자동 인간'이라고도 한다. 우리에게 로봇을 가장 친숙하게 느끼게 해준 것은 영화 '스타워즈' (Star Wars, 1977)의 감초, 떠버리 C3PO와 R2D2일 것이다. 이 두 로봇은 스타워즈의 인기에 크게 한 몫을 더했을 뿐 아니라 전형적인 로봇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주게 된다.
로봇은 상업용 로봇, 휴먼 로봇, 마이크로 로봇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인간이 하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특정한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은 공장에서의 단순한 일 뿐 아니라 화재를 진압하는 일, 우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 혹은 장님을 안내하는 맹도견 역할까지도 수행하게 된다.
반면 매우 작은 크기로 만들어져서 수술시에 인체에 주입되어 탐사를 하거나 수술을 수행하는 마이크로 로봇도 있다. 휴먼 로봇은 인간의 지능과 감각을 지닌 자율형 로봇으로, 학습과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로보캅'(Robocop)은 3편까지 제작된 로봇 영화의 대표작이다. 비록 로보캅은 사이보그지만, 그가 싸우는 로봇제작사 OCP소속 악당 로봇들은 속편으로 갈수록 막강해져서 3편에는 휴먼 로봇인 사무라이 로봇까지 등장한다. 로보캅 시리즈에는 로봇연구의 발달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므로, 이런 것들을 특히 눈여겨 보면 영화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SF영화속에 로봇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들의 바램을 형상화하거나, 노예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죄의식 없이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SF를 보며 로봇들에게 받들어지는 왕이 되길 꿈꾼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봇에게 성(性)을 부여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을 '생활의 편의' 이상으로 여겼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프리츠 랑(Fritz Lang)의 걸작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6)에는 노동자들의 우상으로 '마리아'라는 여성 로봇이 등장한다. 마리아는 비록 어리석은 과학자의 음모로 탄생되었지만, 흑백의 화면에 드리운 자태는 세련되고 현대적이기까지하다. 여성 로봇은 비록 새로운 로봇을 잉태하지는 못해도, 보다 자연적인 생물에 가까운 존재를 탄생시키고픈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히 휴먼 로봇이 SF에서처럼 대중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현재 특화된 기능을 가진 로봇이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진공 청소기나 자동응답기를 사는 대신, 막대한 돈을 들여 똑똑한 휴먼 로봇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전화를 받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SF에서 로봇의 등장은 인간의 여러가지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영화적인 장치의 도입이다. SF는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 사람과 기계의 관계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로보캅의 고뇌
이제는 로봇만큼 유명해진 사이보그(cyborg)는 cybernetics(인공두뇌학)와 organism(유기체)의 합성어인데, 기계나 인공 장기 등이 이식된 개조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태권V나 아톰은 로봇이지만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는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기계의 도움으로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인공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나 실리콘 유방수술을 한 여자, 심지어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사람조차도 넓은 의미에서 사이보그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영화도 많을 뿐 아니라, '사이보그' 라는 제목의 영화도 여러편 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사이보그 영화는 '로보캅'을 들 수 있다. 디트로이트시 경찰인 머피는 동료 경관의 살해범들을 소탕하기 위해 악당의 소굴로 들어가지만, 그들에게 잔혹한 총격을 받고 죽게 된다. 이때 로봇을 제작하는 회사 OCP에 의해 머피는 강력한 기계 장기와 손발로 무장된 로보캅으로 탄생된다. 그의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경찰 업무 수행과 OCP에 대한 복종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입력된다. 영화는 이렇게 탄생된 로보캅이 '인간머피' 로서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인간의 자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악당을 처단하고 음모를 밝히는 과정은 덤일 뿐이다.
SF영화에서 사이보그는 항상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내가 인간인 이유는 나의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나를 인간이게 하는가? '로보캅'은 모든 신체가 기계로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사이보그가 아직 인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후, 로보캅은 프로그램된 기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행동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항상 '로보캅' 이라고 답하던 그가 당당히 '머피' 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영화 '로보캅' 의 첫장면으로, 일본 기업의 성능 좋은 인공심장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 광고가 등장한다. 바야흐로 사이보그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의 의학기술로 신장을 혈액투석기 등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공 신장 뿐 아니라 모든 신체장기와 인공 혈관, 인공 피부조직 등에 관한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하니 로보캅이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2' 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와 섬뜩한 액체 합금인간 T1000을 로봇이라 해야 할지, 사이보그라 할지는 좀 모호하다. 터미네이터는 완벽한 휴먼 로봇 위에 살아있는 세포를 덮은 것으로, 기계와 원형질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안드로이드와 기계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액체 합금으로 만들어진 T1000은 최첨단의 휴먼 로봇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비록 액체 합금이 유기적인 원형질보다 유연하고 인간으로 변하면 구별할 수 없지만, 가장 발달된 형태로서의 휴먼 로봇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T1000이 세상에 태어날지 의문이긴 하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android)는 그리스어로 '인간을 닮은 것'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가을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 자리도 그 형상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공주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자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에서 내포하듯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이 세포 등의 원형질로 되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가공의 생물을 의미한다. '복제인간' 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에겐 수명도 있다.
안드로이드는 분자 생물학의 발달로 탄생된 SF의 주인공이다. 로버크(David Rorvik)는 1978년 그의 저서 '복제 인간'(The cloning of a man)에서 처음으로 복제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실험적으로도 성공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당시 화제가 되었던 '시험관 아기' 에 비하면 엄청난 충격이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아닌, 단일 개체의 체세포에서 무성(無性)적으로 새로운 개체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테니까.
1975년 미국 FDA의 규정에 의해 생명의 실험에 관한 연구 지원이 금지되었고 현재는 보다 복잡한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시행할 수 없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복제 인간도 가능할지 모른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에는 안드로이드와 공생하는 인간의 미래가 끔찍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리플리컨트라는 안드로이드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이 생겨나면서 자신의 한정된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지구로 잠입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을 추적해 폐기하는 형사들. 영화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칼처럼 차가운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과연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몇 년전 다시 개봉된 감독판 '블레이드 러너'에는 안드로이드를 폐기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스 형사(해리슨포드)마저 안드로이드라고 암시하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알고 있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감독판은 제작판보다 더 충격적이고 중추적이라 할 수 있다. SF는 안드로이드를 등장시켜 인간성의 참다운 한계와 의미를 되새긴다. SF의 영원한 화두, '인간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로봇과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에 대해 알아보았다. 즉 로봇은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기계이고, 안드로이드는 원형질로 이루어진 구성물로서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을 말하며, 사이보그는 기계와 원형질의 결합 혹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는 이렇게 막강한 가공의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각기 그들의 탄생에는 엄청난 과학의 산고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무엇이 로봇이고, 무엇이 사이보그인지, 심지어 인간은 무엇인지조차 구분이 모호해지고 무의미해져 버렸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건 간에,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만들어낸 동반자라는 사실이다. 영화 '스타트랙'(Star Trek, 1979)의 마지막 장면은 침입자에 의해 기계로 변해 버린 아일리아와 그의 옛 애인 데커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을 강력히 암시한다.
'스타 트랙' 의 철학적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과 기계가 새로운 형태로 공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과, 그속에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자연의 무수한 생명체와도 공생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헛된 바램일까?
용어설명
인공두뇌학(cybermetics)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겨난 제어와 통신을 다루는 과학의 새로운 분야. 선박 조종술, 키잡이 등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kybernetes에서 파생된 말로서,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인 노버트 위너(Nobert Wiener, 1894-1976)에 의해 널리 제창되었다. 동물과 사회가 항상성을 유지하고 제어, 통신하는 것에 착안해 그러한 원리를 기계, 인공두뇌, 자동화 생산방식 등에 응용하려는 분야다.
가령, 동물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되먹임(feedback)을 이용하여 방의 온도가 일정값보다 낮을 때는 난방장치를 켜고, 방이 충분히 더워지면 난방장치를 끄는 가정용 온도조절기를 개발하는 것이 예가 된다.